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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의 우리거리 읽기]서울 이태원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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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의 우리거리 읽기]서울 이태원 길

입력 1999-06-28 18:58수정 2009-09-24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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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번호 적힌 편지 바로 가고 빨리 간다’. 그러나 아무리 우편번호부를 뒤져봐도 우편번호를 찾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주소를 한글로 아무리 또박또박써도 편지가 배달되지 않는다. ‘APO AP 96205’라고 우편번호를 쓰고 영어로 주소를 써야 하는 곳.

용산은 주둔군의 점령지였다.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의 보급기지였다.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군대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는 일본군대가 차례로 주둔하던 곳이다. 광복이 되어 일본군을 무장해제 시킨다며 밀려온 미국 점령군도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주한미군 사령부, 한미연합사 사령부도 들어섰다. 주위로는 철조망이 솟았다. 100만평 넓이의 치외법권지대는 그렇게 서울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미군기지가 의정부에 남긴 부산물이 부대찌개라면 용산에 남긴 것은 이태원(梨泰院)길이다.

한성으로 들고 나는 길손들이 쉬어가던 이태원은 주위에 미군기지와 외국공관, 관저가 들어서면서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요란한 무늬의 티셔츠, 오토바이 폭주족들이 좋아할 만한 가죽옷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섰다. 내로라 하는 상표의 옷과 가방도 등장했다. 밀라노나 파리가 아니고 인근 해방촌에 자리잡은 피란민들이 재봉틀을 돌렸다. 허리 크기가 맞는 바지를 찾을 수 없는 뚱보 아저씨도, 나이트클럽에서 입을 요란한 무대복을 찾는 악사도 이태원을 찾았다.

시장은 골목 끝보다는 골목 어귀를, 경사지보다는 평지를,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을 좋아한다. 이태원길의 상점 골목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진짜같은 모조품일수록 이 길의 용산쪽 입구에 모여 있다. 상점 골목은 남산으로 오르는 방향보다 한강으로 내려가는 방향으로 더 발달해 있다. 골목에는 빼곡히 천막이 쳐져 있다. 실내와 실외의 구분도 없이 미로처럼 꼬부라진 이 골목들이 보여주는 것은 치밀하게 거리에 스며든 생존의 논리. 건축가 없는 ‘건축의 정교함’.

이태원은 이국지대다. 이 거리에서는 한국어와 영어 뿐 아니라 중국어와 일본어도 들려온다. 언덕 위에는 이슬람 성전도 있으니 알 수 없는 중동의 언어도 들려온다. 한우전문이라는 정육점도 이름은 ‘타지마할’ 정도가 돼야 명함을 내민다. 미군 병사들이 회포를 풀 소위 텍사스 골목이 여기서 빠지지 않는다. 재즈가 한국에 전파된 첫 거리가 바로 이태원. 밤이면 요란한 네온사인을 밝힌 나이트클럽과 디스코텍의 거리도 생겼다. ‘부킹’이라는 이상한 유흥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곳도 바로 이태원이다. 성(聖)과 속(俗), 낮과 밤이 두루 섞인 이태원은 관광특구라는 이름도 얻었다.

이태원길 입구에는 ‘이태원약사(Brief History of Itaewon)’라는 팻말이 서 있다. ‘옛날 찬바람재라고 불리던 이태원 교차로에서부터 1.4㎞의 거리로 일반점포 1500개소, 위생업소 300개소가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영어 설명문은 좀 에누리를 해서 ‘200 hygienic(위생적인) business stores’가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이 거리에는 화장지나 비누를 파는 상점이 정말 그리도 많은가. 차라리 솔직하게 ‘환락가’라고 하지. ‘위생업소’가 그렇게나 많다는 거리에 저녁이면 가로수 밑둥마다 쓰레기가 넘쳐난다. 위생을 이야기하는 건물은 꼭 하나 있다. 공중화장실. 아니나 다를까, 콘크리트 기와집이다. 전통 양식을 따른다고 기와집으로 지으면서, 어울리지도 않는 콘크리트로 했으니 그 모양부터가 어울리지 않는다. 이 건물은 생김새만 흉칙한 게 아니고 휴지 인심도 야박한데다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이것이 위생업소가 즐비하다는 거리의 현주소다.

이 거리에서는 3대째 가짜만 만들어 왔다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만 있다고, 정부에서 팔지 말라는 것만 판다는 무용담이 들린다. 호객꾼들은 피곤하게 소매를 끌고 손님들은 에누리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다 아는 가짜를 사면서 신용카드는 왜 꺼내느냐고 한다.

이 거리가 국제적인 쇼핑명소라고, 고급 쇼핑공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태원 소방서 골목길을 미군 병사들이 부르는 이름은 사창가(hooker's valley). 지문 찍은 주민등록증을 가진 남자는 들어갈 수 없는 이상한 술집들. 공자님의 말씀을 떠받들던 이 나라는 어느덧 사창가를 관광명소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푸른 숲 속의 용산 미군기지는 그만큼 이나 푸른 멍으로 한국근대사가 남겨놓은 상처다. 이태원길은 그 상처가 터져 나온 흔적일 뿐이다.

눈을 부릅뜨고 휴전선 너머 적진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안보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미군에게 우리 땅을 제공한 것일까. 그렇게 주어진 땅은 8000만평. 30년 전의 4억평에 비하면 줄기는 줄었다. 그러나 서울 한복판이 굳이 그 남은 땅에 포함되어 있을 필요는 없다.

용산에는 산타클로스가 살지 않는다. 명분과 실리를 항상 꼼꼼히 재보는 나라의 군대가 사용료도 내지 않고 주둔해 있을 따름이다. 그 나라 정부에서 월급 받고 일하는 병력이 있을 뿐이다. 이태원의 노점상들은 5달러짜리 티셔츠를 팔면서도 고맙다고 한다. 그러나 수십억달러 어치 전투기와 미사일을 파는 이들은 고객의 집 안방에 진을 치고 앉아 있다. ‘상호이해’와 ‘성숙한 동반자 관계’가 이야기되려면 지켜야 할 예절은 서로 지켜야 한다.

한가운데 넘을 수 없는 철조망이 쳐진 도시에서는 도시계획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남산도 뚫고 지나가는 도로가 철조망은 비껴가야 했다. 지하철 4호선은 이촌, 신용산으로 굽이굽이 돌아가야 했다. 후암동과 연결돼야 할 동작대교 북단도로는 직각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전할 것 같던 미군기지는 성의표시만 하고 그냥 주저앉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서든, 저소득층 임대주택이 들어서든, 아니면 공원으로 남든 철조망은 걷어야 한다. 남산에서 용산, 한강, 국립묘지로 이어지는 푸른 숲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센터서클에 철조망이 쳐진 운동장에서는 제대로 축구를 할 수가 없다. 축구선수들도 투덜거리고 관중들도 야유를 한다. 철조망을 걷어내라고, 저 감독 갈아치우라고, 저 선수 빼라고 관중석 구석구석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이들이 축구를 지탱한다. 이 도시에 쳐진 철조망도 걷혀야 한다. 흥분한 관중들이 빈 소주병과 깡통을 던지기 전에.

서현(건축가) hyun1029@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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