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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한 법이냐”… ‘보따리 강사’ 쫓겨나고 ‘재정난 대학’ 벼랑 끝[인사이드&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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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한 법이냐”… ‘보따리 강사’ 쫓겨나고 ‘재정난 대학’ 벼랑 끝[인사이드&인사이트]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입력 2019-08-02 03:00수정 2019-08-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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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법 시행… 우려가 현실로
“알고보니 강사해고법” 강사들 눈물… 비정규직 해방되는줄 알았는데
인건비 부담에 대학들 해고 사태… “학자금 갚으려면 알바라도 해야”
“10년째 등록금 동결” 대학들 아우성… 학생수 크게 줄어 학과 통폐합 처지
강사 임기 3년? 전문대선 불가능… “교육부, ‘재정지원’으로 압박 말아야”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6개월 전 우려가 현실이 됐습니다. 결국 백수네요.”

반년 만에 연락이 닿은 신지윤(가명) 씨의 첫마디였다. 제2외국어 전공 강사였던 신 씨는 1학기 개강을 앞둔 올 2월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도입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기자에게 e메일을 보냈다. 당시 그는 4년 동안 일했던 대학들로부터 ‘해촉’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신 씨는 입에 풀칠이라도 가능했던 강사 자리를 빼앗기진 않을까 걱정하며 “법 시행을 미룰 방법이 없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결국 그는 올 1학기 단 한 곳에도 채용되지 못했다. 다가올 2학기도 마찬가지다. 그가 주로 맡았던 회화 강의는 강사법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인으로 대체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신 씨는 3개 대학을 ‘보따리장수’처럼 오가며 월 200만 원가량 받았다. 하지만 이제 ‘밥줄’이 완전히 끊겼다. 신 씨는 “학회에 논문 한 건을 등재하려 해도 연회비와 심사비 출판비 등 약 20만 원이 든다”며 “연구도, 강의 경력도 단절된 셈”이라고 토로했다.

논란이 거듭된 강사법이 1일부터 시행됐다. 비정규직 강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도입된 법이다. 대학들은 “10년째 등록금 동결에 ‘학령인구 감소’ 직격탄까지 맞은 상황에서 재정적 부담이 크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사 채용 과정에 ‘꼼수’를 부리면 재정지원사업 추진 때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이다. 결국 일자리를 찾는 강사와 교육부 눈치를 보고 있는 대학 사이에 ‘을(乙)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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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바 구함’ ‘또 들러리’…박사들의 곡(哭)소리

강의 경력 3년 차인 인문계열 박사 A 씨(35)는 이번 2학기 강의를 맡기 위해 20개 대학에 원서를 냈다. 하지만 아직 합격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 대신 해당 대학들이 합격자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며칠 더 기다려보고 안 되면 물류배달 알바 지원하려고요. 박사까지 하느라 빚도 많은데, 학자금 갚고 다른 생업도 찾아야 할 거 같아요.”

이미 지난해부터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중소기업 취업을 권했다. 다행히 올 1학기에 한 대학에서 6학점 강의를 맡았다. 학자금 대출을 갚고 생활비 20만 원을 쓰면 남는 것도 없지만 2학기에도 이 정도 유지하면 더 버텨볼 생각이었다. 이제 와서 다른 길을 가기엔 지금까지 쏟은 열정이 아까웠다. 하지만 이젠 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는 “젊은 박사들 사이에선 ‘우리에겐 기회가 없을 거다. 빨리 손절하고 나가는 사람이 승자’라는 말이 나온다”고 푸념했다.

강사법 시행 과정에서 A 씨와 같은 사례는 흔히 볼 수 있다. 최소 1년간 임용, 3년간 재임용 절차를 보장하며 방학 중에도 임금을 줘야 하는 규정에 대학들이 적잖이 부담을 느낀 탓이다. 서울의 한 사범대학 교수는 “최소한의 연구비와 생활비도 벌지 못해 젊은 학자들이 학교를 떠나는 상황에서는 학문 후속 세대가 이어지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15년째 지방에서 이학계열 강사를 하고 있는 B 씨도 이번 여름에 원서 십여 장을 썼다. 개정된 법에 따라 올 2학기부터 강사 채용은 ‘공개임용’이 원칙이다. 학교마다 필요한 지원서류의 종류와 양식이 달라서 그는 3주간 꼬박 밤을 새웠다. 전임교원 선발에나 필요한 온갖 추천서와 학위논문 요약본까지 준비했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합격한 곳은 교수의 귀띔을 받고 지원한 모교뿐이다. B 씨는 “아마 다른 학교도 이런 식으로 내정해놓고 절차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옛날보다 공정한 것도 아니고 절차만 복잡해진 셈”이라고 토로했다.

