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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한국, 정권 바뀔때마다 한미동맹 흔들… 이스라엘서 교훈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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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한국, 정권 바뀔때마다 한미동맹 흔들… 이스라엘서 교훈 찾아야”

정용관 이슈앤피플팀장 , 이세형 기자 입력 2018-01-27 03:00수정 2018-01-29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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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0호/반기문 前 유엔 사무총장 특별인터뷰]외교안보 위기, 반기문의 진단
불출마 선언 뒤 국내신문 첫 인터뷰



《‘반도 못 뛰고….’ 지난해 2월 2일자 동아일보 1면 톱 제목이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사진)의 대선 불출마 선언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한반도 외교안보 위기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동아일보 지령 3만 호를 맞아 반 전 총장을 만나봤다.》


낮 기온까지 영하 10도 아래를 맴돌던 24일 오후 칼바람을 맞으며 연세대의 아펜젤러관에 들어섰다. 1924년에 건립된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 2층 복도 끝 연세대 글로벌사회공헌원 명예원장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해 7월부터 명예원장 겸 석좌교수로 출근하는 곳이다. 5평가량의 아담한 크기였다. 소박했다. 김숙 전 유엔대사, 김봉현 전 호주대사 등이 사무실을 오갔다. 동아일보 지령 3만 호를 계기로 인터뷰가 이뤄진 만큼 먼저 동아일보와의 인연 얘기로 환담이 오갔다.

“사무총장 마치고 귀국하고 나서 국내 신문 인터뷰는 처음이다. 3만 호 대단한데,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 등이 아니었으면 벌써 3만 호를 넘었을 거다. 민족정기를 대변하는 신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신문은 많이 읽었다. 동아일보가 4면 나오던 시절부터….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시사만평을 참 많이 봤다. 신세진 일도 있다. 1999년 터키에 큰 지진이 났을 때 한국이 고작 8만 달러를 낸다고 해서 망신살이 뻗친 적 있었다. 6·25전쟁 참전국이고 한국을 참 좋아하는 나라인데…. 동아일보가 ‘구호 모금 운동’ 사고(社告)를 내고 적극적으로 나서줬다. 언론이 국가 위상을 높이는 외교 역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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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근황도 궁금했다.

“한국에 들어온 건 1년이 좀 넘었지만 미 하버드대 연구생활 마치고 영구 귀국한 건 7월 5일이다. 6개월 정도 지난 건데, 외국 도시를 27번 다녀왔더라. 거의 유엔 사무총장 첫해만큼 다닌 듯하다. 국내 강연도 대학 경제단체 사회단체 등 40여 군데 했다. 젊은 학생들을 만나려고 노력했다.”

그는 이날도 인터뷰에 앞서 계룡대를 방문해 육해공군 최고 지휘관을 비롯한 군 간부 등 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반도 정세와 우리의 자세’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왔다고 했다. 자연스레 안보 이슈로 대화가 넘어갔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24일 연세대 아펜젤러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2014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보낸 편지와 사진을 보여줬다. 반 전 총장은 탈레반의 위협에도 파키스탄에서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강조해온 말랄라의 활동을 소개하며 ‘세계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지난해 말에도 합참 간부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강연을 했다고 하던데…. 어떤 메시지를 담았나.

“당연히 한미 동맹의 중요성, 한반도 위기 상황을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G20 정상회의 기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회담 때) ‘6·25전쟁 이후 최고의 위기다’란 말을 했는데 사실 내가 먼저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한미 동맹이 왜 중요한지는 이스라엘의 예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22개 아랍 국가로 둘러싸여 있다. 이 중 평화조약을 맺고 있는 나라는 이집트와 요르단뿐이다. 이들도 이스라엘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미국과의 외교관계 등으로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사실상 적국으로 둘러싸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버티는 건 ‘미-이스라엘 방위조약’ 때문이다. 그만큼 미국과의 동맹 효과가 큰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한미 동맹 재조정 문제가 오랜 이슈 아닌가.

