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은의 이야기가 있는 요리]보양식

  • 입력 2003년 7월 17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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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교 기자 tjrry@donga.com
신석교 기자 tjrry@donga.com
대한민국 온 국민이 ‘마른 몸’에 집착하는 2003년의 오늘, ‘보양식’에 관한 원고란 촌스러운 전단지 같다. 게다가 인간은 자신보다 더 똘똘한 기계로 대자연을 조정하려는 무모한 바보들이 되어버렸으니, 보양식 한 그릇으로 심신의 허한 기(氣)를 채우기엔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늦었다고 느낄 때 시작하라는 말처럼, 이제라도 내 몸을 비롯한 자연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나 하나부터 자연과 밸런스를 맞추다 보면 내 몸에서 나는 빛과 향기가 천리 밖까지 퍼질 지도 모른다.

●마음 보양

작년 이맘때 이 칼럼에서 ‘발우 공양’을 설명했었다. 음식 욕심에 앞서 ‘마음의 보양’을 먼저 챙기자는 얘기였었다. 오늘은 ‘몸의 보양’에 대해 말하려 하는데, 우선 간략히 절밥에 관해 복습해 보자. ‘발우’라 불리는 식기는 모두 네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밥, 국, 찬 그리고 물그릇이 그것인데, 모양은 같고 지름만 달라서 차례로 포개면 하나가 된다. 식사를 마치면 남겨둔 백김치 조각을 젓가락으로 꼭 집고 물을 부은 밥그릇부터 닦기 시작한다. 네 개의 그릇을 차례로 씻은 후 백김치는 먹어서 흔적을 없애고, 남은 물은 한곳에 거두는데 이 물은 ‘천수’라 부르며 천수에는 흑임자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 절에서는 천수를 고스란히 땅으로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마음 보양:

●몸 보양

보신을 위한 메뉴는 유난히 동양에 발달해 있다. 서양의 식문화 가운데도 ‘스태미나 식’이라는 장르는 있지만, 말 그대로 회복기 환자나 운동선수 등 특별히 영양보충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한 ‘식이요법’일 뿐이다. 이에 비해 동양에서는 보양식이 생활의 일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돼 있다. 육류 섭취가 넉넉해 고칼로리인 서양 식단에 비해 채소와 곡물 위주의 식사를 하는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여름철처럼 체력 소모가 많은 때면 칼로리 자체가 부족했을 터이다.

최근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파동을 혹독히 겪은 중국에서는 야생 동물 요리를 금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위생상의 이유에서이지만, 야생 동물을 이용하는 중식 메뉴가 총 1800여 가지에 달하는 만큼 이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중국 요리사(史)의 한 줄기가 끝나버리게 된다는 걱정도 따른다.

중국 요리의 영향을 적잖이 받은 한식 역시 1800가지는 아니더라도 다소 의외의 재료를 이용하는 메뉴들이 꽤 발달해 왔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추어탕이나 번데기, 국제적 이슈인 보신탕 등이 그것인데, 동의보감에도 등장하는 고전적 보양식인 오리나 개, 닭고기는 따뜻한 기운의 음식인지라 여름 동안 냉(冷)해진 속을 풀어준다.

일본에서는 연어나 장어, 참치와 같이 기름진 생선으로 칼로리를 보충하기도 하는데, 이들 생선의 공통점은 불포화 지방산의 함량이 높아서 섭취와 동시에 에너지로의 전환이 빠르고 피부나 모발을 윤기 나게 만들어 준다는 것. 전채 요리에 애용되는 아보카도 역시 양질의 기름이 가득하고 깨나 호두 같은 견과류에도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다.

●가정에서의 보양

몸과 마음과 동서양의 보양을 짚어 보니 결국 결핍돼서 경고 신호등이 켜진 곳을 만져 주는 것이 보양이라. 탈진하여 목마른 자에게는 물 한 컵이, 외로운 중생에게는 따뜻한 마음이 보양이다.

가정으로 들어가 보자. 나에게, 나의 가족에게 부족한 양분이 무엇일까 분석해 본다.

예컨대 가슴에 화가 차서 열이 나는 이에게는 보양식이라 챙겨 먹은 더운 기운의 음식이 해가 되는 것이다. 온 가족이 휴일 낮에 먹기 좋은 두부탕 같은 메뉴는 어떨까? 깨를 갈아 넣어 고소한 맛과 폭 익힌 따끈한 두부가 속을 만져줄 것이다. 열이 많은 식구를 위해 오이나 무생채를, 속이 냉한 식구를 위해서는 계란 장조림을 곁들인다.

할인 마트에서 큰 마음 먹고 구입한 양념 장어는 길이방향으로 길게 썰어서 김밥에 고기 대신 넣고 말아 가볍게 영양을 보충할 수 있다. 오리 전문점에서 화덕에 매달아 익히는 오리 고기는 기름이 쪽 빠져서 담백한 맛이다. 한 마리 사서 준비된 쌈 거리와 함께 싸서 먹어 보라. 오리 특유의 향미와 기름기가 밥, 쌈에 섞여 힘을 줄 것이다. 곁들이는 ‘보양주’로는 단연 인삼주가 최고겠지만, 비타민이 풍부한 복분자주나 산머루주, 쌀로 빚은 곡주 등 좋은 낯으로 받은 한 잔 술은 밥맛을 돋우어 주는 데 더하고 덜함이 없을 듯 하다.

박재은

필자가 좋아하는 가곡은 홍난파 선생이 지은 ‘사랑’이란 노래다.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말진 부디 마오’라는 가사로 시작하여 ‘타다가 남은 동강은 쓰올 데가 없나이다’고 맺는다.

흔히들 ‘보양식’하면 ‘정력에 좋은 음식’으로 잘못 연결짓는 경향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사랑한다면 한조각도 안남기고 태우고픈 마음이 우선이지, 초과된 칼로리로 열이 오른 몸뚱이만 있다면 초라할 뿐이다.

아직도 반이나 남은 이 여름에 보양 잘하고 사랑 잘하자. <끝>

박재은 파티플래너·요리연구가

● 두부탕

두부 1모, 밀가루, 식용유, 미나리,

생수 3컵, 들깨가루 200g.

1. 두부 1모는 6∼8등분 하여 물기를 닦고

밀가루를 묻힌 후 기름에 튀겨 낸다.

2. 생수에 들깨가루를 풀어서 걸쭉한

국물을 만들어 뜨겁게 데운다.

3. 1의 두부 위에 들깨국물을 자작하게 부은

뒤 미나리로 마무리하여 향을 돋운다.

*간장을 곁들일 수 있다.

● 장어김밥

양념구이장어 100g, 밥 1공기, 김 2장,

식초 1큰술, 설탕 3분의2큰술,

소금 약간, 오이 50g, 당근 50g,

단무지 50g.

1. 장어는 양념이 촉촉하도록 데운다.

2. 식초, 설탕, 소금을 잘 섞은 뒤 밥을 비벼준다.

3. 식초에 잠시 담가 숨을 죽인 오이, 살짝 볶아서 소금 간한 당근, 단무지를

같은 굵기로 준비한다.

4. 김을 펴고 밥을 펴서 올린 뒤 1과 3의 재료들을 넣고 말아준다.

*생강절임과 날치알을 곁들이면 좀 더 일식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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