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 이병철 “삼성중공업 주겠다” 제의… 청암 박태준 “국가 일 맡아 곤란” 사양

  • Array
  • 입력 2011년 12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日 와세다 대학 선후배
故 이병철-박태준의 인연

1976년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왼쪽)가 포항제철을 찾았을 때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경영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1976년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왼쪽)가 포항제철을 찾았을 때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경영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선배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을, 후배는 제철보국(製鐵報國)을 인생의 신념으로 삼았다. 선배는 호암(湖巖)을 아호로, 후배는 청암(靑巖)을 호로 정했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수학한 선후배는 평생을 ‘존경하는 선배, 아끼는 후배’ 사이로 지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와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화를 이끈 1세대 거목이면서 특별한 인연을 이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호암은 1910년생, 청암은 1927년생으로 나이 차이가 17년이나 나지만 두 사람은 1961년 처음 만난 뒤 평생을 존경하고 아끼는 사이로 지냈다. 지난해 2월 호암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 때는 고 박 명예회장이 축사를 했고 호암 20주기 때도 추모사를 했을 정도다. 청암은 호암의 20주기 추모사에서 “1961년 6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에 회장님과 처음 만난 이후 1987년 11월 회장님께서 이승의 인연을 놓으실 때까지 26년 세월 동안, 저에게는 회장님의 격려와 관심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지난해 2월 호암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 때 청암은 팔순이 넘은 고령임에도 축사를 할 때 부축 없이 연단에 올랐지만 13일 결국 24년의 시차를 두고 호암을 따라갔다.

○ “300억 원씩 5년간 지원하겠다”


1980년대 초였다. 호암은 청암을 자주 불러 경영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곤 했다. 하루는 호암이 “삼성중공업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데, 연간 300억 원씩 5년을 지원할 테니 자네 회사로 받아가서 책임지고 살려라”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암은 “과분한 선물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제 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국가의 일을 맡아 중도에 그만둘 수야 없지 않습니까”라고 답했다. 호암은 “자네다운 대답이고, 아름다운 대답”이라고 했다.

후일 청암은 이 일화에 대해 “저의 노후를 염려하신 (호암의) 그 뜨거운 인간적 애정만은 저의 영혼에 지금도 가장 고귀한 보석처럼 박혀 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 호암의 갈등 조정


1983년 포스코가 포항제철소에 이어 광양제철소 건설을 시작하자 일본 철강업체들은 포스코와의 협력을 거절하고 견제를 하기 시작했다. 일본 철강업계가 포스코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안 호암은 같은 해 여름 청암과 신일본제철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 회장의 만남을 주선했다. 호암은 당시 이나야마 회장에게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잘되는 분야를 더 확대 재생산하는 것인데 한국에선 포철이 가장 잘되고 있다. 박태준 회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제철소 하나 더 만들어서 수출하려고 한다. 다행한 일이고 격려하고 협조할 일이 아닌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 병상에서 구술로 회갑문집에 글


호암이 청암에게 준 마지막 선물은 ‘글’이었다. 호암은 타계 직전 병상에서도 구술로 청암의 회갑 문집에 들어갈 글을 써주었다. 그 글에서 호암은 “(청암은) 군인의 기와 기업인의 혼을 가진 사람이다. 경영에 관한 한 불패의 명장이다. 우리 풍토에서 박 회장이야말로 후세의 경영자들을 위한 살아 있는 교재로서 귀중한 존재”라고 썼다.

1970년대에 호암이 포항제철을 찾았을 때 포스코의 연수제도에 감명받은 호암은 “삼성 사람들에게 포철의 연수제도를 견학시키겠다”며 “후배한테 한 수 배우는구먼”이라고 했다. 대신 호암은 두꺼운 장학금 봉투를 청암에게 보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