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들이 선정한 우리분야 최고]기자 결산 좌담

  • 입력 2003년 4월 27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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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문화부의 신년기획 ‘프로들이 뽑은 우리 분야 최고’ 시리즈가 지난주 11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문화계에서 명망을 얻고 있는 인물들을 대상으로 ‘레이팅(Rating)’를 하는 일이 흔치 않은 데다, 종교, 문화재, 미술 등 그간 ‘순위’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분야까지 망라한 기획이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이 문화계의 평가다. 이 시리즈에 참여했던 문화부 기자들이 모여 이번 기획의 진행 과정과 성과에 대해 방담을 나눴다.》

#기획의도는…

―우리 사회의 큰 병폐 중 하나는 자신의 객관적 위치와 실력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 입니다. 자기가 주장하는 것만이 옳고 남은 모두 틀렸다는 태도, 나는 완벽하고 다른 이는 문제 투성이라는 자아도취적 경향이 강한 편이지요. 특히 문화계가 그런 경향이 심하기 때문에 객관적 검증을 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해당분야에 종사하는 ‘프로’들에게 평가를 맡겼고 문항 당 세 사람씩 추천토록해 몰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습니다. 미국 신문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평가제도를 실시해 권위와 신뢰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번 조사의 결과도 더 나은 문화를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어떻게 설문 대상을 정했는지, 누구에게 설문을 보냈는지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설문 대상자를 정할 때 기자의 자의적 해석은 배제하고, 여러 전문가집단에 자문해 결정했습니다.

―이 기획의 출발점에는 “기자들이 문화계의 실상을 알지 못한 채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취재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자성도 담겨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생각과 문화계에서 눈으로 보이는 흐름과의 차이를 줄여보자는 뜻이죠. 그러나 조사 결과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비교적 덜 충격적이었습니다. 결국 시장에서의 검증이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어느 정도 반영돼 왔다는 의미겠죠.

―종교 분야는 불교와 기독교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표본 수는 많지 않았지만 조사 결과 자체는 무리가 없었고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점은 다행이죠. 천주교를 설문 대상에 넣지 않은 것은 ‘단일지도체제’라는 점을 감안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천주교는 교구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교구의 일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요.

#문화계의 반향

―자존심 강한 문인들의 경우 반발이 클까 우려했는데 오히려 술자리 화제로 삼기도 하면서 조사 결과를 흥미롭게 받아들이더군요.

―여러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한 출판인은 자신의 출판사가 필자를 배려하는 출판사 부분에서는 순위에 들지 못한데 대해 반성하게 되더라는 말을 했습니다.

―어느 연극인은 순위에 들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동료들에게 어느 정도로 평가받는지 알고 싶다고 자신에 대한 추천횟수를 물어왔습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는 예술인도 많이 만났습니다.

―영화 분야에서는 최근 5∼6년간 각종 조사에서 ‘최고의 제작자’로 꼽혀온 인사가 1등을 놓친 것이 오히려 화제였습니다.

―방송 분야의 ‘가장 유망한 신인 탤런트’ 등의 분야에는 방송 및 연예관계자들의 관심이 무척 높았습니다. 방송사의 현역 PD와 작가들이 직접 뽑은 결과여서 새롭게 주목받는 신인탤런트 등에 대한 순위분석은 매우 관심이 가는 분야였던 것 같습니다.

#뜻밖의 반응도 있었다는데…

―방송사 뉴스 앵커 분야의 경우 대부분 현역 앵커보다는 흘러간 인물들이 대거 높은 순위로 나왔습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사람을 뽑아달라’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응답자들은 현재 MBC 엄기영 앵커를 제외하고는 각사의 ‘9시 뉴스’ 앵커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것은 방송 뉴스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적어졌기 때문인지, 스타 앵커의 세대교체를 해내지 못한 방송사측의 잘못인지 해석이 분분했습니다.

―한 목사님은 자신을 추천해 준 분을 꼭 알고 싶다고 물어왔습니다. 그 분을 찾아가서 왜 자기를 추천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목회활동을 해야 할 것인지를 여쭤보고 싶다는 뜻이었죠. 그러나 어느 분이 어떤 답을 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깰 수 없어 알려드리지는 못했습니다.

―설문에서 뽑힌 한 연극 배우는 “나는 10년째 차세대 배우”라며 한숨을 쉬더군요. 연극계는 중견, 원로 배우들의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에 ‘차세대’가 좀 오래가는 편이죠.

―미술 분야에서는 유난히 자천이 많았습니다. 98명이 1회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 만큼 자기 작업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음악계의 경우 연주가들의 경우 설문지 회수율이 극히 저조했습니다. 세계 유명 콩쿠르에서 상위 입상한 한 피아니스트는 “10여 년 동안 공연 연주생활을 했으나 동료 전문 연주가들이 자신의 연주를 보러 온 경우는 겨우 손에 꼽을 정도였다”며 이런 현실에서 다른 연주자들의 자질을 논하기가 힘들다며 서로에 대한 무관심을 꼬집기도 했습니다.

―무용계에서도 “다른 이들의 공연을 보지 않는다”고 답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전문가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공연은 보지 않으면서, 일반인들이 봐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죠.

―해당 분야에서 평판이 좋은 분들이 응답도 성실하게 잘 해주신 것도 특징입니다.

#따끔한 지적들

―출판 분야가 첫 회로 나간 뒤 원로 출판인들이 여전히 활동중인데 현재의 업적만을 중심으로 ‘최고’를 선정한 데 대한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 질문이 타당한가 하는 것은 차치하고 원로들에게 예우 측면에서 누가 됐다면 유감입니다.

―사실 질문자쪽에서는 해방 후 문화 불모 시대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출판계의 기초를 일궈낸 원로출판인들이 거론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결과가 그렇게 나오지 않았죠. 그래서 몇몇 출판인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예술가를 이런 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설문에 응하지 않은 분들도 계셨죠.

―한 원로 시인은 “다른 분들에 대해 너무 잔혹한 짓”이라며 설문에 답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시인은 사석에서 만났을 때 “왜 신문에서 그런 기획을 하느냐”며 마구 야단을 치셨습니다.

―문화재 분야에서도 “학문을 짧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우려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설문에 참여해주신 분들이 해당 분야의 대표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해 주신 분도 계시고요.

#아쉬움과 보람

―어느 예술 분야에서는 계파와 파벌이 심해서 조사를 해보니 ‘자기쪽 밀어주기’의 성향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한 일도 있었습니다.

―문화재, 박물관 전문가를 꼽는 설문에서도 전공이 다른 세부 분야가 많다보니 자기 전공 분야가 아닌 부분은 ‘정확한 학문적 업적’을 평가하는 데 무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명성’이라는 선입견이 좌우했겠죠.

―이번 기획은 스타가 쉽게 뜨고 지는 방송계의 속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때 최고의 여배우로 평가되던 몇몇 톱스타는 ‘최고의 배우’에서 아무도 순위에 들지 못했습니다.

―미술 분야 순위에 오른 화가 한 분은 “조사 결과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하셔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뽑힌 분들도 각오가 새롭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분들이 해당 분야에서 보다 좋은 업적을 내도록 돕고 지원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겠죠. 다시 이런 조사를 할 경우 순위가 많이 바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문화의 발전이 있을 테니까요.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리=주성원기자 swon@donga.com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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