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서태지-이지아 소동의 최대 피해자는?

  • Array
  • 입력 2011년 5월 3일 14시 28분


코멘트
세기의 스캔들이라 불릴 만한 서태지-이지아 사건이 다소 싱겁게 끝났다. 4월 21일 한 언론의 특종보도로 알려진 서태지-이지아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은 9일 뒤인 30일 서태지의 '간접적' 인정과 같은 날 이지아의 소송 취하, 그리고 5월 1일 서태지의 공식 사과문으로 이어졌다.

이제 '설'은 '사실'로 공식 인정됐고, 사실상 당사자인 서태지와 이지아 측으로부턴 당분간 더 나올 '꺼리'가 없어진 셈이다. 이 초대형 이슈를 놓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내야 할 미디어의 몫만 남았다.

●사생활 스캔들 '따위에' 흔들린 서태지 팬덤

그렇다면 이제 손익계산에 들어가 보자.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승자는 미디어다. 간만에 초대형 이슈를 만나 수없이 많은 기사들을 쏟아내며 어마어마한 상업적 성과를 거뒀다.

특히 인터넷 미디어가 톡톡히 재미를 봤다. 한 포털사이트를 기준으로 4월 21일부터 5월 1일까지 11일간 쏟아진 서태지-이지아 관련기사는 무려 5000건이 넘는다.

하루 평균 약 500건, 시간당 20여건, 결국 2~3분에 한건 꼴로 기사가 쏟아진 셈이다. 물론 '장사'가 되기 때문에 이처럼 편집증적으로 기사들을 쏟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큰 패자는? 서태지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의 팬덤이 흔들려버렸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4월 22일자 기사 '서태지 신비주의 시대의 종말…팬덤 '환멸''에는 이 같은 내용이 나와 있다. 이 신문은 서태지닷컴 공식 홈페이지와 팬사이트가 두 사람의 소송관련 보도가 나간 뒤 패닉상태에 빠졌다며 부정적인 것보다 인정하자는 분위기의 글이 대부분이지만 이는 팬들 중 상당수가 팬사이트를 떠났기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서태지에게 팬덤이란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다. 그의 대중적 인기와 영향력이 확인된 것은 2000년 발표한 솔로 2집까지로 파악된다. 이후부터는 그의 팬덤이 앨범을 다량 구입해주고 관련 상품들에 집착하면서 각종 '기록'들을 경신해준 것에 불과하다.

또한 서태지 팬덤은 서태지 이름을 걸고 꾸준히 각종 사회문화적 시민운동을 일으키며 음악활동이 많지 않은 서태지의 화제성을 유지시켜줬다. 어찌 보면 이런 활동 탓에 '문화대통령'으로서 서태지 위상이 유지된 측면도 크다. 그러니 서태지 팬덤의 균열은 현 시점 곧 서태지 존립 근거 자체의 균열이라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어찌됐건 20년 째 탄탄히 서태지를 지탱해온 국내 최장수 막강 팬덤이다. '기껏해야' 사생활 스캔들 정도로 와해된다는 것도 우습다. 이와 동급의, 또는 이보다 더 큰 스캔들을 맞이했던 아이돌그룹 2PM과 JYJ도 '결국은' 팬덤을 회복시켰거나 최소한 전열을 가다듬을 정도의 역량은 유지시켰다.

사건의 충격성 탓에 잠시 패닉상태에 빠진 것일 뿐 어느 정도 충격이 가라앉고 나면 '인간 서태지'에 대한 이해가 자리 잡으면서 팬덤도 고스란히 되돌아올 수 있다. 그게 일반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서태지의 경우만큼은 이 같은 상례가 잘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서태지가 2PM, JYJ 등 일반 아이돌그룹과는 다른 위상을 지녔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서태지 팬덤의 생성논리와 존립형태가 여느 팬덤과는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 크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일단 서태지에 대한 대중인식 문제부터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 대중심리의 근저를 자극한 서태지

서태지는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서태지와 아이들'로 활동하던 동안 사실상 10~20대 '모두'로부터 추앙받던 존재였다. 물론 당시 음반시장을 주도하던 건 김건모, 신승훈 등 상대적으로 '이지리스너블'한 뮤지션들이었지만, 서태지는 단순 음반판매량을 넘어선 지지를 얻고 있었다.

