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 개혁하려면 교사를 뛰게 하라[광화문에서/우경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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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우경임 논설위원
“미리 저축을 좀 해 둬요.”

재테크에 대한 조언이 아니다. 올해 첫째를 동네 일반고에 보낸 엄마에게 ‘아이가 학교에 잘 다니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학기 초에 학교를 갔더니 수업 받는 아이들 태반이 자고 있고, 따라올 아이만 들으라는 식”이라며 “학교는 배우는 곳이 아니라 내신시험 치르는 곳”이라고 했다. 대학에 가고 싶으면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 사교육비가 여간 부담이 아니니 아이가 초등생일 때 아껴 두라고 했다.

이런 일반고에 생기가 돌게 될까. 교육부는 이달 중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한다. 자율형사립고를 폐지하기에 앞서 일반고 수준을 높여 달라는 요구에 대한 교육부의 첫 답변이다.

올해 25년 차 박성은 고교 교사. 비평준화 지역 입시 명문고에서 9년간 재직했고 지난해부터 농촌 소재 인문계고(일반고)에서 가르친다. 최근 두 고교에서 과학실험수업을 진행한 경험을 공유한 그의 글을 읽었다. 그는 ‘교육을 학교에 의존하는 아이들과 지내는 것이 교사로서 행복하다. 하지만 사교육으로 빈틈없이 관리된 아이들에 비해 학업 역량 부족이 누적된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적었다. 아이들의 학업 역량을 키우려면 맞춤형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학교 자원도, 교사의 에너지도 부족하다고 느껴서다.

이른바 명문고에선 과제를 주면 아이들이 내용물을 완벽하게 채워 냈다. 일반고에선 교사의 손길이 ‘훨씬 많이’ 필요했다. 정성을 쏟아도 아이들의 결과물은 성기었고, 박 교사는 진심 어린 감탄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다가와 “스스로 끝까지 해내는 수업에서 성취감을 느꼈다” “배움의 기쁨을 알겠다. 힘들었지만 재미있다”고 속삭였다.

학업 능력이 우수한 아이들보다 뒤처지는 아이들을 성장시키려면 역량 있는 교사의 헌신이 필수적이란 얘기다. 아무리 교과서를 새로 써도, 입시를 바꾸어도, 교실을 꾸며 봐도 우리 교육은 그대로였다. 박 교사의 수업이 아이들에게 성취동기를 부여했듯이 일반고가 바뀌려면 교사가 변화해야 한다. 역대 교육 정책은 수업을 하는 교사가 아니라 평가를 받는 학생을 바꾸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를 답습했다고 본다. 이번 정책의 목표는 교사가 뛰게 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돼야 한다.

박 교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교사를 움직이게 할 방법을 물었다.

“충분한 합의를 통해 미래 교육에 대한 방향을 정하고 교사들 마음에 불을 질러야 한다. 교사는 월급을 많이 받기 위해서 선택한 직업이 아니다. 아이를 가르치고 그 삶에 올바른 변화를 일으키고 싶어서다. 막상 고교에 근무하면 입시에 대한 압력과 경직된 문화 안에서 꼼짝하기 어렵다.”

물론 성과급 등으로 교사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그의 답변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는다. 인간의 욕망이 움직이는 데 교사라고 예외일까 싶지만 그런 신념을 가졌기에 원칙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일 터다.

박 교사는 ‘우리 교육이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교육부의 일반고 대책에는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이 담겨야 한다. 표류하는 배 안에서 똑바로 물건을 쌓을 수 없듯이, 방향 없이 방법만 덧칠한 교육 정책은 학교 현장을 어지럽게 만들 뿐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일반고 역량강화#일반고 개혁#자사고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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