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나를 찾아 떠나다]<5>포천 운악산 은성수도원

  • 입력 2005년 8월 12일 03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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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의 영성 수련 전통이 배어 있는 은성수도원의 입구를 한 수련생이 걸어가고 있다. 포천=윤정국 문화전문기자
30년 동안의 영성 수련 전통이 배어 있는 은성수도원의 입구를 한 수련생이 걸어가고 있다. 포천=윤정국 문화전문기자
8일 오후 경기 포천시 화현면 화현 2리 버스 정류장에서 시외버스를 내렸다. 짙은 구름 아래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운악산(해발 936m) 쪽을 향해 시골길을 걷는다. 마을을 지나고 시냇물을 따라 점점 좁아지는 산길로 10여 분간 올라가자 ‘은성수도원’과 ‘장신대 경건훈련원’이란 작은 팻말 두 개가 내방객을 맞는다.

1970년대 수도원이 없었던 한국 개신교계에서 ‘은성수도원’을 설립하고 이후 20년간 선구자적 사명으로 돌봐 온 엄두섭(86) 목사가 10년 전 이곳을 모교인 장로회신학대에 기증해 지금 이 수도원은 영성 체험을 원하는 개신교 신자와 영성 훈련을 하는 신학대학원생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운악산 서쪽 기슭 3300평의 숲 속에 예배실, 기도실을 겸한 숙소 등 15채의 작은 집이 흩어져 있고 여기저기 채소밭이 널려 있어 기도와 노동의 수도원 생활을 할 수 있다. 방은 23개인데 1인 1실이 원칙이어서 23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집과 시설이 30년 전 그대로의 것이어서 낡고 허름하다. 이곳을 관리하는 김현용 목사는 “보수 공사를 하면 영성이 사라진다고 만류하는 사람이 많아 그냥 놔두었다. 영성 훈련을 위해 일부러 불편을 감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지 않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수도원은 목사, 사모(목사의 부인), 평신도 지도자 등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기도훈련을 실시한다. 15∼20명의 단체가 요구할 때는 부정기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날 오후 7시경. 수도원의 이귀옥 목사가 타종하자 방금 저녁 식사를 끝낸 12명의 교인이 예배실에 모였다. 1주일간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이날 입소한 이들은 먼저 이 목사의 인도로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다.

이어 이 목사가 수도원 생활 안내와 함께 기도 방법을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하루 5회, 매회 80분씩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루 400분 기도하는 셈이죠.”

이 목사는 수련생들에게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생애를 자신에게 중요한 사건 중심으로 서너 개의 덩어리로 나누고 각각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가며 집중 기도한 뒤 내일 중으로 그 결과를 노트에 정리해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예배실과 숙소에서 수련생들은 과거로의 회상 여행을 떠나 자신을 붙잡고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한다. 심한 자책감과 함께 회한이 엄습해 온다. ‘내가 그때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탄식과 한숨이 쏟아진다. 밤새도록 바깥에서는 나뭇잎과 풀들이 비바람에 넘어지지 않으려 윙윙거린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가 오전 5시에 일어나 지난 밤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과 가지들을 빗자루로 쓸어 내며 마음을 깨끗이 닦아 낸다. 등에서, 가슴에서 땀이 난다. 그러나 비 갠 운악산 정상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더운 몸을 식혀 준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이 하나님을 뵙게 될 것이다.”(마태복음 5장 8절) 031-532-9994

포천=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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