대학들은 강사 채용을 위해 ‘서류 접수’ 인력까지 충원하고 있다. 밀려드는 채용 서류를 감당할 수 없어 아예 전담 조직까지 신설한 곳도 있다.

○ ‘강사해고법’ 오명 붙은 강사법 추진사(史)

“세상이 밉습니다. 한국 대학사회가 증오스럽습니다.”

올 상반기에만 1만 명에 이르는 대학강사를 쫓아낸 법이 되어버린 ‘강사법’을 이해하려면 20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강사의 처지를 비관하며 목숨을 끊은 고 서정민 씨(당시 45세)의 사건이 불씨가 됐다. 월수입 100여만 원의 열악한 처우를 감내하며 교수 될 날을 기다렸던 그는 ‘임용되려면 1억 원을 상납하라’는 요구에 좌절하고 A4용지 5장에 걸친 유서를 남긴 채 생을 마감했다.

이듬해 2011년 고등교육법 개정안, 즉 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8년간 4차례나 시행이 유예됐다. 대학도 강사들도 반대한 탓이다. 대학은 재정적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로, 강사들은 빈틈이 많은 채 시행되면 대량 해고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이번에 시행된 강사법의 핵심은 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강사를 최소 1년간 임용하고 3년 동안 재임용 절차를 보장하며, 재임용 탈락에 불복할 경우엔 소청심사권도 주어진다. 또 ‘공개임용’을 원칙으로 한다.

교육부는 시행 두 달을 앞둔 6월 초 ‘강사제도 안착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학 관계자들은 “강사 채용 실태를 조사해 ‘꼼수대학’은 재정 지원을 줄이겠다는 협박일 뿐”이라고 반발했다. 게다가 강사가 아닌 겸임 또는 초빙교수 선발도 공채로 진행하라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이미 겸임·초빙교수 수백 명을 어렵게 모셔왔는데 ‘공개임용’을 하라니 전부 취소해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강사법 시행으로 각 대학에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약 2965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 을이 된 대학, “벼랑 끝…갈 곳이 없다”

강사법에 대해 목소리를 낸 교수들은 하나같이 ‘등록금’과 ‘학령인구’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말했다. 대학등록금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이고, 학생 수는 가파르게 줄고 있어 충원을 걱정해야 하는 학교가 상당수다. 재정난을 겪고 있는 대학의 존폐를 결정하는 건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 선정’이다. 대학들은 “칼자루를 쥔 교육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입을 모은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에선 전임교수(정교수 등)의 책임시수가 학기당 12학점에서 15학점으로 늘어났다. 전임교수들이 수업시간을 늘려 재정부담을 나누기로 한 것이다. 책임시수는 전임교원이 한 학기에 반드시 강의해야 하는 기준이다. 이를 못 채우면 연구비 삭감 등 불이익을 받는다. 이 대학 관계자는 “수업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연구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라며 “우리 대학의 경쟁력을 높일 동력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사 임용기간은 법적으로 1년이다. 그러나 3년간 재임용 절차가 보장되는 데다 소청심사권이 부여되기 때문에 ‘사실상 3년’이다. 입학정원 미달 사태로 학과 통폐합을 추진 중인 한 전문대 보직교수는 “차라리 임금 조정 등 ‘처우 개선’에만 한정된 법이라면 그나마 낫다. 그런데 한번 채용하면 길게는 최장 3년간 고용해야 한다니…. 어떤 전공이 사라질지 모르는 전문대에선 불가능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또 강사들이 노조 등 단체를 결성해 법률이 정한 수준보다 더 높은 처우 조건을 요구할 경우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한 강사노조 관계자는 “대학들이 노조 결성이 걱정돼 강사법 적용을 꺼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1일 강사법이 시행됐지만 학교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수강신청일이 코앞에 다가온 요즘 각 대학 커뮤니티엔 “강의계획안조차 올라오지 않는데 무슨 수업을 선택하라는 것이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많은 대학이 아직도 강사 배정을 마치지 못한 탓이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는 지난달 31일 성명서를 통해 “외면받고 있는 학생들의 수업권을 보장하기 위해 대학본부와 교육부의 행동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대학을 갑(甲), 강사 구직자를 을(乙)로 나누는 프레임으로 이 사태를 바라보는 것은 큰 도움이 안 된다. 강사와 대학의 운명은 동떨어진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8년이란 시간을 거쳐 빛을 보게 된 강사법이 잘 안착하려면 교육부의 다음 정책이 중요하다. 시행 초기 현장의 부작용을 면밀히 살피고,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은 유연하게 바꿀 필요도 있다. ‘재정 지원’이란 카드로 대학에 ‘착한 일’을 강요하는 방식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sykim@donga.com
#강사법#강사해고법#인건비 부담#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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