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한국’ 이젠 바로잡자]<8·끝>표절 근절 대책은…

  • 입력 2007년 3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아주대 경영대는 1995년부터 신입생에게 표절 추방 교육을 실시해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 경영대 학생회가 전광판을 통해 표절 근절 캠페인을 하는 모습. 사진 제공 아주대 경영대 학생회
아주대 경영대는 1995년부터 신입생에게 표절 추방 교육을 실시해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 경영대 학생회가 전광판을 통해 표절 근절 캠페인을 하는 모습. 사진 제공 아주대 경영대 학생회
《“우리 학계의 표절은 낡은 벽지의 곰팡이 같은 존재입니다. 어지간히 닦아 내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벽지를 완전히 뜯어내고 새로 발라야죠.” 동료 교수들의 표절을 수차례 목격했다는 한 국립대 교수는 표절에 대한 논의가 무르익은 지금 표절을 뿌리째 뽑지 않으면 영영 기회를 잃을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만연한 표절 및 표절 의식을 근절하려면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

▽명확한 기준을 만들자=병을 고치려면 먼저 병을 알아야 하듯이 무엇이 표절인지에 대한 정의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표절의 개념조차 불분명하고 표절 판단 기준도 학회와 학교에 따라 중구난방이어서 명백한 표절이라도 부인하면 어쩔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각 기관이 자체적으로 표절을 근절하기 힘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가 표절 전담 기구를 만들어 상시 감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표절은 창의성을 중시하는 풍토를 훼손하고 국가의 성장동력을 갉아먹는다는 인식의 발로다.

춘천교대 김정인(사회교육과) 교수는 “미국은 연구윤리국(ORI)이란 기구가 논문 표절 시비 등을 공정하게 가려낸다”며 “표절은 돈, 학교 경영 등과 직결되기 때문에 정부가 독립적인 상설 기구를 구성해 표절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부는 표절 방지를 위해 과학기술부 훈령을 제정했으며, 교육인적자원부도 표절 기준 만들기에 나섰다. 아직 걸음마 단계여서 얼마나 효율적인 정책이 나올지는 알 수 없다.

문화계에서는 1999년 공연법 개정으로 공연윤리심의위원회가 영상물등급위원회로 바뀐 후 사전 심의를 통한 표절 방지 기능이 사라졌다. 이 때문에 전담기구를 다시 만들어 분야별로 구체적인 표절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음악출판사협회(KMPA)는 지난해 ‘가요 표절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문화관광부도 영화, 방송, 가요, 출판 등 장르별로 표절에 대한 기준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도 표절을 감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표절한 사람과 논문 책자 영화 등 각종 자료를 모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사이트(www.famousplagiarists.com)가 있을 정도다.



▽표절 예방 시스템=표절을 막으려면 초중고교에서부터 교육을 통해 표절에 대한 무지(無知)를 추방하고, 표절을 쉽게 적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교사들도 뭐가 표절인지를 잘 몰라 학생들에게 표절이 왜 나쁜지를 설명하기 어려운 형편이어서 교육대 사범대 교육과정이나 교원 직무연수에서 표절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제 학생들에게 표절 예방 교육을 하는 학교는 극소수다. 아주대 경영대는 1995년부터 신입생을 대상으로 표절 추방 선언과 방지 교육을 실시해 현재는 무감독 시험을 치르고 있다. 학생들의 표절에 대한 의식이 높아져 지난해 경영대 학생회는 한 교수가 외국 저서를 표절했다며 학교 측에 징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전상인(사회학과) 교수는 “표절은 과정보다 결과만 중시하는 교육 과정에도 원인이 있다”면서 “교사를 기르는 사범 과정은 있지만 교수를 가르치는 과정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일부 교수들이 표절 검색 프로그램을 개발했지만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갖추지 못해 효용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다. 국내 학술지 인용색인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논문 심사 및 대학생의 보고서 검토에 사용하게 해야 한다. 모든 보고서와 논문은 해당 파일을 표절 검색 사이트에 등록한 뒤 제출하도록 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단호한 조치 및 문화적 접근=표절 행위를 처벌하지 않으면 표절이 사라지기 힘들다. 학계는 최근 표절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연세대가 제자의 시를 도용한 마광수 교수에게 정직 2개월이란 징계를 내린 것은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서강대 김영수(사회학과) 교수는 “단호한 조치를 통해 표절하면 학계에서 퇴출된다는 인식을 심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표절 추방의 핵심은 자정 노력이다. 각 대학이나 학자들이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면 표절은 근절되기 힘들다.

연세대 한준(사회학) 교수는 “외국에선 논문을 동료들에게 두루 읽히고 문제가 없는지 조언을 듣는다”면서 “이 같은 자정 문화가 정착되면 표절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교수 사회의 권위주의적 문화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서울의 모 대학에선 몇 년 전 한 교수의 표절 행위가 적발됐는데도 같은 학과 교수들이 쉬쉬하고 넘어갔다가 제자들이 새로운 표절 의혹을 제기해 징계 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성공회대 이종구(사회학부) 교수는 “교수 사회에 마피아적 문화가 있어 선배가 부정을 저질러도 공론화되지 않는다”며 “대학과 학계에 건전한 비판 문화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이인철 교육생활부 차장 inchul@donga.com

▽사회부

조용우 기자 woogijia@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교육생활부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문화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