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약사 부부 둘째아이 키우기]<38·끝>성공! 이유식

  • 입력 2006년 7월 1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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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딸들은 먹는 문제로 한 번씩 부모 속을 썩인 ‘전과’가 있다. 첫째 승민이는 엄마 젖을 물지 않아 한 달 반 동안 애를 태웠다. 둘째 지원이는 이유식을 잘 먹지 않아 다섯 달 동안이나 신경을 써야 했다.

잘 안 먹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지원이의 죽 먹이기에 도전했던 사람들(이모, 고모, 할머니 등)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진짜 안 먹네….” “맛이 없나?”

아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메뉴의 죽을 끓였다. 하지만 새 죽으로 도전을 거듭하며 기대를 했던 아내는 지원이의 차가운 반응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원이가 잘 먹지 않아 고민하는 사이에 우리 부부는 각종 편법의 유혹에 시달렸다. 죽 대신 차라리 밥을 먹여라, 당장 젖부터 끊어라, 멸치 우린 물로 짭짤하게 죽을 끓여라, 된장 간장으로 간을 해 주라는 등의 조언에 귀가 솔깃했다.

지원이의 야윈 모습을 본 할머니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과일즙과 죽을 같이 먹이면 단맛을 좋아하는 지원이가 죽을 잘 먹을 테니 그렇게 해보라는 것이었다. 대성공이었다. 지원이는 먼저 입을 벌리며 죽을 먹으려 들었다. 죽 반 공기를 게 눈 감추듯 뚝딱 해치웠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기쁨도 잠시였다. 단맛에 길들여진 지원이는 계속 단 것만을 찾았다.

지원이는 반찬처럼 얹어 주는 과일즙이 없으면 먹으려 들지 않았다. 감자쇠고기죽, 닭살죽 등의 각종 식단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과일즙을 얹어 먹이는 게 과연 옳은 방법인지 회의가 들었다. 맛에 대한 기호는 경험에 의해 형성되는 후천적 감각이며 어릴 때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원이가 계속 단 음식에만 집착하면 훗날 소아비만, 소아당뇨에 걸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죽만 먹이기로 결심했다. 단맛에 길들여진 지원이에게 밍밍한 죽을 먹이는 일이 더 힘들어졌다. 약 3주 동안 나는 달래고 아내는 죽을 먹이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아내는 힘들 때 기도를 하기도 했다. ‘지원이가 세상엔 다양한 맛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세요. 음식 본연의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세요.’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한 보람인지 지원이는 죽을 제법 잘 먹게 됐다. 한 달 후 돌이 되면 지원이는 밥과 반찬을 먹으며 더 넓은 맛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성실한 마음과 소신 없이는 원칙대로 아이를 키우기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앞으로 두 아이를 키우며 어떤 시련이 닥칠지 모른다.

그때마다 원칙을 되새기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리라.

<끝>

이진한기자·의사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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