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산업]김지룡/늙지않는 콘텐츠로 승부하라

  • 입력 2002년 12월 5일 17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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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과 통신의 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화두 중의 하나인데, 이 화두에는 콘텐츠 부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반드시 따라다닌다.

올 여름 일본의 국영방송인 NHK의 위성방송에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철완 아톰(우주소년 아톰)’을 방영했다. 시리즈 전편을 방영하는데 하루 10시간씩 일주일이 소요되었다. 콘텐츠 부족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부러운 일일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30년이 훨씬 넘은 애니메이션이었지만 지금도 사람들이 무척 재미있게 본다는 점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생각해보자. 10년이 넘은 영화나 TV 드라마를 다시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을까. 방영 당시엔 시청률 50%를 넘어서 사회적으로 각종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라도 일년만 지나면 다시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다.

드라마나 영화가 쉽게 철 지난 물건이 되는 것은 연출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화려한 3차원 그래픽을 자랑하는 첨단 게임들이 즐비하지만 아직도 테트리스나 벽돌깨기 같은 오래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10년, 20년 된 만화가 복각판으로 다시 등장하는 사례를 최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모두 지금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이런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 같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사람(주연배우)이 주축인 콘텐츠와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처럼 사람이 주축이 아닌 콘텐츠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주축인 콘텐츠는 진부화의 속도가 무척 빠르다.

대중음악을 보면 이 둘의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사람이 좋아서 노래를 듣는 아이돌 가수 같은 경우는 몇 년만 지나면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노래 자체로 승부한 진정한 가수는 본인도 노래도 수명이 길다.

사람이 주축인 콘텐츠는 말 그대로 사람을 즐긴다. 그런데 사람은 쉽게 늙고 쉽게 변한다. 청춘 스타도 몇 년 지나면 더 이상 청춘이 아니다. 스캔들로 이미지가 바뀌기 일쑤다. 수용자의 생각도 변하기 때문에 동질성이 쉽게 사라져 버린다. 시대의 상징인 사람도 시대가 변하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일본은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콘텐츠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현재까지 제작된 TV 시리즈 애니메이션만으로도 1만5000시간 이상을 방영할 수 있다. 그런데도 콘텐츠 부족을 걱정한다. 사람이 주축인 콘텐츠만을 주로 만들어 온 우리는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당대의 스타를 기용해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콘텐츠의 성공을 보장하는 지름길일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장기적 시각을 지닌다면 애니메이션처럼 사람이 주축이 아닌 콘텐츠야말로 회사의 자산으로서 축적되는 콘텐츠라는 점을 의사결정의 한 축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김지룡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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