단순히 음악적 측면에서의 위상 탓만은 아니었다. 서태지 음악에 대한 의문은 당시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창조성과 개성이 풍부한 예술작품이라기보다 정교하게 만든 프라모델 같다는 인상이 짙었다. '장르의 오퍼상'이라는 폄하도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존재했다.

그럼에도 대중이 서태지를 '문화대통령'으로 옹립시킨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음악 마니아층에선 그를 일종의 '지렛대'로 생각한 이들이 많았다. 국내 기반이 약한 마니아적 음악 장르를 일약 메인스트림으로 위치 이동시킬 지렛대다.

서태지가 지닌 아이돌적 인기가 이 같은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여가'처럼 복잡하고 여전히 귀에 익지 않는 싱글도 대중음악계 중심으로 이끌어냈던 그다. 그 정도 위력을 지닌 인물이라면 '마니아적인 비판'보다는 오히려 두둔하고 부추김으로써 한국 대중음악시장 다양화의 기폭제로 키워야 한다는 인식들이 강했다.

다른 한 가지 배경은 서태지가 지닌 이른바 '계급적 상징성'의 문제였다. 사실 이 부분이 상당히 주효했다. 서태지는 한국 대중이 일체감을 느끼며 지지하고 응원할 수밖에 없는 계급적 요소들을 한 몸에 지니고 있었기에, 서태지 음악에 딱히 반응하지 않는 대중일지라도 그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일단 서태지는 당시나 지금이나 대중의 계급공포 중심인 학력, 혹은 학벌 콤플렉스를 대변하다시피 하는 인물이었다. 서울의 한 공업고등학교를 다니다 음악활동을 위해 중퇴한 것이 그의 학력 전부다.

이는 대중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극단적인 조건이었다. 또 서태지 등장 당시 탈권위주의를 외치며 형성됐던 X세대 흐름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조건을 갖고서도 일정부분 권위를 인정받으며 성공을 거뒀기에 대중의 대리만족 심리가 보상되는 효과도 동시에 일으켰다고 봐야한다.

다음으로, 서태지는 꾸준히 기성세대, 기성권력과 충돌을 일으켜온 인물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서태지는 서태지와 아이들로 막 데뷔했을 당시 신인가수들에 점수를 매기는 한 TV 음악 소개 프로그램에 출연, 프로그램 역사상 '최하점'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서태지와 아이들 성공 이후 다시 회자되면서 권위주의 조롱의 한 기제로써 사용됐다. 역시 기성세대 시각을 극단적으로 경멸하던 X세대 흐름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서태지는 솔로로 데뷔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비판받고 의문을 일으켜왔다. 그의 음악적 역량과 개성에 대한 비판과 의문이었다. 수많은 음악전문가들과 언론을 통해 이 같은 구도가 계속 유지됐다.

그런데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날이 선 기성세대와의 대립, 기성권력과의 투쟁 구도가 솔로 활동 시점까지도 관성적으로 적용되면서, 이는 일종의 대중 피해의식을 대변하는 입장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한국 대중은 확실히 극심한 사회적 스트레스만큼이나 사회적 피해의식도 강하다. 나는 열심히 잘 하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사회 권력이 나를 짓눌러 뻗어나가지 못한다는 의식들을 공유하고 있다. 일종의 '남 탓' 정서다.

이런 정서가 발전되다보니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음모론 창궐 국가가 되기도 했다. 서태지는 바로 그 중심에 서서 '전문가'라는 이름의 기득권층과 싸우는 투사, '언론'이라는 사회 권력에 핍박받는 피해자 이미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피해자의 대명사'로서 대중의식을 투영하는 도구가 돼버렸다는 얘기다. 이러니 대중의 지지와 응원이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도덕적 순결성'이 요구되는 서태지의 위상

이쯤에서 얼핏 떠오르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서태지와 유사한 조건, 그리고 유사한 대중적 반향을 일으킨 인물이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중적 콤플렉스 반영률은 사실상 서태지보다도 높았다. 노 전 대통령은 한국사회 중심 콤플렉스인 출신계급 콤플렉스, 학력 및 학벌 콤플렉스, 레드 콤플렉스 등을 한 몸에 지닌 인물이었다.

