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박사가 소개한 합성공정은 당시 이 분야를 주도하던 미국의 듀폰과 네덜란드의 악조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듀폰은 두 차례나 한국을 방문해 아라미드펄프의 ‘물질특허’ 소유권을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국내 코오롱이 물질특허 소유권을 갖고 세계 각국에 특허 등록을 마쳤으며 1984년 KIST에 석좌기금 3억원을 기탁해 후속 연구를 지원했다. 당시로서는 몇 년 안에 세계 섬유시장을 석권한다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우리의 아라미드펄프는 상품으로 출시되지 못했다.
윤 박사는 그 이유를 한 마디로 “기술이 시대를 너무 앞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험실 수준에서 연구는 성공했지만 대량생산에 필요한 막대한 인력과 시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것.
윤 박사는 1979년 ‘듀폰의 케블라 섬유 개발’이란 기획서를 제출하고 연구에 몰두했다. 케블라는 듀폰이 개발한 아라미드펄프의 상품명으로 마모가 잘 안 되고 고온에 견디는 능력이 뛰어나 자동차나 엘리베이터 등 ‘브레이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사용될 수 있다. 특히 기존에 같은 용도로 사용되던 석면이 발암물질로 판명되면서 현재 아라미드펄프는 석면을 대체할 유일한 소재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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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박사는 듀폰보다 훨씬 간편하게 아라미드펄프를 만들었다. 아라미드펄프의 재료인 ‘실’의 분자들은 자연 상태에서 서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듀폰은 실 분자에 황산을 처리하고 가는 구멍으로 뽑아내는 방식으로 실을 만들었다. 이에 비해 윤 박사는 마치 양털처럼 분자들이 자연스럽게 성장하면서 실이 형성되는 방법을 찾았다. 윤 박사의 이 연구성과는 ‘네이처’ 1987년 4월 9일 주요논문으로 게재됐다.
하지만 상업화는 달성되지 못했다. 당시 연구에 참여한 영남대 섬유패션학부 손태원 교수는 “무엇보다 아라미드펄프에 특정 화학원료 두 가지가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국내에서 원료공장 두 개를 짓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코오롱 K2태스크포스팀 김두현 부장은 “실험실 수준에서 성공한 방법으로 대량생산을 유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연구를 지속해 상업화에 한 발 다가선 새로운 특허를 몇 차례 획득했다”고 말했다. 현재 코롱은 듀폰의 제조방법과 윤 박사의 연구성과를 결합한 새로운 생산공정을 정립해 올해 안에 성과물을 낼 계획이다. 20여년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우리의 과학적 성과가 조만간 상품으로 등장할 날을 기대해본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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