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교수의 뇌의신비]호흡조절 장애 '온딘의 저주'?

  • 입력 2003년 8월 10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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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신화에 ‘온딘’이라는 요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한 청년을 열심히 짝사랑했지만 청년은 그녀를 본 척도 안 했다. 분노한 신들은 청년으로부터 자율적인 숨쉬기 기능을 빼앗아 버렸다.

청년은 의식적으로 숨을 쉬어야 한다. 숨 쉬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그는 숨을 쉬기 위해 밥을 먹는 것도 잠시 중단해야 했고, 어떤 생각에 골몰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밤중에 찾아왔다. 그가 잠이 들면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는 것이다. 청년은 밀려오는 잠을 참을 수 없어 결국 죽고 말았다.

이 청년과는 달리 우리는 숨을 자율적으로 쉰다. 즉 숨을 쉬려 매번 애쓰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일부러 심호흡을 할 때도 있고, 물 속에 잠수 할 때처럼 숨을 참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아닌 보통 때는 아무런 의식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숨을 잘 쉰다. 그래서 매일 밤 걱정 없이 잠 들 수 있다.

이런 자율적 숨쉬기 기능은 뇌간에 위치한 몇몇 신경세포들이 담당한다. 우리 몸의 대사 상태에 따라 혈액의 탄산가스, 산소, 알칼리 등이 변화돼 목동맥 근처에 있는 화학적 수용체에 그 상황이 접수된다. 그곳에서 시작하는 말초신경들은 그 정보를 뇌간으로 전달한다. 뇌간의 신경세포들은 이 정보를 분석한 뒤 척척 손을 맞추어 숨을 내쉬거나 들이쉬도록 가로막이나 가슴뼈 사이의 근육에 명령을 내린다. 즉 뇌간은 이런 몸의 정보를 일일이 대뇌에 보고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일을 한다.

그런데 이런 뇌간에 뇌중풍 같은 병이 생기면 호흡조절에 장애가 올 수 있다. 이때 환자는 마치 자신이 자동적으로 호흡하는 것을 깜박 잊어버렸다는 듯 숨쉬기를 게을리 한다. 특히 환자의 의식이 나쁘거나 밤에 잠을 잘 때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드물지만 산소가 부족해져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1962년 세베링하우스와 미첼은 이런 증세에 ‘온딘의 저주’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근 스위스의 보고슬라브스키 교수는 온딘의 저주 증세가 나타나는 뇌간 뇌중풍 환자의 뇌를 부검한 결과 뇌 손상은 연수(숨골)의 의핵과 망상체라는 부위에 국한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의 신들은 온딘이 사랑했던 청년의 뇌에서 바로 이 부분을 손상시킨 것일까?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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