대중의 계급공포가 극렬하게 반영되는 조건 속에서도 자수성가해 나름의 위상을 얻게 됐지만,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은 끊임없이 기성권력과 마찰을 일으키며 고군분투했다. 그렇게 해서 노 전 대통령은 대중의 사회적 피해의식을 대변하는 아이콘이 됐다.

이런 인물은 대중적으로 크게 두 가지 요구를 받게 된다. 첫째, 단순한 전문분야 종사자 이상의 역할을 부여받거나 최소한 그 구심점이 돼버린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런 역할을 부여받아 대통령에까지 당선됐고, 서태지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추종세력인 팬덤을 중심으로 갖가지 사회문화 운동이 일어났다.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앨범 수록곡 '시대유감'을 둘러싸고 펼쳐진 음반 사전심의제 폐지 운동은 그렇다 치자. 자신들 우상과 직결된 건이니 팬덤으로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소비자운동이었다.

그러나 서태지 팬덤은 이후 가요 순위프로그램 폐지운동, 유료문자투표 폐지운동, 방송심의 개정운동, 저작권 보호운동 등 서태지 상황과 직결되지만은 않는 다양한 차원과 수위의 운동들도 꾸준히 일으켰다.

서태지 팬덤 자체가 문화소비자 NGO화 돼갔고, 이 같은 기능을 눈치 챈 외부 NGO들이 서태지 팬덤과 연대해 시민운동을 주도해가기도 했다. 단적으로, 서태지 만큼 쉽게 이해되고 대중적 공감대가 형성된 아이콘도 없었기 때문이다.

서태지라는 이름을 걸고 나면 이 모든 운동들에 자동적으로 명분이 형성됐다. 서태지가 지닌 조건, 환경, 지나온 커리어가 단순한 뮤지션 이상의 역할과 기능을 요구받은 것이고, 서태지는 팬덤의 이름으로 그 요구에 부응하게 된 셈이다.

한편 서태지 류 인물이 요구받는 두 번째 요소는, 사실 이번 서태지-이지아 사건 이후 중요한 지점으로 작용하게 될 만한 부분이다. 바로, 이런 인물은 자신이 원하건 원치 않건 자동적으로 '도덕적 순결성'을 요구받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인물이 지닌 피해자로서의 이미지 탓이다. 피해자가 단순 피해자로서만 머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피해자가 대중의 대변자로서 기능하다보면 자연적으로 도덕적 순결성이 요구되고 만다.

해당인물이 도덕적으로 순결한 인물이어야만 그가 입었고 지금도 입고 있으며 당장 개선을 위해 나서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입게 될 사회적 피해가 더욱 선명하고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면, 해당인물은 곧바로 자신에 적대적인 층은 물론 지지층으로부터도 외면 받고 공격당하게 된다. 더 이상 대변자, 구심점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앞선 노무현 전 대통령만 해도 그랬다. 2009년 검찰의 박연차 정관계 로비 사건 수사가 전방위 확대되고, 노 전 대통령 가족이 금전을 수수한 건으로 인해 '포괄적 뇌물죄 공범'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자, 노 전 대통령에 적대적인 언론은 물론 전폭 지지하던 언론들마저도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노사모 조차 상당부분 세가 위축됐다. 이런 흐름은 노 전 대통령 자진(自盡) 직전까지 지속됐다.

●NGO 성격의 서태지 팬덤은 와해될 운명?

그래서 서태지 팬덤의 와해 조짐도 '일시적인 현상'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얘기다. 기껏해야 사생활 스캔들에 불과한 일이지만, 서태지와 같은 위상-역할-기능을 담당하던 인물에겐 바로 그 '기껏해야 사생활 스캔들'일지라도 타격이 어마어마해진다.

팬덤의 생성논리와 존립형태가 일반 아이돌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됐기 때문이다. 2PM이나 JYJ처럼 '오빠만 믿어' 식으로 나갈 수가 없다. '인간 서태지'를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인간적 동정은 생길지언정 '운동'의 구심점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더군다나 서태지는 단순히 팬덤에 의해서만 이런 위상과 역할을 떠맡게 된 인물조차 아니었다는 게 문제다. 서태지는 꾸준히 황색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자신의 공연무대에서마저 스포츠신문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였던 인물이다.

