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적, 당신도 당신을 속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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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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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장자연 편지’ 계기, 주목받는 ‘필적 감정’

18일 고주홍 중앙인영필적감정원 원장이 감정을 의뢰받은 문서의 글자를 카메라로 확대해 분석하고 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18일 고주홍 중앙인영필적감정원 원장이 감정을 의뢰받은 문서의 글자를 카메라로 확대해 분석하고 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편지 원본을 토대로 고 장자연 씨의 필적을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판단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장 씨의 유서(호소문) 복사본과 광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전모 씨(31)의 가짜 편지 복사본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제 소신은 그대로입니다.”

SBS의 의뢰를 받아 전 씨의 가짜 편지 복사본과 장 씨의 유서(호소문) 복사본 간 필적을 감정했던 문서감정사 이희일 씨(49)는 18일 두 편지의 필적이 유사하다고 판단했던 자신의 감정결과를 여전히 자신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본을 토대로 필적을 감정할 때는 필압(펜으로 종이에 글을 쓸 때 들어가는 힘)을 판단할 수 없고 글씨 끝 부분의 세밀한 떨림을 살필 수 없는 한계가 따른다”고 털어놨다. 필체에 유사성은 분명하지만 진본이 아닌 사본을 대조한 데 따른 문제점은 있었다는 얘기다.

○ “필적 조작 땐 머뭇거린 흔적 남아”

최근 SBS의 보도로 논란이 된 탤런트 고 장자연 씨 편지가 국과수 필적감정 결과 친필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서 필적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 씨는 전 씨의 가짜 편지를 장 씨의 친필과 유사하다고 봤지만, 국과수는 정반대의 감정 결과를 내놓았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온 이유는 뭘까.

18일 서울 서초구 국제문서감정원의 문서감정사 현진우 원장(50)은 “이 씨가 장 씨의 필적과 전 씨의 가짜 편지 필적을 동일한 것으로 감정한 것은 편지글 속에 보이는 ‘야’ 자에서 ‘ㅑ’의 형태가 마치 ‘k’ 모양으로 장 씨의 유서(호소문)에서 쓰인 것과 똑같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 씨는 유서에서 ‘ㅑ’를 ‘k’자 모양으로 딱 한 번밖에 쓰지 않았고 ‘냐’ ‘야’처럼 제대로 쓴 경우도 많았는데 이 씨가 이를 놓쳤다는 것. 전 씨가 장 씨의 유서 필적을 흉내 내면서 장 씨가 ‘ㅑ’를 ‘k’처럼 쓰는 것으로 여기고 ‘k’자로 쓰는 데 집착해 모든 편지에 그같이 썼다가 도리어 조작 사실이 들통 났다는 얘기다.

‘장자연 씨 편지’ 사건처럼 누군가 다른 사람의 필적을 일부러 흉내 내면 어떤 흔적이 남아 있을까. 서울 중구 태평로 중앙인영필적감정원 고주홍 원장(41)은 “필적이 자유롭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현상이 두드러져 이 부분을 확대하면 필기구가 종이를 지나간 두께나 속도가 일정치 않은 것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사인펜이나 플러스펜 같은 필기구는 번지기 쉽기 때문에 필기 속도가 빨라지는 점을 감안해야 하며, 펜이 굵어질수록 필적을 은폐하기 쉽다. 즉 필기를 빠르게 하고 굵은 펜을 쓸수록 필적을 은폐하기 쉽다는 얘기다.

○ “획 모두 떼어내 화학 용액에 넣기도”

보다 정밀한 감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계약서나 유언장에 처음에는 한자로 ‘一部(일부)’로 쓰였다가 나중에 ‘全部(전부)’라고 고쳐진 경우가 있다면 문서감정사들은 글자를 한 획 한 획 모두 분리한 뒤 화학 용액에 넣어 획별 성분을 분석하게 된다.

필적은 글씨를 쓰는 사람의 건강상태, 교육수준, 직업, 글씨를 쓰는 자세와 상황, 펜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문서감정사들은 필적감정을 할 때 5가지를 기본적으로 고려한다. 필세(글자를 얼마나 빠르게, 균일한 속도로 쓰는가), 필압, 배자형태(자간, 글자 각도), 자획순서(같은 ㅂ자를 쓰더라도 어떻게 쓰는지), 필순(하나의 완성된 문자 자체의 구성 형태) 등이다. 문서감정사 한용택 씨(76)는 “이 밖에도 글을 쓴 사람만의 희소한 특징을 먼저 찾아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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