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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30000호]음악 등 ‘인재 등용문’ 한 세기… “동아가 있어 문화의 향기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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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30000호]음악 등 ‘인재 등용문’ 한 세기… “동아가 있어 문화의 향기 넘쳐났다”

김정은기자 입력 2018-01-26 03:00수정 2018-01-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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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와 함께 성장한 문화예술
1968년 제5회 동아연극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은 배우 송승환(왼쪽). 극단 광장의 연극 ‘학마을 사람들’에서 아역으로 출연해 동아연극상 특별상을 받은 그는 현재까지도 최연소 수상자 기록을 갖고 있다. 송승환 씨 제공
“조선민중으로 하야곰 세계문명(世界文明)에 공헌케 하며 조선강산으로 하야곰 문화(文化)의 낙원(樂園)이 되게함을 고창하노니, 이는 곧 조선민족의 사명이요 생존의 가치라.”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사는 ‘문화주의(文化主義)’를 3대 사시(社是) 중 하나로 제창한다.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후 6·25전쟁으로 피폐한 상황에서도 국내 문화 예술의 싹을 틔우기 위한 각종 문화운동을 활발히 펼쳐 왔다.

신예 음악가 발굴을 위한 ‘동아음악콩쿠르’는 1961년 처음 열렸다. 연령 학력에 제한을 두지 않는 대국민 오디션으로 당시 작곡(실내악), 성악,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5개 부문에서 58명이 참가해 기량을 뽐냈다. 1회 피아노 부문 우승자인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피아니스트 김대진 강충모, 지휘자 임헌정, 유럽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성악가 신영옥 연광철 임선혜,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강동석 유시연, 첼리스트 송영훈, 비올리스트 김상진 등 한국 음악계의 스타를 배출해 왔다. 1996년부터 국내 최초의 국제음악콩쿠르인 서울국제음악콩쿠르를 열고 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신영옥 씨(57)는 “1978년 동아음악콩쿠르에서 고교재학생(선화예고 2학년)으로는 처음으로 입상하면서 처음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신 씨는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하고, 1990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에서 데뷔하며 일약 스타가 됐다. 1992년 동아일보 초청으로 국내 첫 독창회를 갖기도 했다. 그는 “1년 뒤 돌아가신 어머니가 본 제 마지막 독창회라 잊을 수가 없다”고 전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가르친 원로 피아니스트 신수정 교수(75)는 “국내 연주자들의 기량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50년 넘도록 꾸준히 지속돼 온 동아음악콩쿠르가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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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창설된 동아연극상은 한국 최초의 연극상이라는 점에서 연극사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쌀 한 가마 가격이 3000원이던 시절, 당시 동아일보가 30만 원의 상금을 내걸고 제1회 참가작을 공모한 일은 연극계에서 큰 화제였다. 극단 자유 창립멤버인 연극연출가 김정옥 씨(86)는 “연극인들은 동아연극상 대상 수상 극단에 수여되는 상금 30만 원에 놀라고 감격했다”며 “상금으로 1년간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역대 연출상을 수상한 김정옥 임영웅 오태석 윤호진 이상우 김석만 김광림 이윤택 등은 이후 한국 연극계의 주축이 됐다.

동아연극상 개인 최다 수상자(7회)인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66)은 “부산에서 연극을 시작한 데다 명문예술대 출신도 아닌 내가 기성 연극계에 발을 들일 수 있었던 건 동아연극상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2006년 사재 2억 원을 동아연극상에 기부해 매년 ‘유인촌신인연기상’ 상금을 지원하는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동아연극상 연기상 출신이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을 맡은 배우 송승환 씨(61)는 11세였던 1968년 ‘학마을 사람들’(5회)로 동아연극상 특별상을 받아 최연소 수상자 기록을 갖고 있다. 송 씨는 “여덟 살에 KBS 라디오 어린이 프로그램 ‘은방울과 돌이’의 MC로 데뷔했던 내게 동아연극상은 배우의 길을 걷게 한 나침반 같은 존재였다”며 “어린 나이였지만 상을 받은 뒤 자신감을 얻었고, 연기자의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계 3대 발레단 중 하나인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활약 중인 발레리나 박세은. 제35회 동아무용콩쿠르(학생부 일반) 금상 출신이다. 동아일보DB

1964년 시작된 동아무용콩쿠르는 세계 국제무용콩쿠르 가운데 가장 역사가 깊은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와 창설 연도가 같다. 발레 부문에서는 김혜식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무용원장이 제1회 금상 수상자다. 이후 발레리노 이원국과 김용걸 김현웅 이동훈 엄재용, 발레리나 김주원 황혜민, 파리오페라발레단 수석무용수 박세은, 보스턴발레단 수석무용수 한서혜도 동아콩쿠르가 배출한 스타다. 안무가 홍승엽 차진엽 등 스타 무용가들 역시 이 대회를 거쳐 성장했다. 국립무용단 주역 무용수로 활약하는 조용진 박혜지 이석준 이재화 이요음도 동아무용콩쿠르 출신들이다. 2009년 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한 조용진(33)은 “무용수들에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1등을 한다는 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며 “많은 무용콩쿠르가 존재하지만 동아무용콩쿠르라는 대회 자체가 그만큼 상징적이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국악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1962년 명창명인대회, 1971년 판소리유파 발표회, 1985년 동아국악콩쿠르도 잇따라 창설했다. 국내 최고 권위의 동아국악콩쿠르는 왕기석 왕기철 유태평양(이상 판소리), 정수년 강은일(이상 해금), 원일(피리) 등 800여 명의 국악인을 배출했다. 또한 1956년 동아일보가 창설한 국수전은 조남철 김인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9단 등 대한민국 바둑계의 국수(國手)를 배출해 왔다.

동아일보는 세계적인 문화예술 단체를 국내로 초청하기도 했다. 1975년 4월 영국 로열발레단이 처음 내한해 서울 장충단로 국립극장에서 사흘간 공연했다. 특히 1978년 두 번째 내한한 로열발레단 초청 공연에서는 불세출의 발레리나 마고 폰테인의 생일을 맞아 기념 공연을 펼치는 등 화제를 모았다. 1984년에는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역사적인 내한공연도 동아일보 초청으로 성사돼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동아일보 30000호#송승환#박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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