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파일로 나도는 박사방 동영상…죄의식 없는 소비가 ‘야동괴물’ 만든다

  • 뉴스1
  • 입력 2020년 3월 30일 06시 41분


코멘트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 News1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 News1
“형님, 혹시 이거 보셨습니까?”

직장인 김모씨(38)는 최근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친한 후배와 대화하던 중 ‘압축 파일’ 하나를 받았다. 해당 파일에는 한눈에 세기 어려울 만큼 대량의 사진과 영상이 담겨 있었다.

후배는 “이게 바로 ‘박사방’에서 유포되던 사진·동영상”이라며 “요즘 시국이 시국인 만큼 다른 데 절대 돌려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박사방 사건이 터진 근본적 배경에 주목해야

30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조주빈(25)이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제작한 성착취 영상들은 여전히 유포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박사방’은 폭파(폐쇄)됐으나 주로 사적인 친분을 가진 개인과 개인 간 대화방에서 ‘압축파일’ 형태로 담겨 오가고 있다.

박사방 사건의 공론화로 국민적인 분노가 확산하는데도 ‘돌려 보는 행태’는 지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례를 근거로 조주빈이라는 특수한 범죄자와 함께 박사방 사건의 근본적인 배경에 주목하자고 제언한다.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거나 대상화하는 일탈적인 행동을 불법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당연시하는 문화를 그 배경이라고 지목한다. 이른바 ‘야동’으로 불리는 성착취 영상(음란 동영상)을 때론 과시욕까지 드러내며 돌려보는 것이 대표적이다.

직장인 A씨(27)는 “음란 동영상을 돌려보는 사람들도 그 영상 속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며 “박사방에 있던 사람들도 자신의 은밀한 취미생활을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룸살롱, 도우미 노래방 가자고 할까 걱정”

이처럼 그릇된 현상이 근절되지 않고 은밀하게 이어지다가 ‘박사방’이라는 극단적인 형태의 범죄로 발전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이 소라넷의 후예가 바로 박사방이라고 진단하는 이유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박사방 사건의 본질적인 배경은 우리 사회에서 과거부터 이어져 온 비뚤어진 성 인식과 성 문화”라며 “그와 같은 인식·문화가 과거엔 소라넷으로, 이번엔 박사방으로 형태만 달리해 폭발하듯 범죄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을 소비하고 대상화하는 습성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제2의 조주빈이 또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게 곽 교수의 우려다.

비뚤어진 성문화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회식 후 성매매가 이뤄지는 유흥업소로 향하는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는 최근까지도 “부장이 룸살롱이나 노래방 도우미를 부르는 곳에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고민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조만간 임원, 부장들이 노는데 저를 한 번 데려가려는 것 같다”며 “그런 곳을 정말 싫어하고 말만 들어도 엄청나게 거부감이 든다”고 적었다.

◇처벌 수위 강화해 위기감 갖게 해야

전문가들은 관련 법의 처벌수위를 강화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하는 인식에 위기감을 갖게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대법원 젠더법연구회 소속판사에 따르면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에서 영상 1000건을 내려 받은 사람의 처벌수위는 징역 4개월, 70건을 내려받은 사람은 벌금 300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해당 사이트에서 영상을 한 번 내려받은 사람이 징역 70개월과 보호관찰 10년을 선고받았다고 강조했다.

이하영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는 “이용자들이 야동을 성착취물이나 성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성매매도 불법이란 점을 알고도 단속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하고 있다“며 국내 현행법의 ‘솜방망이 처벌’ 관행을 비판했다.

친한 동생에게 박사방 파일을 받은 김모씨는 “음란동영상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주고 받았던 게 사실”이라면서 “최근 박사방 사건으로 단순 시청자나 소지자도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라고 해당 파일을 받는 즉시 모두 삭제했다”고 털어놨다.

(서울=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