“1948년 건국 뒤 이스라엘도 한국 못지않게 정권 잡기 경쟁이 심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미-이스라엘 동맹을 조정하자는 이야기는 안 했다. 오히려 미국 내 유대인 로비단체 등을 이용해 미국을 더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려 했다. 그러다 보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다”란 선언까지 한 것 아니냐.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한국은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 ‘전작권 조정 문제’를 포함해 한미 동맹 조정 이야기가 나온다.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다. 군은 안보에선 무게중심을 잡아야 한다. 얼마 전 미 해군 잠수함이 부산에 기항하겠다고 했는데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한국 정부의) 우려 때문에 기항을 포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런 식의 정치적인 판단은 하지 말아야 한다. 군이 미중, 미북, 남북 관계 등을 알아야 하지만 너무 정치적인 건 신경 쓰지 말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미중 역학관계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글로벌 리더십에서 후퇴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재주를 감추고 때를 기다림) 자세에서 벗어나 ‘차이나 드림’을 외치며 205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가가 되겠다는 식으로 바뀌는 상황이다. 종합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모습을 보면서 ‘신냉전 시대의 도래’ 같은 생각도 든다. 중국이 자세를 숙여가며 아시아적인 태도로 나오진 않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동맹 관계의 재조정 이야기가 나오고 전작권 환수 이야기가 나오는 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후퇴하고 미중이 충돌이라도 하면….

“질량불변의 법칙은 국제정치에서도 통용된다. 한 군데서 누군가가 빠지면 그 공백을 또 다른 누군가가 채우는 것이다. 그래도 전 세계 어디에서든 갑작스러운 어떤 사태가 났을 때 군사력을 즉각 투사(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나라는 현재 미국뿐이다. 총 11대의 항공모함을 운용하며 유사 사태가 발생했을 때 하루 만에 대응하는 게 목표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는 지니지 못한 능력이다. 다만 앞으로 중국은 이런 글로벌 투사 능력을 갖추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과 중국이 정면충돌할까? 남중국해 같은 지역에서 약간의 충돌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워낙 큰 나라고, 국제적인 책임도 잘 알고 있어서 심각하게 충돌하진 않을 것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사무실에 놓여 있는 중학생 시절 보이스카우트 활동 사진. ‘2023년 세계잼버리대회 전북 새만금 유치’ 지원 활동을 하며 이 사진을 활용하기도 했다. 반기문 전 총장 제공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 태평양 구상’에 일본 호주도 찬성의 뜻을 밝혔다. 우리 정부는 중국 눈치도 봐야 하고…. 미국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바라는 것 아닌가.


“한미일 안보협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동맹은 미국과의 동맹이다. 미일 동맹도 있다. 한미일이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니 경우에 따라 협력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동맹체제가 되어 버리면 ‘중국을 상대로 한 것이다’란 인식이 나오고 우리가 난처해질 수 있다. 우리는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협력해야 한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하는 양자택일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미 동맹은 중국도 그냥 인정하는 것이다. 미군의 주둔 자체도 중국은 인정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중국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을 큰 봉우리에 비유하며 중국몽을 함께하겠다고 해서 논란이 됐는데, 방중을 너무 서두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중국에서 천천히 하길 바라는데 조금 서두른 것 같다. 외교에서 조급증을 보이면 한 수 접히고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외교가 감성적인 면이 많다. 흔한 말로 먼저 화내면 지는 거다. 냉철하게 할 땐 냉철하게 해야 하는데 우리는 국익이 당리당략에 흔들릴 때가 있다. 그래서 국민이 혼란스러워한다. 특히 젊은층이 그렇게 된다. 이런 점에서 걱정이 많다.”

―북한 얘기로 들어가 보자. 평화 올림픽이냐 평양 올림픽이냐 논란도 많은데, 북한의 진짜 의도가 뭘까.

“스포츠가 안정, 화해에 기여하는 것도 크지만 좀 의연해야 한다. 북한의 의도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북한은 유엔 회원국 중 최악의 ‘규범 파괴자(Norm Breaker)’다. 지금까지 10개의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받은 나라가 없다. (대북 석유 정제품 제재를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결의안 2397호는 미국과 중국 관계를 고려할 때 (나올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제재다. 물론 미국은 이 정도로는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올해 말 통상 기록 등이 반 토막도 더 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제재의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또 제재의 고삐를 늦추기 위해 혹은 남남 갈등과 한미 갈등을 위해 ‘미소 작전’을 썼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석은 잇단 도발 이후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분석도 많다.

