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이승재의 무비홀릭]분식집, 뱅어포 그리고 ‘어스’
더보기

[이승재의 무비홀릭]분식집, 뱅어포 그리고 ‘어스’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입력 2019-04-19 03:00수정 2019-05-09 15:52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영화 ‘어스’. UPI 코리아 제공
<1>분식집=전교 1등을 밥 먹듯 하던 내가 중학생 시절 혐오했던 대상은 분식집이었다. 남·여학생들이 떡볶이를 먹는답시고 앉아서는 서로 힐끗힐끗 훔쳐보고 시시덕거리는 분식집이야말로 청소년 탈선의 온상이라고 굳게 믿었던 내가, 철나고 처음으로 분식점에 간 것은 고1 때였다. 하기도 지겨운 반장을 또 했던 나는 학년 초 학급을 꾸미는 미화 활동에서 아니나 다를까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반장이 한턱내라”는 급우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하굣길 분식집에 떠밀리듯 들어간 것이다.

난생처음 ‘라볶이’를 맛본 나는 깜짝 놀랐다. 라면도 아니고 떡볶이도 아닌 것이 살인적으로 맛있는 게 아닌가. 긴 머리를 말총처럼 뒤로 동여맨 30대 초반의 매력적인 분식집 누님이 “네가 그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겼다는 친구구나?” 싱긋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섰던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그 맛난 라볶이를 세 젓가락밖엔 먹지 못했다. 그만큼 ‘무균질’ 영혼이었던 나는 그날 밤 남편과 이혼한 뒤 미친 듯이 나를 쫓아다니며 구애하는 분식집 누님의 꿈을 꾸었고, 며칠간 공부를 할 수 없었다. 내면적 갈등 끝에 나는 분식집에 출입하는 잘못을 저질렀음을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진심으로 참회한 뒤 공부에 도착적으로 매달렸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분식집만 보면 왠지 모를 죄책감에 가슴이 불규칙하게 뛰는 일종의 공황장애를 겪었고, 이런 뼈를 깎는 담금질을 통해 지금처럼 ‘창의적이고 재수 없는’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뱅어포=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공포가 있다. 사람마다 고유의 경험과 취향과 사고체계가 있어서다. 난 뱅어포만 보면 무섭다. 실처럼 가느다란 작고 투명한 물고기 수만 마리가 서로 뒤섞여 짓이겨진 모습. 수없이 많은 까만 눈들을 쳐다보는 순간, 로댕의 ‘지옥의 문’을 보는 것만 같은 아비규환이 겹쳐지는 것이다.


섬섬옥수 같은 발가락을 볼 때도 난 근원적 공포를 느낀다. 신발 끈도 맬 것 같은 저 발가락이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악당 데비 존스 선장의 문어발 수염처럼 꿈틀대는 모습이 자꾸만 상상된다. 또 ‘소확행’이란 단어를 들을 때 난 무섭다. 크고 확실한 행복을 얼마나 약속하지 못하는 세상이기에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뇌리에서 지우도록 강요받고 ‘오늘만 사는’ 인간으로 개조되고 있느냔 말이다.

<3>어스=
이런 맥락에서 얼마 전 국내 개봉한 할리우드 공포영화 ‘어스(Us)’는 공포를 촉발하는 방법론이 사뭇 남다르다. 이 영화는 겨우겨우 중산층에 다다른 흑인 가족이 간신히 장만한 시골 별장으로 오래된 벤츠 승용차를 몰고 휴가를 떠났다가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 가족을 만나 섬뜩한 살해 위협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주요기사

사회학적으론 자본주의의 달콤한 과실을 혼자 따먹어 온 미국 주류 세력이 그들에게 오랜 세월 기회를 박탈당해 온 사회적 소수들의 연대에 의해 한 서린 보복을 당한다는 해석이 가능하고, 요즘 한국식으로 해석하자면 똘똘한 한 채가 있는데도 대출받아 별장까지 구입해 부자 흉내 내다가 처절하게 응징당하는 적폐 1가구 2주택자의 비극을 그렸다고 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선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다. 공포의 상징이 꼽등이나 연가시 같은 ‘극혐’ 동물이 아니라 귀여운 토끼로 설정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무표정으로 철제 우리에 갇힌 토끼 수백 마리를 보여줌으로써 성공 사회에 중독된 인간들의 몰개성과 소외, 욕망의 자기 복제를 은유하는 전복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영화엔 토끼보다 알고 보면 백배 무서운 존재가 등장하는데 바로 ‘나’ 자신이다. 나랑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들에게 맞서 싸우던 주인공 가족이 어느새 신나게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상대를 절단 내면서 도플갱어보다 훨씬 더 잔인무도한 존재로 변해가는 모습이야말로 영화가 던지는 가장 식겁할 메시지인 것이다. 나쁜 놈에게 맞서 싸우다 보니, 내가 그놈인지 그놈이 나인지 헷갈리게 된 나. 그럼에도 나는 엄연한 피해자이므로 DNA부터 다른 순결한 존재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자기 확신. 이만한 광기와 폭력이 세상에 또 있을까. 현실이 그래서 공포다.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

※유튜브에서 ‘무비홀릭’을 검색하면 ‘어스’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분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무비홀릭#어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