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외교문서 191건 공개]韓-日 ‘DJ납치사건’ 정치적매듭

  • 입력 2006년 2월 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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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일어난 ‘김대중(金大中) 납치 사건’은 한국과 일본 정부의 정치적 타협 때문에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이 무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5일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사건 해결을 위하여 그해 11월 2일 일본을 방문한 김종필(金鍾泌) 당시 국무총리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일본 총리에게 “우리 대통령(박정희·朴正熙)께서 당신이 난처하지 않게 배려하실 것이니 앞으로 ‘김대중 사건’은 완전히 잊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다나카 총리는 “김 총리의 방일을 계기로 끝을 맺기로 하자. 이제 이 문제는 ‘파(par: 골프 용어로, 여기선 서로 손해 보지 말고 끝내자는 뜻)로 합시다. 일본 측 수사본부를 서서히 눌러 가면서 없애겠다”며 일본 측 수사를 종결하고 한국에 수사를 일임하는 데 동의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겉으론 ‘주권 침해’ 사건이라며 DJ를 일본으로 돌려보낼 것을 요구했으나 양국 총리의 대화 내용을 기록한 ‘면담 요록’(3급 비밀)에 따르면 다나카 총리는 “그 사람(DJ)은 여기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교문서 원본 파일 다운받기 12345678910

이 사건의 전말은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조사 보고서를 폭로한 1998년 2월 19일자 동아일보의 보도로 대부분 밝혀졌으나 한일 외교교섭 과정이 외교문서를 통해 베일이 벗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는 1947∼74년 문서 중 지난해 12월 외교문서공개심의회를 통과한 것들로 191건, 1만7000여 쪽 분량이다.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는 6일부터 서울 서초구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에서 마이크로필름으로 열람할 수 있다. 동아닷컴(www.donga.com)에서도 주요 문서 발췌본 7000여 쪽 분량을 열람할 수 있다.

▽일본 다나카 총리 “다테마에(명분)”=DJ 납치 사건이 일어나자 일본에서는 ‘주권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한일 외교 갈등으로 번졌다.

9월 초 DJ가 납치됐던 호텔 객실에서 중앙정보부 출신인 김동운(金東雲) 주일 대사관 1등서기관의 지문이 발견되자 갈등은 더 커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일본을 방문한 김 총리에게 다나카 총리는 “김대중 씨가 일본에는 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 사람이 그만한 정치적 센스도 없는 사람이라면 장래성도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다나카 총리는 김 총리가 DJ의 일본 내 정치활동을 문제 삼으면서 앞으로 그런 일이 있으면 추방해 달라고 요구하자 “그렇게 하겠다. 그런 자는 일본에도 매우 곤란하다. 그런 자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고 맞장구를 쳤다.

다나카 총리는 “한일 양국이 수사를 계속해 한국의 공권력이 개입된 것이 판명되면 새롭게 문제 제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 놓고도 김 총리가 “꼭 그렇게 하겠다는 것인가. 다테마에(建前·바깥에 내놓는 명분)인가”라고 묻자 “다테마에”라고 답했다.

심지어 그는 “미국 대통령의 보좌관들처럼 엉뚱한 자들이 나와서 ‘나(납치범)는 대통령이 시켜서 한 것’이라고 하면 야단이다. 그런 일 없겠지요”라며 한국정부가 사건 관계자들의 입막음을 확실히 해 줄 것을 당부하기까지 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다나카 총리에게 전달한, 봉황 문양이 그려진 A4 용지 2장의 친서에서 “최근 의외에도 김대중 사건이 야기되어 일시적이나마 양국 사이에 물의가 생긴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며 본인은 각하와 귀 국민에게 유감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라고 유감을 표시했다.

▽DJ 엘리베이터에서 “살려달라”고 애원=이번에 공개된 문서 중에는 DJ가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온 1973년 8월 13일에서 8월 말 사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진술 요지가 포함돼 있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 진술서에서 DJ는 8월 8일 납치된 도쿄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서 범인들이 자신을 엘리베이터에 태우고 가던 도중 27세가량의 일본인 남녀 2명이 17, 18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타자 일본말로 “살인자다. 살려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남녀는 아무 반응 없이 내려버렸고, 범인 1명이 DJ의 복부를 구타했다.

자동차로 다른 도시로 옮겨진 DJ는 양복 상의에 든 20만 엔과 여권, 롤렉스시계를 빼앗기고 손발이 묶였다. 다음 날 새벽 배로 옮겨진 후에는 하의 속에 있던 20만 엔과 명예 외신기자증 등을 빼앗겼다. 범인들은 DJ가 물을 달라고 하자 “병신 육갑하네”라며 거절하다 얼마 후에는 주스와 미숫가루, 담배를 줬다고 DJ는 진술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김대중 씨 납치사건:

1973년 8월 8일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씨가 일본 도쿄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서 납치돼 한국으로 끌려온 사건. 김대중 씨는 1972년 신병치료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뒤 국내에 유신이 선포되자 귀국을 포기하고 일본에서 반(反)유신 정치활동을 벌였다. 그는 재미교포 반체제단체인 ‘한국 민주회복 통일촉진 국민회의(한민통)’ 결성을 위해 사건 당일 양일동(梁一東) 통일당 당수를 만나러 호텔로 갔다가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됐다. 김대중 씨는 승용차로 오사카로 옮겨진 뒤 다시 배편으로 부산까지 끌려왔다. 납치된 뒤 129시간 만인 8월 13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 인근에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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