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4명꼴 검사 사표… 윤석열호 뜨자 폭풍치는 서초동[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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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총장 지명후 67명 줄사표
“적폐 수사 참여 검사는 승승장구… 현 정부 겨눈 수사팀은 좌천됐다”
공안·강력부 출신 동시에 쏟아져… 로펌행 경쟁도 치열해질듯
전관예우 기대말고 공정경쟁을

이호재 사회부 기자
이호재 사회부 기자
“이제 검사 게시판 들어오기가 무섭습니다.”

최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라온 검사의 사직 인사에 현직 검사는 이런 댓글을 남겼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검사장 이상 검찰 고위 인사와 중간간부 인사를 지켜본 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났다. 이 정도면 검란(檢亂) 수준”이라며 씁쓸해했다.

○ 윤석열 총장 지명 뒤 하루 1.4명꼴 사퇴

변호사 수 증가와 경기 불황 등으로 변호사 업계에도 한파가 불어닥쳤지만 검사들이 잇달아 검찰을 떠나고 있다. 특히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59·사법연수원 23기)이 지명된 6월 17일부터 이달 4일까지 의원면직(依願免職·본인의 사의로 해임된다는 뜻)된 검사는 모두 67명이다. 산술적으로 49일 동안 하루에 1.4명꼴로 검사가 사표를 낸 것이다. 올해 초 검찰 인사에서 의원면직된 검사 10명까지 합하면 7개월을 조금 넘긴 시점에 총 77명의 검사가 스스로 옷을 벗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의원면직된 검사들의 수는 매년 70여 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직후인 2017년 78명이 최근 5년 동안 최고 수준이었다. 정권교체 이후에는 통상적으로 인사 폭이 커 퇴직 검사 수가 크게 늘어난다. 올해는 연말까지 자진 사퇴하는 검사 등이 추가될 것으로 보여 정권교체 직후보다 인사 파장이 더 큰 이례적인 한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선배들의 잇단 사직에 후배 검사들은 동요하고 있다. 사직자들의 이프로스 글에는 “조직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실 것이라 믿었던 많은 분들이 사직한다” “지켜보는 후배 검사로서 안타깝고 두렵다”는 안타까운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한 부장검사는 “어제만 해도 나간다는 생각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나간다고 해서 주변에서 모두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고 했다.

새 지휘부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유능한 검사들이 많이 빠져나가면 전열을 정비해 수사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배성범 신임 서울중앙지검장(58·23기)은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 수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조사했던 한웅재 경주지청장(49·28기)의 사직 인사에 “할 일이 많은데 갑작스러운 사직 인사가 황망하다”는 댓글을 직접 달았다.

법무부는 검사들의 사표가 이어지자 중간간부 인사를 발표한 지 이틀 만인 2일 고검 검사급 26명의 전보 인사를 추가로 냈다. 주요 보직의 공백을 메우려는 취지였는데, 조만간 다시 전보 인사를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 “현 정권 수사=좌천” 공식처럼 굳어져