자신이 자기 역할을 자초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제 과거 스포츠신문의 결혼보도는 '사실'이 됐고, 이를 황색언론이라 폄훼하고 몰아붙였던 서태지는 '거짓'을 말한 셈이 됐다.

이런 인물을 중심으로 문화운동, 문화소비자운동이 지속될 수 있을까. 이런 인물에 단순 뮤지션 이상의 역할과 기능을 부여할 수 있을까. 점차 일반적 팬덤 활동 외 기능이 부각되던 NGO 성격의 서태지 팬덤이라면,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결국 무슨 일이 있건 서태지만을 위해 살아가는 극렬 팬층을 제외하곤 서태지 팬덤은 와해될 수밖에 없다는 게 상식적인 예상이 된다. 그리고 남은 팬층이 이전과 같이 열심히 NGO적 활동을 펼쳐나가려 해도, 이제 대중적 신뢰를 잃은 서태지라는 이름으로는 이전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활동이 한계에 부딪히리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해진다.

그러니 서태지 팬덤은 이제 그냥 음반이 나오면 그것만 열심히 사주고 응원하는, 일반 아이돌 팬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역할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돌 팬덤적 기능 외 사회적 기능에 매력을 느껴 서태지 팬덤에 몰두했던 팬층이라면 이제 서태지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진전됐다는 것이다. 팬덤의 와해 조짐이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비롯된 예상이다.

●최대피해자는 서태지 아닌 서태지 팬덤

이제 서태지를 다시 돌아보자. 어찌 보면 서태지는 그간 자신이 지닌 사회적 위상에 함몰된 커리어를 그려왔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 위상에 주목한 정치계로부터 이용도 당해왔고, 그 자신이 그런 관계를 뿌리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변화를 원하는' '혁신적인' '기성구조에 반발적인' 등의 캐치프레이즈를 거의 의무적으로 떠안고 자신의 음악세계를 이끌어왔다.

어쩌면 이번 서태지-이지아 사건은 서태지로 하여금 그에 주어진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벗어버린 채 새롭게 자기 커리어를 시작하는 계기로도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습관처럼 새로운 장르를 들여와 기기묘묘한 장르명칭을 붙여가며 상식을 깨는 마케팅 기법으로 대중에 어필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담백하게 전달해도 된다. 도덕적 순결성에서 무너진 아이콘은 '문화대통령' 자리는 내놓아야 될 수도 있겠지만, 아티스트적 측면에서는 더없는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문화대통령' 칭호와 함께 상업적 성과 역시 함께 휘발돼버릴지도 모른다. 10장씩 사주던 열혈 팬 층이 이제 100장씩 사주지 않는 이상은 그렇다.

그러나 다행히 서태지는 이제 상업적 추가이득은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게 됐다. 그러니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 꾸준히 그의 음악적 재능과 역량에 신뢰를 갖고 있는 소수 팬층에 전달하는 역할, 이전보다는 꽤나 소소하지만 아티스트 개념으로서 어찌 보면 보다 충실한 역할에만 전념해도 무방할 것이다. 어찌 보면 그런 역할을 커리어 20년차에 새롭게 부여받게 됐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이기에 이번 서태지-이지아 사건은, 궁극적으로 서태지라는 뮤지션의 활동에 크나큰 타격을 줬다기보다 서태지 팬덤의 활동에 타격을 줬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서태지가 계속 음악활동을 할 권리는 아무도 빼앗지 못한다. 오직 NGO화 된 팬덤만이 갈 길을 잃게 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최대의 패배자는 서태지가 아니라 서태지 팬덤이 된다.

따라서 지금부터 논의의 초점, 관심의 집중은 서태지가 아니라 서태지 팬덤에 맞춰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한국 대중문화산업 역사상 가장 막강하고 가장 활발하며 가장 치열한 팬덤을 이끌어나갈지가 문제가 된다.

전형적인 선정성 보도로 재미를 봤던 미디어들이라면, 이제 서태지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이 어떤 식으로 변모해갈 것인지 팬덤의 향방을 통해 따라가 보는 것이 상업적 성과에 뒤따르는 보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