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삼국지’ 백가쟁명 시대

  • 입력 2001년 12월 3일 11시 04분


출판계에 때아닌 '삼국지' 붐이 불고 있다. 문단 대표 작가들이 앞다투어 삼국지 번역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사례로는 중견 소설가 조성기씨가 < 삼국지 >(열림원)를 낸 것을 들 수 있다. 총 10권짜리로 1차분 5권이 먼저 나왔다. 나머지 5권은 내년 1월경 출간될 예정이다.

조성기판 '삼국지'의 경우는 정역본(正譯本)임을 강조한다. 조씨는 출간의 변을 통해 "우리나라에는 '삼국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유인 즉, 한결같이 < 삼국지연의 >를 다시 연의(演義)한 것, 즉 '삼국지'를 의역한 것을 다시 의역한 것이 대부분이란 이야기다.

이처럼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해서 그런지 문장은 다소 딱딱한 편이다. '하드보일드 스타일 삼국지'라 부른다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듯 싶다. 대신 한문투 표현을 최대한 자제했고, 권당 20컷 정도의 수묵화를 넣으면서 책에 윤기를 주려했다. 특히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겨냥한 시도로 보여진다.

소설가 황석영씨의 경우 내년 봄 10권짜리 < 삼국지 >를 선보일 예정이란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황씨 역시 조씨처럼 '정본 완역'에 무게를 두고 번역할 예정이며, 풍성한 주석을 달아 교육적 가치를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문단의 '앙팡 테리블'로 불리는 소설가 장정일씨도 내년 말 < 삼국지 > 출간을 위해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젊은 삼국지'를 모토로 평역(評譯)보다는 평설(評說), 즉 번역의 충실함보다 극적 재구성에 힘을 실을 요량이라는 것이 출판사측의 설명이다.


조성기/이문열/김구용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 삼국지 > 번역본은 이문열판 < 삼국지 >(전10권·민음사)와 김구용판 < 삼국지 >(전7권·솔)가 대표적이다. 이씨 것은 평역본, 김씨 것은 정역본을 각각 대표하는 작품으로, 지금까지 이씨 것은 1400만부가, 김씨 것은 50만부가 팔렸다. 판매량을 보자면 "볼 사람은 다 봤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그런데도 내노라하는 작가들이 < 삼국지 >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안정적인 수입원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 삼국지 >는 광범위한 독자층을 갖고 있고 시대를 불문하고 꾸준히 읽히는 매력적인 상품이기 때문이다.

< 삼국지 >를 처음 접하는 학생 등 신규 독자만이 아니라 30대나 40대가 되어서 다시 이 책을 집어드는 성인층도 두텁다. 출판계에서 매년 < 삼국지 > 신규 수요를 50∼60만부 정도로 추정하는 것은 이런 저간의 사정이 고려된 것이다.

경제적인 면 외에 < 삼국지 > 원전은 재해석의 여지가 많아서 작가로 하여금 새로운 번역에 도전하고픈 의욕을 자극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 삼국지 > 원전의 일차 번역에만 힘쓸 뿐 그것의 재해석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일본의 경우 '국민 삼국지'로 불리는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 삼국지 > 외에도 다양한 ‘파생 상품’이 나와있다.

예를들어, 오(吳)나라 입장에서 기술한 < 오(吳) 삼국지 >, 간웅(奸雄) 조조의 입장에서 쓴 < 반(反) 삼국지 >, 삼국지 주인공의 후손들의 활약상을 소설화한 < 후(後) 삼국지 > 등 다채로운 판본이 만들어져 다양한 독자층의 기호를 충족시키고 있다.

<윤정훈 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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