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박수길]‘한국인 유엔총장’ 힘 모아 주자

  • 입력 2006년 2월 13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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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2월 임기가 만료되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후임 후보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크다.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의 방대한 관료조직을 지휘하고 국제평화의 유지와 분쟁을 중재하는 중재인(Honest Broker)이기에 도덕적 권위는 교황에 비유된다. 지역별로 사무총장을 결정하는 유엔의 관례에 따르면 이번은 아시아에서 맡을 차례. 요즘 국제 언론이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의 활동을 주시하면서 그를 유력한 총장 후보로 보도하고 있어 한국의 관심은 더욱 고조돼 있다.

사실 1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인의 사무총장 가능성은 크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태국 수라끼앗 사티아라타이 부총리가 이미 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지지를 받아 선두 주자 위치를 굳히고 있었고 또 스리랑카의 자얀타 다나팔라 전 유엔 사무차장도 공식적으로 입후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자 분단국이기 때문에 독립성과 중립성이 요구되는 사무총장직에 불리하다는 인식도 있었다. 그러나 1년 동안의 사태 발전은 총장 선거의 기상도에 큰 변화를 불러왔고 한국인의 사무총장 당선 가능성을 높여 주고 있다.

첫째, 수라끼앗 부총리의 선두 주자로서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주미 태국대사가 미국의 반대를 예견하고 입후보 철회를 본국 정부에 건의한 문건이 유출되고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태국 안팎에서 나왔다. 둘째, 다나팔라 후보는 스리랑카 정부의 후원 아래 강력한 로비활동을 벌였는데도 국제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셋째, 중국과 러시아는 아시아 지역 외에서 거론되는 후보들을 염두에 둔 듯, 차기 총장은 지역 순환 관례에 따라 아시아에서 나와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

한편 반 장관은 6자회담 등을 통해 미국 중국 러시아 외교장관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북핵 문제와 4강 관계를 균형 있게 관리하는 그의 능력을 평가할 기회를 주었다. 또 반 장관이 작년 말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서방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회원국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아시아 외교관으로서는 처음 초청되어 특별 연설을 해 주목받았다.

사무총장 선거는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총장 선거의 정치적 움직임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유엔헌장은 사무총장 선출과 관련해 “사무총장은 안보리의 건의에 따라 총회가 임명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회가 안보리의 건의를 거부한 일이 없으므로 결국 5대 상임이사국, 특히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타협이 핵심이라 하겠다. 21세기 유엔이 세계 문제 해결의 중심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경영 감각이 탁월하고 비전 있는 ‘세계 최고경영자(CEO)’가 필요한 이때에 한국인의 사무총장 입후보는 국제적인 설득력이 있다.

다만 현시점에서 중요한 변수는 선두주자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5개 상임이사국의 의견이 분열될 경우 고촉통(吳作棟) 전 싱가포르 총리 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 제3의 인물이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거물 정치인 영입론의 의도는 유엔의 위상을 높이고 미국과의 관계도 원활히 하자는 것.

따라서 현재 우리의 전략은 5개 상임이사국 전체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고, 그게 안 되면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4개국의 지지와 중국의 기권을 이끌어 내야 한다. 이 밖에도 일본을 비롯한 안보리 10개 비상임이사국을 설득하고 총회 회원국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도 전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가능성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사무총장 입후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발표가 곧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총장직은 개인 자격으로 맡는 것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역작용도 생길 수 있으므로 국민의 적극적 성원이 필요하다.

박수길 유엔한국협회 회장 전 유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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