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배구조]<10>"개선방안 무엇인가" 컨설턴트 대담

  • 입력 2003년 9월 7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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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 기자
김미옥 기자
《미국의 엔론 스캔들, 국내의 SK글로벌 사태 등을 겪으면서 기업 지배구조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지배구조에 대해 “난해하다”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많다. 기업 지배구조 시리즈의 마지막 회로 국내 유력 컨설턴트 2명의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에 참석한 베인&컴퍼니코리아의 박철준(朴哲濬) 지사장과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서울사무소의 폴 카 부사장은 외환위기 이후 국내 대기업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한 경력을 갖고 있다.》

◇대담자:박철준 베인&컴퍼니코리아 지사장/폴카 BCG 서울사무소 부사장

사회=기업 지배구조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폴 카 부사장=주주(shareholder)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업의 △구조 △과정 △메커니즘이다. 핵심은 이사회다. ‘구조’는 이사회가 어떻게 구성됐는가 하는 것이다. ‘과정’은 이사회가 어떻게 경영진, 최고경영자(CEO), 주주 등과 관계를 맺는가 하는 것이다. ‘메커니즘’은 이 같은 구조와 과정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경영 전반에 자리잡고 굴러가는가 하는 것이다.

박철준 지사장=좀 더 포괄적인 시각에서 보겠다. 기업은 전략, 조직, 인사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이해관계자(stakeholder)’들의 이익을 조정해야 한다. 주주에는 대주주, 일반주주, 소액주주, 장기주주 등 다양한 그룹이 있다. 경영진, 종업원, 노조의 이익도 중요하다. 지배구조 논의는 어떻게 이들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가 하는 문제로 집약된다.

사회=기업 지배구조 논의의 중심에는 이사회가 있다. 바람직한 이사회는 어떤 것인가.

박 지사장=이사회의 역할은 외부의 경험을 내부 경영진에 수혈해서 최선의 결정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사외이사 자질에 대한 모범답안은 없다. 기업은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사외이사를 찾아나서야 한다. 대다수 기업들과 얘기해보면 자신이 원하는 사외이사의 자질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카 부사장=미국에서 이사회는 경영진과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월드컴, 엔론 사태에서 보듯이 CEO를 정점에 둔 경영진의 전횡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사회 의장과 CEO의 겸임 금지. CEO를 출석시키지 않은 이사회 개최 등의 개선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경영진의 횡포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대주주(창업자 및 일가)가 경영진의 의사결정 과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이사회 문제는 얼마만큼 소액주주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사외이사들을 확보하는가에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이사회의 50% 이상은 사외이사로 구성돼야 한다. 이때 사외이사는 단지 기술적 역량(회계 및 법률 지식)뿐만 아니라 소액주주의 관점에서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인물을 뽑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이사회의 주요 위원회는 사외이사가 과반수여야 한다. 이사 추천위원회, 보상위원회가 특히 그렇다. 셋째, 이사회 의장은 사외이사가 맡아야 한다.

사회=지주회사 설립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카 부사장=지주회사는 한국기업들이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이다. 지주회사 체제는 얽히고설킨 지분구조를 청소해줄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지주회사 설립시 자본 및 부채 비율에서 엄격한 조건을 내걸고 있다. 지주회사 설립이 복잡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때문에 기업이 지주회사 전환을 망설이면 안 된다.

박 지사장=상당수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지주회사 전환을 망설이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주회사 설립 요건을 만족시키기가 매우 힘들다. 그러나 삼성도 결국 지주회사 방향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가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 한국기업의 주가가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이 된다고 보는가.

박 지사장=중요하지만 최대 요인은 아니라고 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중에는 북한 핵처럼 한국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서 벗어난 요인들이 많다. 그러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한국이 통제할 수 있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카 부사장=한국 대표기업들의 주가는 20∼30% 정도 저평가됐다고 본다. 그렇지만 단순히 지배구조를 개선한다고 해서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하다. 외국인들이 흔히 얘기하는 한국 측면(Korea Aspect)이 훨씬 중요하다. 안보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이 국제시장에서 ‘톱 마켓 포지션’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이다. 여기에는 브랜드, 기술력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현대자동차와 일본 혼다자동차는 매출에서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혼다는 현대자동차에 비해 훨씬 높은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다.

