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과 서의 벽을 넘어]<13>중국사회과학원 왕수런교수

  • 입력 2001년 3월 25일 18시 59분


중국적 사유방식의 특징을 ‘형상적 사유(象思惟)’라는 개념으로 설명해온 중국 사회과학원 왕수런(王樹人·65) 교수. 그는 본래 중국의 저명한 헤겔 및 스피노자 연구자인 허린(賀麟) 교수의 지도 아래 칸트와 헤겔의 철학을 전공했다.

“1986년경 방문학자로 2년간 독일에 가 있을 때였지요. 제 전공인 헤겔에 관해 주제발표를 할 때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학자들이 중국 철학의 현황에 대해 발표하자 일일이 답변을 다 할 수 없을 만큼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그는 이 발표를 들은 독일 하겐대 철학과 주임교수의 요청으로 중국철학과 서양철학을 비교 연구한 저서를 집필하게 됐고, 그 성과로 나온 것이 대표작 ‘전통지혜의 재발견(傳統智慧的再發見·1996)’이었다.

물론 이런 성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중국과 서양의 철학과 문화를 비교 연구해 온 중국 지식인들의 오랜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20∼30년대 시작됐던 중서(中西)철학의 비교연구는 1949년 해방 후 중단됐다가 1976년 개혁개방 이후 다시 붐이 일기 시작했어요. 사르트르, 후설, 하이데거, 니체 등의 열풍에 이어 일찍부터 중국과 서양의 회통(會通)에 관심을 쏟았던 캉여우웨이(康有爲), 량치차오(梁啓超), 후스(胡適), 펑여우란(馮友蘭), 탕준이(唐君毅), 장준마이(張君6) 등에 대한 연구들이 이어졌지요. 저도 이 때부터 이런 비교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형상적 사유’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과 다른 중국적 사유의 특성을 명쾌하게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은 심리학을 전공한 아내의 도움도 컸다.

그는 올 1월 사별한 아내 위바이린(兪柏林·전 중국과학원 심리연구소 교수)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한자의 상형성(象形性)이 지닌 특징을 인지심리학적으로 해명하고 그것이 중국전통의 사유와 문화에 끼친 영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두 개의 효(爻)로 세계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주역’의 ‘총체적 사유(整體思惟)’나, 사실판단이나 가치판단이라는 논리적 사유를 중단한 채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선(禪)의 ‘깨달음(開悟)’의 과정이 모두 ‘형상적 사유’의 전형이라고 주장한다. 예술에서 형식이 아닌 내용과 정신을 묘사하는 ‘예술적 경지(意境·의경)’의 ‘뜻묘사(寫意性)’ 역시 이런 중국 전통예술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왕 교수는 이 ‘형상적 사유’의 설명방식을 각 방면으로 확장, 대상을 분석적 분절적으로 사유하는 서양인과 달리 단번에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중국인의 ‘오성(悟性)적 사유’를 설명하려 한다. 그는 이를 통해 중국에서 새로운 철학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석원호(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생·경북대대학원 졸)

◇왕교수 약력◇

△31936년 중국 지린(吉林)성 둥펑(東豊)현 출생.

△1962년 베이징대 철학과 졸업.

△1965년 중국과학원 철학연구소 졸업(서양철학사전공).

△1965년∼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박사지도교수.

△저서 및 논문: ‘전통지혜의 재발견’ ‘형상과 형상적 사유 연구(論象與象思維)’ ‘철학의 종결과 철학의 현재 위치(哲學的終結與哲學的現代位置)’, ‘주역의 형상적 사유와 그 현대적 의의(周易的象思維及其現代意義)’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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