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이 복기한 알파고와의 일주일]‘백 78 반드시 통한다’ 자신감이 승부 갈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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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감격의 첫 승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새 희망이 솟는 것일까.

3연패를 당했지만 4국에 임할 때는 이전보다 훨씬 자신 있었다. 1∼3국을 통해 알파고가 어떤 상황을 싫어하는지, 어떤 모양에서 수읽기를 실수할 가능성이 높은지 ‘감’을 잡았다. 승부는 ‘실력+자신감’이다. 3국이 심리전에서 이미 지고 시작한 승부였다면 4국은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초반은 2국과 똑같이 시작했다. 알파고가 초반에 참고 1도 ‘흑 1(실전 흑23)’을 들고나왔다. 여기서 나는 인간적 욕심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그냥 밑으로 받아주면 좌하에 14집의 실리를 확보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알파고를 더 응징하고 싶어 백 2로 젖힌 것이 과했다. 흑 3에 백 4로 받을 수밖에 없어 약간의 실점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승부는 멀었다고 생각했다. 초반 약간의 실수에 초조해지지 않게 된 것이 이전 대국과 4국의 차이였다. 또 참고 2도 ‘흑 1(실전 흑 51)’ 때 내가 끊지 않고 백 2로 젖힌 것이 너무 나약하지 않으냐는 얘기도 들었다. 물론 나도 끊는 수를 생각했으나 백 2는 알파고가 싫어하는 수라고 봤다. 그런 감은 굉장히 중요했다.

백 78은 워낙 언론에서 많이 다뤘다. 물론 백 78이 100% 수가 되는 건 아니다. 나는 백 78을 이미 보고 있었다.
초읽기에 몰리기 시작한 당시 완벽하게 수읽기를 못했지만 이게 통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강했다. 그게 승부의 핵심이다. 만약 알파고가
제대로 둬 수가 안 될 수 있다는 걸 미리 걱정했다면 승부수를 던질 수 없었다. 확신을 갖고 밀고 나갈 때 승리는 따라온다.
확신을 갖고 뒀는데 상대의 정확한 응수에 좌절된다고 해도 아쉬움은 남지 않는다. 주저하는 건 승부사의 덕목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내 확신이 통했다. 나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알파고가 생각보다 일찍 오류를 드러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알파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4국 승리는 감격스러웠다. 이제부턴 알파고를 이길 자신감이 더 붙었다. 그래서 흑이 불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5국에서 흑을 자청했다. 흑으로도 이기면 인간이 알파고를 이미 파악했고, 아직은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4국이 끝나고 하루를 쉬었다. 자신감이 충만해진 나는 가족과 함께 야외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상대에 대한 연구만큼이나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정리=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이세돌#알파고#백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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