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바시 요이치 칼럼]韓中日의 ‘과거사 불러내기’

  • 입력 2004년 12월 30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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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60년 되는 해다. 하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로 일본의 여론은 양분돼 있고 일본과 한국과 중국 사이는 껄끄럽다.

내년 세계 각지에서는 2차대전의 비참함과 평화의 중요함을 상기하고 전몰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중국 베이징 루거우차오(蘆溝橋)의 ‘중국 인민 항일전쟁기념관’은 현재 개장 공사 중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인민 학살, 식민지 통치 범죄를 보여주고 반(反)파시스트 전쟁에서 중국이 한 역할과 막대한 희생을 알리기 위해서(북경일보 11월 21일자)라고 한다.

중국 정부는 국제행사를 열 생각도 갖고 있다. 러시아가 내년 5월 주최하는 ‘반(反)나치독일 승리 60주년 기념식’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러시아는 유엔 창설 60주년 축하를 겸해 이를 추진했으며 유엔 총회는 내년 5월 8, 9일을 ‘기억과 화해의 날’로 선언했다.

중국은 러시아와 비슷한 행사를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지위와 정통성, 미중 관계 유지, 대일 압력 수단 등 외교 자원으로 활용하려 한다. 가능한 날은 7월 7일(루거우차오사건), 8월 15일(일본 항복), 9월 2일(일본 항복문서 조인), 9월 18일(일본군의 만주철도 폭파 자작극), 12월 13일(일본군의 난징 학살) 등이다.

중국의 한 지식인은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에 참배하면 보복으로 이런 기회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는 내년이 수교 40주년이며 ‘한일 우정의 해’이기도 하다. 명성황후 시해 110주년, 을사조약 체결 100주년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친일 잔재는 청산되지 않았으며 역사의 진실도 밝혀지지 않았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친일 진상을 규명하자는 법도 만들어졌다.

냉전이 역사를 비뚤어지게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냉전 후에도 역사를 비뚤어지게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중국은 공산당 독재국가이지만 경제와 언론은 급속히 시장화됐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붕괴하자 정권 유지에 필요한 새 이데올로기가 필요해졌다. 그것이 애국주의고, 핵심은 항일 민족주의다. 장쩌민 전 주석은 일본에 대해 ‘저삼하사(低三下四: 비굴하게 고개를 숙인다는 뜻)’하지 말고 의연하게 대처하라고 외교당국에 지시했다.

한편 한반도는 분단돼 있다. 북한은 위기 상황에서 핵을 체제유지 카드로 쓰려는 도박에 나섰다. 한국에는 사회혁명적 친북 민족주의가 판치고 있다.

친일파 비판에 대해 야당은 “노 정권은 친일파 단죄는 국내문제라서 한일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친미파 공격으로 이어지면 대미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과 중국의 약진, 북한 대포동 미사일 발사, 일본인 납북 문제 등으로 국수주의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게다가 ‘군대와 교전권을 보유하려는데 중국이 억누르고 있다’, ‘국가에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감사하려는데 중국이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분노하는 일본인도 많아졌다.

동아시아 국제정치에서는 과거가 미래보다 더 예측하기 어렵다.

▼알림▼

본보가 2003년 7월부터 연재해 온 아사히신문의 ‘후나바시 요이치 칼럼’은 필자 사정으로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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