[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아이언맨

  • 입력 2008년 11월 17일 02시 49분


영화 ‘아이언 맨(Iron Man)’에는 희한한 슈퍼히어로가 등장합니다. 저 외계에서 온 슈퍼맨도 아니고, 우연히 거미에 물리면서 초능력자가 된 스파이더 맨도 아니고, 범죄에 부모를 잃으면서 박쥐의 어두운 내면을 갖게 된 배트맨도 아니에요. 이 영화 속 영웅은 자신의 천재적인 두뇌를 통해 고안해 낸 첨단 무기를 장착하고 스스로 슈퍼히어로가 된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이 슈퍼히어로는 돈이 없으면 절대로 될 수 없단 사실이죠.

[1] 스토리라인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억만장자 무기사업가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아프가니스탄에서 신무기 발표를 마치고 돌아가던 그는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됩니다. 그들은 스타크를 감금한 채 “강력한 신무기를 개발하라”고 위협하죠.

꾀 많은 스타크가 고분고분할 리 있나요. 무기를 개발하는 척하면서 탈출에 사용할 무기를 몰래 만듭니다. 어떤 외부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철갑 슈트 말이죠.

철갑 슈트를 입고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한 스타크는 개과천선해요. 자기가 개발한 무기들이 세상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단 사실을 직시하게 된 그는 무기사업에서 손을 떼죠. “내가 만든 신무기들을 내 손으로 없애 인류 평화를 되찾겠다”고 결심한 스타크. 그는 하늘을 나는 최첨단 기술이 장착된 강력한 슈트를 개발한 뒤 일명 ‘아이언 맨’이 되어 테러리스트들의 소굴을 신나게 때려 부숩니다.

그런데 이를 어쩌죠. 철갑 슈트의 설계도가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고 만 거예요. 테러리스트들은 아이언 맨을 능가하는 무시무시한 생체무기 ‘아이언 몽거’를 개발합니다. 아, 지구 평화는 깨지고 마는 걸까요?

[2] 삐딱하게 생각하기

정말 신나고 통쾌한 영화죠? 각종 첨단무기를 장착한 비행 슈트를 입고 악당들을 혼내주는 아이언 맨의 모습이라니. 하지만 이런 오락성의 외피를 한 꺼풀 벗기고 들어가 따져 묻다보면 이 영화가 매우 위험한 사고에 빠져 있단 사실을 알게 돼요. 자, 그럼 영화 속 내용들에 조목조목 시비를 걸어볼까요?

질문 1. 만약 스타크가 부자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요? 당연히 아이언 맨이란 슈퍼히어로는 탄생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이언 맨은 최첨단 기술과 엄청난 자본이 만들어낸 다분히 미국적인 영웅이니까요.

자, 그럼 스타크는 어떻게 부자가 된 걸까요?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자였어요. 억만장자인 아버지의 군수사업체를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니까요. 게다가 명석한 두뇌까지 물려받아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왔죠.

아하! 이제야 알겠네요. 태생적으로 볼 때 아이언 맨은 스파이더 맨과는 차원이 다른 슈퍼히어로란 사실을요. 한 가난한 소년이 우연히 슈퍼 거미에 물리면서 초능력을 갖게 돼 탄생한 게 스파이더 맨이잖아요? 그러니까 돈이 없어도, 머리가 똑똑하지 않아도 스파이더 맨이 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아이언 맨은 달라요. 아이언 맨은 어떤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에요. 스타크가 엄청난 돈과 기술을 들여 만들어낸 첨단 기계 옷을 입고 제 스스로 아이언 맨이 된 거죠.

결국 ‘아이언 맨’의 메시지는 이거네요. 이젠 슈퍼히어로도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돈만 있으면 될 수 있단 사실요. 슈퍼히어로는 운명적으로 탄생하는 게 아니라 자본과 하이테크의 힘을 통해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존재란 얘기죠. 그래요. 아이언 맨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슈퍼영웅이었군요. 하긴,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슈퍼히어로라고 한들 예외겠어요? 돈과 기술이야말로 모든 꿈을 실현시켜주는 이 시대의 창조주예요.

질문 2. 만약 스타크의 말대로 테러리스트들이 보유한 무기를 다 때려 부수면 세계 평화가 정녕 올까요? 아유, 너무 단순무식한 생각이에요. 이 세상 무기를 전부 다 없애버리겠다는 발상도 비현실적이지만, 무기가 없으면 평화가 올 거란 생각은 더 비현실적이에요(명문대를 나와도 이렇게 바보스러운 생각을 할 수가 있군요). 무기가 없어진 테러집단들은 또 다른 무기들을 손에 넣기 위해 동분서주할 것이고, 결국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는 경제원칙에 따라 무기 암시장은 더 활성화되겠죠.

평화는 무장해제를 통해 실현되지 않아요. 오히려 평화는 힘의 균형을 통해 이뤄지죠.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까닭은 두 나라가 서로를 향해 엄청난 양의 핵미사일을 쏴댈 경우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단 사실을 지혜롭게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스타크가 아이언 맨이 된 까닭은 더 우스꽝스러워요. 세계 각지에 각종 신무기를 팔아먹었던 과거를 반성한 그는 자신이 공급했던 무기를 파괴하기 위해서 최첨단 비행 슈트를 만들잖아요? 근데 이 첨단 슈트는, 알고 보면 더 강력한 무기죠? 만약 이 슈트가 악당의 손에 들어간다면? 십중팔구 무시무시한 전쟁무기로 쓰이겠죠. 결국 스타크는 강력한 무기를 없애버린다는 슬로건 아래 더 강력한 무기를 또 하나 만들어냈을 뿐이네요(스타크는 똥.덩.어.리!). 아, 자가당착(自家撞着)이 따로 없군요.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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