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국민이 염증낸다

  • 입력 2004년 7월 12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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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이전 반대론을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운동 내지 퇴진운동으로 느끼고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노무현 리더십’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을 옹색하게 만든다. “수도 이전 반대를 주도하는 기관이 서울 한복판에, (정부)중앙청사 앞에 거대한 빌딩을 갖고 있는 신문사가 아니냐”는 데 이르면 옹색함은 절망에 가까워진다. 그 위로 ‘저주의 굿판’이 어른거린다.

이건 아니다. 이승만-박정희-양김(兩金)으로 이어져온 현대사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 욕구가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켰다고는 하나 이런 분열의 리더십으로는 역사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역사가 노 정권에 요구하는 것은 건국과 분단-산업화-민주화 과정에서 빚어진 모순과 갈등을 설득과 화해, 통합의 리더십으로 치유하고 새로운 국가목표의 비전으로 통일시대를 준비하라는 게 아니던가.

▼수도 이전, 승부대상 아니다▼

물론 이를 이루어나가는 데는 현실정치의 환경과 조건이 중요하다. 그 점에서 노 정권이 불리했다는 사실도 인정되어야 한다. 대통령 탄핵사태는 그 원인과 과정이야 어떠했든 노 정권의 불리했던 정치적 환경과 조건을 상징한다.

그러나 탄핵 기각과 여당의 총선 승리로 환경과 조건은 바뀌었다. 대통령이 잘해서, 여당이 잘나서가 아니었다. 환경과 조건을 바꾸어줄 테니 어디 한번 잘해보라는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다. 진보가 보수를 이긴 것도 아니고, 개혁이 반(反)개혁을 물리친 것도 아니다. 나라를 지탱하는 사회공동체의 중심세력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한없이 겸허해야 했다. 대단한 승부에서 이긴 양 우쭐하지도, 스스로를 진보로 칭하며 보수는 악(惡)이라고 기고만장하지도 말았어야 한다. 겸허한 자세로 미래의 국가목표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국정의 우선순위를 차근차근 실천해나가야 했다. 국정의 우선순위는 두말할 것도 없이 먹고사는 문제다. 장기적 국가목표의 1순위도 ‘10년, 20년 뒤 이 나라가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하는 근본 의제일 수밖에 없다.

수도 이전이 수도권 과밀해소와 국토의 균형발전이란 국가의 장기목표라고 한다면 그 자체를 탓할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과연 국정의 우선순위인지, 국가 장기목표로 적합한 것인지는 철저하게 따져봐야 한다. 국회의 정상적 절차를 밟았다고 하더라도 야당이 사과할 만큼 날림이었다면 다시 살펴보는 게 마땅하다.

그렇게 해서 국민적 합의를 구해나가자는 것인데 ‘거대 빌딩 신문사’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반대여론을 주도하고, 거기에는 대통령을 불신임하고 퇴진시키려는 속셈이 깔려있다고 해서야 되겠는가. 수도 이전 논란이 졸지에 대통령과 청와대의 ‘거대 빌딩 신문사’에 대한 ‘공격과 저주’로 둔갑했으니 황당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리라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노 대통령이 수도 이전 논란에까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려 한다면 이 게임에서는 결코 이길 수 없으리라는 점을 미리 알려주고 싶다. 수도 이전은 권력투쟁이나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닌 생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그 점을 간파하고 ‘거대 빌딩 신문사’와의 싸움으로 성격을 변질시켰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라가 조용할 날 있을까▼

대통령 탄핵에는 70%의 국민이 반대했다. 반면에 대통령의 이번 ‘불신임 퇴진운동’ 발언에는 같은 수의 국민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중심세력이 대통령을 탄핵 위기에서 구한 것은 수도 이전 문제까지 ‘정치적 승부수’로 활용하라고 한 게 아니다. 그들이 이제는 염증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국민통합 노력은커녕 매사에 이분법적 리더십을 보이는 대통령에게 실망하다 못해 남은 임기 동안 나라가 조용할 날이 있을까 한숨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분열의 리더십으로는 희망을 만들 수 없다. 수도 이전 논란보다 더 심각한 것은 다수 국민이 대통령 리더십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노 대통령은 희망의 리더십을 복원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탄핵에서 자신을 구한 국민에 보답하는 길이다.

전진우 논설위원 실장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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