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켜라” “춥다 꺼라”… 에어컨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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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곳곳서 ‘무더위 갈등’

‘띠리링.’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대학 도서관 열람실. 아무도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 갑자기 에어컨이 종료음을 내며 꺼졌다. 더위를 피해 공부하러 온 전모 씨(24·여)가 다시 에어컨 전원을 켰다. 하지만 잠시 뒤 에어컨에서 ‘띠리링’ 소리가 나면서 다시 꺼져버렸다.

알고 보니 추위를 느낀 열람실의 다른 이용자가 스마트폰 리모컨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자리에 앉은 채 몰래 에어컨을 끈 것이다. 일부 에어컨은 같은 회사의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면 리모컨처럼 쓸 수 있다. 전 씨는 “추위와 더위를 느끼는 기준이 다르다 보니 요즘 열람실에서 ‘띠리링’ 소리가 자주 들린다”며 “안 그래도 더운데 정신 사납고 짜증이 난다”고 토로했다.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학교, 카페, 오피스텔 등 곳곳에서 ‘폭염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25일 오후 2시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사장 오모 씨(57·여)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학생)’에 이어 전기료를 아끼려고 카페에 머무는 ‘카페 난민’까지 등장한 것. 문제는 여러 명이 와서 커피를 한두 잔만 주문하거나 아예 주문을 하지 않고 더위만 식히고 나가는 손님들이 적잖다는 점이다. 가게 이미지가 나빠질까봐 함부로 손님에게 말을 꺼내기도 어렵다. 오 씨는 조만간 카페 입구에 ‘1인 1잔 주문’ 문구를 붙일 생각이다. 오 씨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가 올라 감당하기 힘든데 회전율까지 떨어져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오피스텔과 원룸 등에서는 ‘담배 전쟁’이 벌어졌다. 26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는 ‘제발 집에서 흡연을 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문이 붙어 있었다. 덥다는 이유로 야외의 지정된 흡연 장소에 가지 않고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거주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다른 주민들은 화장실 환풍구를 통해 담배연기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 피해를 호소한다. 이 오피스텔 경비원은 “담배 민원이 속출하는데 어느 집 거주자가 ‘범인’인지 알 방법이 없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더운 날씨에 복도에 내놓은 쓰레기들이 쉽게 썩어 벌레가 늘고 냄새가 퍼지면서 ‘쓰레기 악취’도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전문가는 더위에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만큼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폭염 때문에 감정조절이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증상”이라며 “대인관계에서 더 많이 배려하고 이해해야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이윤태 인턴기자 연세대 사학과 4학년
김민찬 인턴기자 서울대 미학과 졸업
#무더위#에어컨#불쾌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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