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읽는 책]시와 노래가 하나될때 ´제비꽃´

  • 입력 2002년 7월 12일 17시 54분


예로부터 시와 노래는 하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시는 고고한 탑 위에 앉아 대중들에게 외면 받기 시작했고 노래는 신세대 대중문화의 홍수 속에서 노래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시노래 동인 ‘나팔꽃’이 펴 낸 북시디(BOOK-CD) ‘제비꽃 편지’(2001·현대문학북스)는 시가 새롭게 존재 의의를 찾으며 대중을 만나고 노래는 시 정신을 받아들여 서정성을 회복하고자 만든 책이다.

이 책은 읽었다기 보다는 요즘 내가 즐겨 듣는 노래라고 쓰는 것이 더 좋을 듯싶다. 신문이나 방송 그리고 출판사마다 아직 축구 열기가 식지 않고 거대 담론이나 인문서적들의 홍수에 어느덧 식상하고 지쳐갈 때 문득 심플하면서도 간략하게 정리된 이 책은 문장보다 먼저 음으로 다가왔다.

책이라기보다 음반이라고 쓰는 것이 더 좋을 듯싶다. 어찌보면 서점보다 레코드점에 있는 것이 더 어울릴 듯싶다. 작은 국판 싸이즈에 모두 120쪽 그리고 케이스와 함께 음반이 들어있는 이 북시디는 시인 안도현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안도현의 삶과 문학, 그리고 시가 된 그의 노래 6곡을 담고 있다.

세상이 무거워서 한 시간도 못 되어 시든 제비꽃을 보고 시들 때는 시들 줄 알아야 꽃인 것이라는 ‘제비꽃 편지’ 그 역설의 노래가 참 겸손하면서도 서정적이다.

‘찬밥’이라는 노래도 있다. 노래로 붙여진 시마다 악보도 있다.

참 재미있는 책이다. CD를 틀고 노래를 듣다가 찬밥처럼 방구석에 밀쳐있는 기타를 들고 서툰 솜씨로 악보를 본다. ‘찬밥은 쓸쓸하다 찬밥을 먹는 사람도 쓸쓸하다 그대의 저녁 밥상 위에 나는 김나는 뜨끈한 국밥이 되고 싶다’

‘작게, 낮게, 느리게’를 모토로 나팔꽃 동인의 시인과 가수 12명이 모여 그들의 시와 노래들을 집약 시켰다. 싱어송라이터 백창우가 부른 ‘하수도는 흐른다’도 재미있고 김현성의 노래로 듣는 한국의 명시도 돋보인다.

책을 언제 이렇게 즐기며 읽어본 적이 있었던가. 읽고 듣고 부르고.

두꺼운 책 그것도 세로 조판의 깨알만한 활자의 책들이 나오던 시절, 배낭 가득 책을 싸들고 깊은 산속 절간에 들어가 몇날 며칠 책만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밖으로 나왔을 때 귀 밑으로 불어오던 바람 소리, 처마 밑에서 들려오던 풍경소리에 마치 대오한 스님처럼 절간 마당을 맨발로 뛰어 내려간 적이 있었다. 책의 감동과 자연의 쉼표가 어우러져 순간 나를 일갈하게 만들었던 것 같았다.

이 책은 아니 이 음반은 빽빽한 생활과 직업상 수많은 책을 읽고 검토해야 하는 내게 하나의 쉼표로 들렸고 읽혔다. 북시디 여섯번째 수록된 정호승 시인의 ‘술 한 잔’이라는 시는 언제 읽고 들어도 좋다. 이 시를 읽으며 내 인생에 술 한 잔 사주고 싶다. 우리들의 인생에 술 한 잔 사주자.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권대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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