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의 만화방]엽기와 극빈의 합주… 그 유쾌한 화음

  • 입력 2008년 5월 17일 02시 58분


이경석 ‘전원교향곡’

작가는 신문 배달로 생계를 유지하며 만화 혼을 불태웠다. 그 덕에 ‘대한민국 달배맨’이라는 만화가 나왔다. 시한 따위 필요 없는 웃음 폭탄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서글픈 삶이 겹치면서 웃음보다는 안타까움이 컸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깔끔하고 말랑말랑한 만화가 주류를 이루던 때다. 작가의 거친 그림과 이야기는 불편했다. 만화계는 ‘엽기’적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줬다. 지금이야 엽기가 상업적 코드지만 그때는 불쾌한 감성이었다.

작가는 지하에 터를 잡고 ‘무보수 언더그라운드 만화가’로 살았다. ‘내가 그린 것이 만화가 아니라 만화가가 하는 모든 행위가 곧 만화다’라는 선언과 함께 밴드 활동도 했다. 만화의 제한적 의미를 확장시키는 혁신적 운동이었지만 이 역시 슬퍼 보였다. 만화계의 비정규직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엽기’는 유쾌한 상품이 됐고 새로운 실험과 극빈의 삶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언더’는 열매 무성한 나무가 됐다. 이제 작가는 서글픈 달배맨이 아니라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에 작품을 연재하는 행복한 만화가다. 그중 만화잡지 ‘팝툰’에 연재 중인 ‘전원교향곡’이 최근 발매됐다. TV 드라마 ‘전원일기’처럼 오지 마을 이장네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농촌 시트콤이다.

서울 간 작은아들은 오지 마을에 헬기를 타고 나타나고 손자는 변비로 고생하는 김 이장을 위해 철봉 좌변기를 선물한다. 황당하지만 훈훈한 가족애로 시작된 이야기는 회를 더해가며 점차 표현 수위를 높여간다. 쉬지 않고 불평하는 나물 할매, 평생 자기자랑에 몸바쳐온 문씨 할배, 허수아비 대신 세워둔 마네킹을 사랑한 털보 총각 등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오지 마을의 엽기적 본색이 드러난다. 여기에 서울서 온 슈퍼마켓 여사장, 마을로 피신 온 조폭 두목, 산삼을 구하러 온 여선생 등 오색찬란한 캐릭터가 투입되면서 작가 특유의 ‘초절정 극빈 판타지’가 전개된다. 이번 편의 압권은 원주민인 털보와 외지인인 여선생의 러브라인이다. 털보 총각은 여선생보다 마네킹을 먼저 사랑한 것이 죄스럽고, 여선생은 털보의 순정이 아니라 아버지 약값에 팔려가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안타깝다.

보는 이를 불쾌하게 만드는 엽기적 그림 묘사와 처절한 언더 생활에서 얻은 극빈한 삶의 이야기는 여전하다. 낯설게 비틀기,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낯 뜨거운 감정을 파고드는 작가의 악취미 역시 그대로다. 그런데 지금의 독자들은 이를 불편하지 않게 소화하고 유쾌한 시트콤으로 여기는 눈치다. 어떤 독자는 처절하게 소외된 이들의 집합소이자 욕망의 분출구인 오지 마을을 ‘귀향하고 싶은 곳’이라 평할 정도다. 독자가 성숙해진 것인지, 자극에 강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오지 마을에서 하나가 된 원주민과 외지인처럼 작가도 이 작품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끝>

박석환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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