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리뷰]강렬한 청춘의 기억<러버스 키스>

  • 입력 2001년 10월 18일 11시 25분


후지이 토모아키는 지역유지의 외아들인데다 핸섬한 외모로 카마쿠라 현립 고등학교의 유명인사. 그러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소문은 아버지가 사준 고급맨션에서 매일같이 여자들과 놀아난다느니, 임신시킨 여자를 아버지 병원에서 낙태시켰다느니 하는 식으로 질 나쁜것 투성이다. 이른 아침 바다에서 서핑하고 있던 후지이와 우연히 마주친 리카코는 소문과는 달리 어딘가 부드러운 눈매를 지닌 그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막연한 불안감에 망설이는데 ..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지이와 리카코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두 사람의 관계가 주변 인물들의 마음마저 파문을 일으켜 조심스레 감춰 두었던 감정들이 하나, 둘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리카코를 좋아하지만 친구의 자리를 지키려는 미키와 그런 그녀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리카코의 여동생 에리코. 후지이를 선배로서 동경하던 마음이 연애감정으로까지 발전한 사기사와와 그런 그에게 저돌적으로 대쉬하는 후배 오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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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소년과 세 명의 소녀가 얼키고 설키는 무려 육각 관계의 드라마는 발랄명랑한 보편적인 학원 연애물과는 전혀 달라서 담담하면서도 어딘가 애달프고 가슴 시리다. 연민, 호감, 우정, 동경 ... 그 무엇 하나 때문이라고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열병에 휩싸인 마음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애정의 형태를 잡아가고. 그 과정을 건조한듯 하면서도 산뜻한 이미지와 대담한 연출의 옴니버스로 보여주는 만화가 바로 <러버스 키스>이다.

솔직히 내용만 간추려 보면 한마디로 요지경이다. 도무지 고등학생의 그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문란한(?) 일상사 묘사도 약간은 충격이다. 그럼에도 이 만화를 꼭 추천하고 싶은 이유. 그저 그렇고 시시한 플롯들을 완성도 높은 연애 단편물로 그려낸 노련미 넘치는 작가 아키미 요시다의 매력이 단연 돋보이는 탓이다. 연애감정으로서의 애정의 본질을 개개인이 가공, 연마하는 과정을 세련미 넘치면서도 가장 만화답게 표현한 작품이 아닐까.

타인의 애정관, 특히나 일반적으로 터부시되고 있는 동성을 향한 미묘한 감정들이 대중에게 설득력을 갖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고민하고, 상처 입고, 아파하면서도 결코 내색하고 싶어하지 않는 진솔한 그들 모두가 스스로의 감정에 주저없이 당당하기에 애틋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 ... 더 말할 것도 없겠지. 난 이미 그 사람을 만나버렸으니까 - "

거창하게 운명 운운하지 않아도 좋다. 이미 만나버린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소녀가 소녀를 좋아하고, 소년이 소년을 원해도 어쩔 수 없는일 아닐까. 애정의 결말이 무엇이냐에 따라 두 사람이 마주 보며 미소 짓던 순간, 함께 지내 보낸 계절의 빛이 퇴색될리 없으니 말이다. 결국 무엇 하나 명쾌한 답이 있을 수 없는 그들의 결론이 묘하게도 딱부러진데가 있는 건 <러버스 키스>가 보여준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될 보석같은 시절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 때문이리라.

김지혜 <동아닷컴 객원기자> lemon_ja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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