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의 3분의 2 ‘미륵사지 서석탑’ 복원에만 20년 걸려, 왜?[김상운 기자의 발굴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1일 1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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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전 미륵사지 서쪽 석탑. 석탑 붕괴를 막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콘크리트를 덧씌웠다. 문화재청 제공
복원 전 미륵사지 서쪽 석탑. 석탑 붕괴를 막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콘크리트를 덧씌웠다. 문화재청 제공

●20년 세월 걸린 대역사

2016년 4월에 둘러본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서쪽 석탑(국보 제11호)의 해체보수 현장은 거대한 공사장을 방불케 했습니다(미륵사지 석탑은 지난해 6월 해체보수를 마침). 가설덧집 아래 사람보다 큰 석재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가운데 크레인으로 돌을 들어올리는 작업이 한창이었죠. 기단 위에 선 인부들은 쉴 새 없이 목봉(木棒)을 내리치며 흙을 다지고 있었습니다. 백제인들은 표면이 울퉁불퉁한 돌 사이에 흙을 깔아 돌의 하중을 분산하는 공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6층(백제시대 원형은 9층으로 추정) 중 기단부만 복원이 진행돼 석탑의 속살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죠.

미륵사지 서쪽 석탑 해체보수는 1999년 문화재위원회의 해체보수 결정 이래 20년 동안 진행됐습니다. 앞서 1998년 구조안전진단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석탑 파손부위에 덧댄 콘크리트가 노후화 돼 안정성이 우려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죠. 3년 전 해체보수 현장에서 살펴본 석탑의 내부 구조는 독특했습니다. 사람 키 높이의 석벽들 가운데로 十자형 복도가 동서남북으로 뻗어있었습니다. 이 시대 석탑은 중국 요나라 시대의 거대 목탑들처럼 사람들이 탑 안으로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유형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석탑들 가운데 미륵사지 석탑이 유일합니다. 미륵사지 석탑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동시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탑이기도 합니다.
2015년 12월 미륵사지 서쪽 석탑 보수공사 현장. 1층 석재를 해체 수리한 뒤 크레인으로 옮겨 쌓아올리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2015년 12월 미륵사지 서쪽 석탑 보수공사 현장. 1층 석재를 해체 수리한 뒤 크레인으로 옮겨 쌓아올리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복원 철학의 문제

미륵사지 석탑은 문화재 복원에 대한 사회적, 학문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문화재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원형을 무시한 동쪽 석탑의 날림 복원(1992년)이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서쪽 석탑만큼은 제대로 복원해야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익산 시민들 사이에서는 서쪽 석탑도 동쪽 석탑처럼 잔존 층수(6층)가 아닌 백제시대 당시 원래 층수(9층)로 복원해달라는 요구가 나왔습니다. 원형을 훼손하더라도 온전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계는 6층까지만 보수 정비하겠다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원래 계획을 지지했습니다. 미륵사지 석탑에 대한 설계도나 관련 기록이 전무한 상태에서 원형을 확인할 길이 없는 7~9층을 상상으로 복원하는 것은 역사적 진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더구나 2015년 7월 유네스코가 미륵사지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할 때 내건 조건도 원형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수정비 방식이었습니다.

문화재 복원 역사가 우리나라보다 오랜 유럽에서는 설사 원형 고증이 이뤄진 문화재라도 인위적인 복원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과 이탈리아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유적 등은 새로운 건축 부재를 덧댈 때 색상이나 질감을 일부러 다르게 해서 원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관람객의 눈을 속이지 않고 문화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복원 철학에 따른 것이죠.
2016년 4월 미륵사지 서쪽 석탑 보수공사 현장에서 배병선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장이 사리장엄구 수습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익산=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2016년 4월 미륵사지 서쪽 석탑 보수공사 현장에서 배병선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장이 사리장엄구 수습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익산=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고건축 전문가로 경주 감은사지 석탑과 다보탑, 석가탑 복원에 모두 참여한 배병선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장도 사리장엄 수습 못지않게 석탑의 해체복원 방식을 놓고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는 2004~13년까지 10년 동안 미륵사지 해체보수를 맡으며 백제시대 원 부재를 최대한 활용해야한다는 핵심 원칙을 세웠습니다. 아무리 깨진 돌이라도 그냥 버리지 않고 새로운 석재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보강해 최대한 재활용했습니다. 화강암 원석을 다듬을 때에도 전통 방식대로 일일이 정으로 쪼는 방식을 택했죠. 배 소장은 “현대기술을 총 동원해 복제를 시도해도 옛 부재랑 똑같을 수는 없다. 옛 조상들의 정성을 현대인들이 완벽하게 재연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해체보수 과정에서 원 부재와 신 부재의 비율을 6대 4정도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런 원칙이 없었다면 복원은 훨씬 빨리 진행될 수 있었겠지만, 문화재 고유의 원형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미륵사지 서쪽 석탑은 해체에만 3년이 소요됐습니다. 해체 결정 당시 국내에 고건축 복원 전문가들이 드물어 복원 방식을 정하는데 그만큼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문화재위원들은 일단 해체를 해본 뒤 구체적인 복원 방식을 정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 특히 2009년 사리장엄이 발견된 직후 해체복원 작업이 약 1년 동안 중단됐습니다. 이때 학계 일각에서 1층은 해체하지 말고 2층부터 해체 보수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탑의 무게를 지탱해야하는 1층 내부구조를 바로잡지 않고선 제대로 된 보수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배 소장의 판단이었습니다.

※김상운 기자가 진행하는 대한민국 최초 고고학 유튜브 채널 <발굴왕>에서 흥미로운 고고학 이야기들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김상운 동아일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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