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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나간 아들, 동아 인턴신문에 10년전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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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나간 아들, 동아 인턴신문에 10년전 모습 그대로”

김동연 경제부총리입력 2018-01-24 03:00수정 2018-01-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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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아일보]<18> 김동연 경제부총리
▲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아버지는 동아일보 보급소장을 지냈고, 그의 아들은 인턴기자로 활약했다. 김 부총리가 유학시절을 보낸 미국 미시간대 교정에서 중학생이었던 아들 덕환 씨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덕환 씨는 3년 반 전 유명을 달리했다. 김동연 부총리 제공
아버지란 단어는 오랫동안 그리움이란 말과 동의어였다. 50년 전, 서른셋 나이로 돌아가신 아버지. 어떤 사진 속 모습도 이제는 나보다 근 30년이나 젊은 청년. 그렇게 흐른 세월 내내 아버지에 대해 궁금했다. 그러다 우연히 찾은 작은 노트 속 아버지 일기에서 본 그 젊은 청년의 치열했던 고민들.

공부가 짧고 집이 어려웠던 아버지는 고향인 충북 음성에서 장사를 하면서 동아일보 보급소장 격인 일을 하셨다. 매일 차부에 가서 신문을 받아 손이 새까매지도록 접은 뒤 배달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자유당 독재정권에 저항해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김모 후보를 위해 하루 일곱, 여덟 부락을 다니며 선거운동을 하셨다. 야당에, 동아일보 일까지 하셨으니 순경이 매일 집 앞에서 보초를 서다시피 했다.

노트 속 일기는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된 사연을 쓰기 위해서였다. 함께 선거를 도왔던 분이 정치깡패로부터 7차례에 걸친 폭행을 당한 것을 아버지가 동아에 보도되도록 하셨다. 이 사건으로 집안의 제일 어른 격인 분이 아버지를 압박하면서 고향을 떠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어렵게 당선된 민주당 후보는 나중 자유당으로 당적을 옮기기까지 했다. 일기 속 이십대 아버지는 웬 피눈물을 그리도 많이 흘리셨는지.

나중에 서울에서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일 년에 두세 차례 꼭 동아일보를 방문하셨다. 이재민이 생기거나 가난한 집 아이들 사연이 신문에 실리면 나를 앞세워 구호품을 내러 가시곤 했다. 언젠가는 내 이름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동아와 인연을 맺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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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동아일보에서 ‘죽기 전에 이것만은…’이란 특집을 연재하며 내게 원고를 부탁했다. 1월 18일자에 실린 내 글은 실현이 불가능한, 그래서 더욱 절실했던 오랜 내 꿈으로 시작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대화’였다. 버킷리스트 첫 번째에 있던 그 꿈을 이룬 어느 날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제는 거꾸로 두 아들과 철든 남자 대 남자로 대화하고 싶다는 소망을 새 버킷리스트 맨 윗줄에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새 버킷리스트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3년 반 전 큰애가 스물일곱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 뒤 그리움이란 단어의 동의어는 아버지가 아닌 큰애 이름으로 바뀌었다. 국무조정실장으로 있던 나는 큰애가 떠나고 9개월 뒤 스스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세계은행에서 근무할 때 큰애는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에 진학했다. 2008년 당시 4학년이던 큰애는 동아일보 제9기 대학생 인턴기자로 뽑혀 동아일보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할아버지 사연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공들여 지원한 덕분이었다.

큰애는 정치부와 스포츠부에서 일했다. 나경원 의원과 일본 피겨 선수 아사다 마오 인터뷰도 했다고 했다. 한번은 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국토종단을 하는 대한민국 희망원정대를 취재했는데, 7월 19일자 신문에 큰애 이름이 인턴기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실리기도 했다.

▲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아들 덕환 씨는 2008년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를 지냈다. 인턴들이 만든 신문에서 그는 기자를 ‘시끄러운 세상 속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묘사했다. 김동연 부총리 제공
인턴을 마치면서 4면짜리 동아일보를 한 장 갖고 왔다. 1면에 인턴기자 단체사진이 실렸고 뒷면에는 각자의 소감이 사진과 함께 실렸다. 가나다순이다 보니 큰애가 제일 먼저 나왔다. 큰애는 웃으며 동아일보 정식판이 아니고 인턴기자들에게 선물로 만들어준 신문이라고 했다. 큰애는 소감에서 이렇게 썼다.

“인턴을 기자라 생각하고 나의 질문에 성심껏 답해 준 유명 인사들. 그들의 스포트라이트도 기자들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되는 것이었다. 시끄러운 세상 속 호밀밭의 파수꾼, 보이지 않는 진정한 스타는 세상의 이면을 드러낼 질문을 준비하는 기자들이었다.”

부총리로 취임한 지 7개월이 지났다. 늘 기자들을 만난다. 대변인실에서 신경 쓰는 것 중 하나는 특정 매체에 경사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충실히 그 가이드라인에 따르고 있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큰애, 격세(隔世)로 이어진 동아와의 인연 때문에 남다른 심정으로 지령 3만 호 발간을 기린다. 나를 사이에 두고 일찍 내 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로 이어진 연(緣)이라 사무치는 애틋함까지 담아 마음에서 우러나는 축하를 드린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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