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한국’ 이젠 바로잡자]대학들 연구윤리 세우기 열풍

  • 입력 2007년 3월 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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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진국 오명 벗자”표절과의 전쟁 선언

각 대학이 서두르고 있는 연구윤리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움직임은 크게 ‘표절 및 연구 윤리 가이드라인’의 제작, ‘연구윤리위원회’의 신설, ‘대학 문화를 바꾸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마련 등 세 가지로 압축된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연구윤리 논란과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의 표절 의혹 등에서 쟁점이 됐던 것은 ‘연구윤리 및 표절의 기준이 무엇인가’와 ‘누가 어떻게 조사할 것인가’, ‘수십 년간 관행으로 지속돼 온 연구 문화를 현재의 잣대로 재단할 수 있는가’ 등이었다.

따라서 서울대를 비롯한 각 대학은 기존의 교원윤리위원회와 별도로 대학의 연구, 논문의 진실성 문제만을 관할하는 위원회를 잇달아 만들었으며 표절 및 연구윤리 가이드라인, 표절 관련 교육 프로그램 등을 마련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달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학과 학술단체, 정부 등이 지켜야 할 연구지침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데 이어 과학기술부는 연구윤리, 진실성 확보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도록 정부 훈령까지 제정해 대학들의 ‘실천’을 재촉하고 있다.

▽“누가 연구 지원했는지도 써 줘야”=표절 및 연구윤리 가이드라인은 지난해 고려대와 서울대가 가장 먼저 제작에 들어갔다. 고려대는 새 학기가 시작되는 이달 중, 서울대는 올해 상반기 중 완성된 가이드라인이 나올 예정이다.

한국외국어대는 이달 중 ‘연구윤리가이드라인 태스크포스팀(TFT)’을 만들 예정이며 숭실대와 동국대 또한 연구윤리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별도의 팀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

각 대학이 준비 중인 가이드라인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연구윤리 및 표절 파문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구윤리국(ORI·Office of Research Integrity·보건복지부 장관 소속 기관)이 발행한 ‘미국 연구윤리국의 책임 있는 연구 수행 소개’를 참고해 만든 고려대 가이드라인 초안에 따르면 교수가 부진한 학생을 지도해 논문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엄격한 윤리적 잣대로 보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자신의 제자를 ‘키워 주기’ 위해 논문을 발표할 때 이름을 넣어 준다면 그것을 보는 다른 독자들이 그 제자를 유능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등 판단을 잘못하게 할 수 있으므로 이 또한 윤리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또 실험이나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재정지원을 받았다면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은 규정하고 있다. 연구자가 재정지원을 받는 업체에 대해 편향된 시각으로 써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밝혀서 독자가 알게 해야 한다는 것.

자기 논문을 다시 내는 것, 즉 이중 게재도 명백히 비윤리적 행위로 규정한다. 남의 것을 내 것처럼 쓰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자신이 자기 논문을 다시 사용하는 것도 연구업적 부풀리기에 해당한다.

특히 의학 분야의 경우 첫 번째 보고서에서 한 번 실험한 것을 다른 논문에 중복해서 게재해 실험을 두 번 한 것처럼 한다면, 실험 결과의 증거가 더 많아졌다고 오해할 수 있으므로 치명적인 비윤리적 행위로 간주하게 된다.

이 가이드라인 제작에 참여한 한 교수는 “ORI 기준은 우리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면서 “이런 가이드라인을 통해 우리나라 연구윤리가 국제적 기준으로 한 계단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위원회 발족, 표절 교육 러시=지난해 7월 서울대가 황 전 교수와 제자들을 조사하기 위해 연구진실성위원회를 발족한 뒤 9월 한양대, 11월 중앙대, 12월 경희대가 잇달아 관련 위원회를 신설했다.

지난해 말 마광수 교수의 표절·도작 논란이 일어난 직후 연세대가 1월 초 연구진실성위원회를 발족했고 홍익대, 숭실대가 발족을 검토하고 있다. 전남대는 위원회 설치에 관한 규정을 현재 심의하는 한편 교수회의 의결을 기다리고 있다.

학생을 상대로 하는 표절 관련 교육 프로그램도 시작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근본적인 표절 방지책은 교육을 통한 문화의 변화”라고 지적하기 때문이다.

동국대는 시범적으로 신입생을 위한 과목인 ‘프레시먼 세미나’와 외국 국적의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생활적응 강좌’에서 표절 관련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 대학 교무기획팀 김상유 씨는 “‘표절 관련 파문의 사례와 금지 사항’과 ‘리포트나 석·박사 논문을 작성할 때 지켜야 할 사항’ 등이 주요 내용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양대는 올해 2학기부터 대학원과정에 ‘표절 방지 수업’을 개설한다. 경희대도 2학기부터 학부, 대학원 등에 표절 방지 수업을 개설할 예정이다.

그러나 전남대의 한 교수는 “현행 선거법이 예전에 비해 많이 엄격해지고, 개선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선거법 위반자도 많이 생겼던 것처럼 연구윤리에 관한 제도나 인프라가 국제적 수준으로 올라가면서 상당 기간 그 높아진 규정에 걸려 넘어지는 ‘범법자’들이 많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대학들이 도입 추진하는 해외의 논문심사 방법

전산화된 논문DB와 비교… ‘표절 아님’ 인증

교수나 학생들이 발표하는 논문의 표절 여부를 심사단계부터 가릴 수는 없을까.

지난해 여름방학 때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등 미국 대학들을 돌아보며 표절에 관한 대학정책을 벤치마킹한 동국대 교무기획팀은 “해외 유수 대학 상당수가 ‘논문 표절 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최대한 많은 논문, 자료, 통계 등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뒤 제출된 논문을 심사할 때 한 차례 컴퓨터에 입력해 제출된 논문의 문장이나 제시 자료 등의 상당 부분이 입력된 데이터베이스와 일치하면 ‘표절’ 판정을 내리고 ‘무사히’ 통과한 논문에 대해서는 ‘표절을 하지 않았다’는 인증의 표시로 마크를 찍어 준다”고 밝혔다.

동국대는 이런 방식의 ‘인증제’를 도입하기 위해 국내외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안, 관련 전산망의 설치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 대학 관계자는 “표절은 개별 대학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학계 전반의 과제이고 국가적인 문제”라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통합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시스템을 마련하고 제도를 운용해 여러 대학과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활용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고교 과정에도 표절 검증이 일반화돼 있는 미국의 경우 학교가 마련한 인증 체제 외에 표절 감시 유료 사이트도 운영되고 있다. 중고교 교사를 위한 표절 감식사이트인 ‘턴잇인’(www.turnitin.com) 운영자들은 학교별로 일정 금액을 받고 제출된 숙제에 대해 표절 여부를 판정해 준다.

교사들을 위한 무료 사이트도 있다. 학생의 숙제와 유사 문구가 포함된 문서를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www.plagiarism.phys.virginia.edu, www.plagiarism.com)는 물론 스페인어와 독일어로 된 문서의 표절 여부를 알 수 있는 무료 사이트(www.dcc.uchile.cl, www.jplag.de)도 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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