사회=한국의 지배구조 모범 기업을 꼽으라면….

카 부사장=LG, KTF, 삼성전자의 노력을 높이 사고 싶다. LG는 다른 재벌기업들보다 먼저 지주회사 체제를 택했다. KTF는 이사회 개혁에서 앞선다. 삼성전자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재무정보의 투명성과 정확성에서 가장 앞서는 한국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만큼 연례 보고서를 잘 만드는 한국 기업은 없다.

박 지사장=내 의견도 비슷하다. LG, KT, 포스코 등이 앞선다. 여기에 제일은행을 추가하고 싶다. 이 기업은 사외이사의 비중이 높을 뿐만 아니라 전문성에서도 앞선다. 사외이사가 12명인데 그중에는 미국 상무부 전 장관을 비롯해 미국 유럽 금융기관 임원들이 많다. 선진 금융구조에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많아진다.

사회=한국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제언을 한다면….

카 부사장=첫째, 사외이사 선임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외이사 비중을 얼마로 정하는가 하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소액주주 관점에서 경영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을 뽑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이사회와 CEO의 윤리성을 높여야 한다. 바쁜 사람들이지만 이들도 정기적으로 윤리교육을 받아야 한다. 셋째, 재무정보 공개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재무담당자들은 투자자를 상대하는 기업설명회(IR)에 미숙하다. 세계 수준의 IR전문가를 영입하도록 권하고 싶다.

박 지사장=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CEO가 IR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기업 IR에 CEO가 직접 등장하는 것은 외국에서는 기본이다. CEO가 기업의 재무현황에 대해 설명하면 투자자들에게 훨씬 높은 신뢰감을 줄 수 있다.

사회·정리=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시리즈 끝―

▼전문가 시각 ▼

로버트 재프트
OECD 기업지배구조국 수석연구원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99년 ‘기업 지배구조 원칙’을 발표하며 경영 투명성과 주주가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OECD 기업지배구조국(局)의 로버트 재프트 수석연구원과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기업 지배구조의 세계적인 조류와 바람직한 개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재프트 연구원은 올 6월 발간된 ‘OECD 아시아 기업지배구조 백서’를 총괄한 아시아 기업지배구조 전문가이다.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 아시아 기업들이 지배구조 문제를 안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사회가 제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기업들은 독립적인 이사회 선발을 위한 내부 규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주주가 이사들을 선발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이사회의 독립성이 훼손되기 쉽다. 대주주에 의해 선발된 이사들은 비록 ‘독립적인’ 이사회의 공식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주주의 영향력 안에 있다.”

―이사회 독립이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얘긴가.

“이사회 독립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가 대주주 또는 경영진과 부정한 거래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강력한 제재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 보수 지급과 같이 회사가 공식적으로 경영진과 거래를 해야 할 때는 이사회가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이사회의 결정은 완전하게 공개돼야 한다. 이사회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규제기관과 주주보호단체들은 기업별, 업종별 경영진 보수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지주회사 체제가 지배구조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계열사간 지분 교차소유는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진 소액주주들을 양산한다. 계열사간 자본 분배와 사업 기회를 결정할 때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에, 소액주주들 간에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얘기다. 대기업들이 지주회사 형태로 ‘가족 사업’을 통합하고 정리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고 중요한 조치이다. 상이한 부류의 소액주주가 줄어들고 지배주주의 소유구조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전제 조건은 무엇인가.

“지배구조 개선의 ‘구매자(buyer)’가 누구인지 생각해보자. 바로 지배주주와 경영진이다. 이들은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과 부합된다’고 판단이 서야만 행동에 나설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무역보호, 소프트 론(시장금리보다 낮게 제공되는 정책 금융), 정부 신용 등 보조금 성격의 자금을 지원해주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 이는 지배주주와 경영진이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고자 하는 필요성을 감소시킨다.

둘째, 상장회사와 경영진, 지배주주, 그 가족간의 거래를 금지시켜야 한다.

셋째, 미국 영국 등지에서와 같이 소송 남발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조건하에 주주 집단소송제 도입을 허용해야 한다.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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