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의 만화방]박종원-심윤수 ‘골방환상곡’

  • 입력 2008년 5월 3일 03시 00분


그때 우리들의 이야기 웃고 나니 그리워진다

‘세상엔 나보다 우월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는 최고 명문대에 다니고 잘생겼으며 부모님께 효도한다. 그런 그에게 지금의 취업난은 장난일 뿐. 이런 엄청난 힘을 발산하는 그의 정체는…. 엄마 친구 아들!’

2004년 ‘Wony’라는 필명(본명 박종원)의 누리꾼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짧은 만화 속 메시지다. 냉소적인 농담처럼 들리기도 하고 작심한 듯 토해낸 고백 같기도 하다. 이 만화는 이후 수많은 누리꾼의 공감과 지지를 얻으며 놀라운 속도로 퍼졌다. 누리꾼은 단순히 작품을 읽고 다른 이에게 권하는 선에서 끝내지 않았다. 만화 속 글과 그림을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거나 새로운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원제목이었던 ‘우월한 자’보다 엄마 친구 아들의 준말인 ‘엄친아’라는 비밀스러운 호칭이 사용됐다.

2006년에는 엄친아를 모티브로 한 노래가 발표됐다. 홍익대 블랙테트라가 부른 ‘엄마친구아들’은 ‘머리도 좋고 인기도 많고 학교에선 반장/언제나 나와 똑같은 길에 서 있어/언제나 나를 비교케 하는 그 이름’이라는 가사를 통해 엄친아를 조금 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엄친아에 담긴 부모 세대의 높은 교육열과 교육방식, 자식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 청년 실업과 능력 격차 간 갈등 등의 문제는 신문 사설의 주제가 되기도 했고 논술 시험 문제로 출제되기도 했다.

‘웃기는 만화’ 한 편으로 사회문화적 담론을 만들어낸 ‘Wony’는 이를 계기로 필명이 침묵(본명 심윤수)인 친구와 함께 한 포털 사이트에 만화를 연재했다. 최근 발매된 ‘골방환상곡’은 300여 편의 연재분 중 최고의 작품 100여 편을 선별한 것이다. 대학생인 작가는 늑대 사자 펭귄 고양이 등 주변 친구들과 함께 다양한 의미를 지닌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자녀에 대한 엄마들의 이상형이 ‘엄마 친구 아들’이라면 자녀를 타락하게 만드는 원인은 ‘우리 아들 친구’다. 못된 짓만 골라 하는 이 캐릭터는 엄친아 만큼의 파급력은 없었다. 하지만 자녀 교육에 헌신하는 엄마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해준 캐릭터로 유명하다. 여기에 싱글남들의 대왕 격인 ‘쏠로몬’,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중간고사’라는 이름의 괴물 등이 등장한다.

대학, 군대, 연애, 취업 등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경험하게 되는 모든 문제적 상황이 이 작품의 소재다. 이야기는 특수한 작가적 일상이 아니라 누구나 경험하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출발한다. 모두가 경험했지만 우습거나 민망해서 쉽게 언급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웃기기도 하지만 웃음만큼 긴 생각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엄마의 ‘무차별 비교 교육법’에 상처받았던 이라면 공교육의 짐을 나눠 졌던 엄마와, 죄 없이 적이 됐던 엄마 친구 아들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석환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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