이번 사퇴 행렬의 원인을 한 가지만으로 꼽긴 어렵다. 전임 검찰총장보다 사법연수원 5기 후배가 검찰총장으로 지명될 때부터 서열과 기수를 중시하는 검찰 조직에 적잖은 충격파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세부 인사 내용은 예상보다 더 충격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전임 정권 등을 상대로 한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에 참여한 검사들이 대부분 요직으로 발탁된 반면 현 정권에 칼을 겨눈 검사들은 한직으로 밀려났다.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의 한찬식 전 검사장(51·21기), 권순철 전 차장검사(50·25기), 주진우 전 형사6부장검사(44·31기) 등 지휘라인은 모두 사표를 냈다. 한 전 검사장은 고검장 승진 인사에서 일찌감치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권 전 차장검사는 고검으로 전보됐고, 주 전 부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 근무 등을 희망했지만 안동지청장으로 발령났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하면서 청와대 인사의 소환 여부 등을 놓고 서울동부지검과 검찰 지휘부가 충돌했다는 얘기가 수사 당시에도 흘러나왔다. 한 전 검사장은 침묵했지만 권 전 차장검사는 사직 인사에서 “인사는 메시지라고 합니다”라며 인사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주 전 부장검사는 “‘정도를 걷고 원칙에 충실하면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등이 엷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검사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사표를 던진 것이란 분석이 검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한 부장검사는 “이번 인사를 보고 ‘앞으로 검사일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한 검사들이 나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부장검사는 “인사 불만이 있어 나간 후배나 동기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윤 총장이 발탁되면서 고검장급과 검사장급, 중간간부 등이 순서대로 서열이 파괴된 점도 줄사표 사태에 영향을 끼쳤다. 검사장으로 승진한 기수가 사법연수원 27기까지 내려갔다. 검사장 승진자 명단에서 누락된 사법연수원 25기는 내년에도 승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 때문에 25기에선 올해 13명이 그만둬 가장 사표를 많이 낸 기수가 됐다. 사법연수원 30, 31기 부장검사급 검사들도 12명이 사퇴했다. 부장검사들은 내년에 차장검사 승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사의가 이례적이다. 한 검사는 “이번 정권에 2차례의 인사가 더 남았지만 ‘윤석열 사단’에 들어가지 못한 검사들은 사실상 한직에만 있을 것이란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1년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함께 펴낸 ‘검찰을 생각한다’는 책에서 “검찰 개혁을 추진할 때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가 인사”라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공공수사부로 이름을 바꾸고, 조직 개편이나 인적 쇄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공안부의 검사들이나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부서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강력부 검사들의 동요도 심하다.

○ 포화상태 법률시장, 경쟁 더 세질 듯

통상적으로 사직한 검사들은 1개월 내외로 변호사 등록과 개업신고를 한다.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56·21기)과 권익환 전 서울남부지검장(52·22기)은 이미 변호사 개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봉욱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54·19기)는 개업은 하지 않았으나 변호사 등록을 마쳤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을 떠나도 변호사 시장에서 살아남긴 쉽지 않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합류하면서 경쟁이 심해졌고, 적폐청산 수사가 이어지면서 일반 형사 사건의 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요즘은 전관변호사도 사무실 유지만 하면 잘한다고 할 정도다. 파이는 같은데 나눠 먹는 사람이 많아질 테니 상황이 열악해질 것”이라고 했다.

특히 사법연수원 30기 안팎, 공안·강력부 전공의 검사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게 더욱 열악한 상황을 불러올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비슷한 기수, 전공의 검사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 게 문제다. 로펌이 뽑을 수 있는 인원은 한계가 있어 경쟁이 심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전 같으면 느긋하게 개업 준비를 했을 전관들도 미리 경쟁에 나서고 있다. 주위에 개업을 홍보하고, 함께 일할 만한 변호사들을 좀 소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대형 로펌행이 제한된 고검장 출신 전관 변호사들은 ‘하청 수임’이 잘되는 중소 로펌으로 가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대기업 사건처럼 수임료가 높은 사건은 대형 로펌에서 주요 변호를 맡고, 전관 출신들이 모인 중소 로펌에서 보조 변호를 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이번에 사임한 한 고검장은 “사무실 구하기가 어려워 아직도 사무실 계약을 못 했다. 좋은 사무실을 구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가격도 예전보다 많이 올랐다”고 전했다.

○ 다른 변호사들과 ‘정정당당’ 경쟁해야

사건 수임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자칫 새로 개업한 변호사들이 의뢰인들에게 검찰 간부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면 전관예우(前官禮遇) 논란이 가중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꺼번에 변호사 개업이 몰리면 자칫 법조 브로커들이 활개를 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직을 떠나 새로 개업할 변호사들은 의뢰인들과 대신 흥정에 나서는 사무장을 별도로 두지 말아야 한다. 또 후배 검사들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논란에 휩싸이지 않도록 처신에 신경 써야 한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나 청년 변호사들은 이미 포화된 법률 시장에서 생존 경쟁에 몸부림치고 있다. 이제 검사 옷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했다면 다른 변호사들과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야 한다. 검찰이라는 조직을 떠난 이들이 변호사 시장에서 ‘전관’이라는 이름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사례는 없는지 법조계가 지켜보고 있다.

이호재 사회부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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