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나는 시]난산(卵山)에 가서

  • 입력 2003년 8월 15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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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산(卵山)에 가서/정영주

지는 해가

소나무 가지 사이에 걸려

빠지지 않는다

나무들 뜨거워

온몸 비틀지만

해는 꿈쩍도 않는다

붉은 알을 낳는 해

나무들 뿌리째 흔들어 태우고

하늘은 온통 하혈이다

―‘아버지의 도시’(실천문학사) 중

짧지만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이 시는 일반적인 상징체계를 무너뜨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상징 의미로 형상화되었다. 지금껏 우리가 여성보다는 남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온 소나무는 물론 강한 남성의 상징인 태양까지도 이 시 속에서는 여성화되어 있다. 놀라운 상징 의미의 전복이다.

해는 여성의 다리를 연상시키는 ‘소나무 가지 사이에 걸려 빠지지’ 않고, 그 뜨거운 행위에 나무들은 ‘온몸을 비틀지만 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태양은 강한 에너지가 다소 폭력적으로 분출되는 기존의 상징 의미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하지만 3연에 이르면 태양은 더없이 강한 여성적 이미지로 바뀐다. ‘붉은 알을 낳는 해’는 남성이 아닌 여성인 것이다. 이제 모성을 갖춘 태양은 숲을 통해 에너지를 번식하고 숲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삶을 재생하려 한다. 그리고 그 숲에는 밤과 낮이 공존한다.

광주에 실존하는 지명이기도 한 난산(卵山)의 뜻과 맞물려 절묘한 시각적 효과까지 얻으며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거대한 생명체의 ‘번식을 위한 행위’를 보는 듯한 이 시는 여성과 남성 안에 공존하는 아니무스와 아니마의 차원을 훌쩍 뛰어 넘어 성의 구분 자체를 무의미하게 한다. 늘 이분법으로 나뉘는 우리들의 의식을 비웃기라도 하려는 듯. 어디 그뿐인가. 오랜 세월 동안 회의 없이 남성의 상징체계 안에서 절대적 상위 의미로 군림해 온 하늘마저도 여성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풍기는 ‘하혈’이라는 시어를 통해 성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 그 모호함으로 인해 의식을 차단하던 세상의 야문 매듭들이 헐거워지는 듯한 기분이다. 사물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힘. 세상의 관념에 묶이지 않는 힘. 자신의 시각에 위험을 느끼지 못하거나 위험을 감수하는 힘. 그것 또한 어둠이 내리는 숲 속에서 건강한 삶으로 인도되는 한줄기 광선을 찾는 에너지가 아닐까.

조 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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