“북한이 올 것이란 생각은 했었다. 지난해 9월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윤리위원장이 됐지만 그 전부터 내정은 돼 있었다. 지난해 9월 페루에서 “북한이 참여하길 바란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는데, 북한 장웅 IOC 위원이 “스포츠는 정치와 다르다”는 식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했다. 그리고 평양으로 장웅이 돌아갔다. 내 추측에는 장웅이 (너무 일찍 패를 꺼내 보였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의 심기를 건드려 평양으로 소환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북한이 계속 뜸을 들이다 1월 1일 참가 결정을 발표했다. 북한으로서는 제재가 심해지니 ‘죽겠다. 가봐야겠다’ 식의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의 한국 방문으로 한국이 들썩했다. 북한의 선전전에 말려드는 것 같기도 하고….

“언론이 현송월 방문이 무슨 국가에 어마어마한 일이 난 것처럼 다루는 게 유감이었다. 어떤 방송은 10시간씩 관련 내용을 방영했다. 이건 ‘국민의 알 권리’ 박탈이나 다름없다. 평창 올림픽은 전 세계가 참석하는 행사다. 남북한만의 행사가 아닌 것이다. 다른 나라도 다 자기 나라 선수들을 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만 주목하면 어떻겠나. 차분하게 만인의 축제가 되게 해야 한다. 다만 한반도기 논란은 대회 기간 내내 태극기가 휘날리고, 애국가가 나올 것이다. 그러니 대의를 위해선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것도 동의할 수 있다고 본다.”

―‘포스트 평창’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북한이 평창을 체제 선전에 이용만 하고 다시 도발할 수도 있지 않나.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인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인 문제는 확실히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건 북한이 거절할 명분이 없다. 군사당국 회담도 당연히 해야 한다. 좋은 디딤돌(stepping stone)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비핵화 등을 진행해야 한다. 이건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북한이 도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나 핵무기 시험을 하는 순간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미국 강경론자들의 입장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유엔 제재는 비핵화에 진전이 있기 전에는 안 풀 것이다.”

―위안부 문제 합의를 둘러싸고 한일 관계도 경색돼 있다. 10억 엔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위안부 합의도 매끄럽지 않았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발표한 것도 매끄럽지 않았다. 10억 엔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 계속 협의를 해야 한다. 외교 업무를 하다 보면 상대방에게 화가 나서 ‘죽어도 안 만난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대부분 다 해결 방법이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평창에 온다. 트럼프 다루는 걸 보면 전략적인 것 같기도 하고 약은 것 같기도 하고….

“아베는 우익적인 사고방식이 강하지만 어디가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동맹에 문제 있다는 이야기도 없다. 현명하다고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 때 골프를 치면서 골프 이야기만 했다.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때 어마어마하게 스터디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준비했다는 이야기가 다 (미국 쪽에) 들어가게 했다. 시 주석은 아마 트럼프 대통령을 스스로 ‘핸들(다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통상 우리 대통령들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면 ‘북핵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기자는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전날인 지난해 1월 31일 몇몇 일간지 정치부장들과 함께 반 전 총장과 비공개 만찬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는 주로 청와대 수석, 외교통상부 장관, 사무총장 시절 에피소드를 얘기했다. 왜 대선에 나왔는지, 어떻게 레이스를 펼칠 것인지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었다. 소주를 서너 잔 마시기도 했었다. 인터뷰 말미에 “그때 불출마 마음을 굳힌 상태에서 기자들을 만났던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 얘긴 하고 싶지 않은데…. 난 솔직히 권력욕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유엔 사무총장도 12월 31일까지 고지식하게 다 마무리하고 들어왔다. 그런데 들어와서 보니까 상황이 너무 복잡하고 끝까지 간다는 게 참 어려웠다. 도착할 때부터 생수 에비앙 논란은 정말 좀….”

정용관 이슈앤피플팀장 yongari@donga.com·정리=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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