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40字 통치’ 그 참을 수 없는 유혹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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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트위터의 헤밍웨이’
5000만명 넘는 팔로어 막강 위력
대학 소송 같은 불리한 이슈도 10분도 안돼 다른 논쟁으로 물갈이

美 국민 69% “트위터 정치 부정적”
폭스뉴스 “취임후에도 포기안할듯”
학계 “세계 최강 美대통령의 트윗… 의도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대통령으로서 나랏일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트럼프대학 소송’ 건을 마무리지었다. 대통령으로 당선돼서 유일하게 나쁜 점은 승소하는 데 필요한 많은 시간이 나한테 없다는 점이다. 너무 안 좋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승리를 확정한 지 열흘 뒤인 지난해 11월 19일 오전 8시 34분과 39분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그는 대선 기간 내내 법원 출두를 미루며 이른바 ‘트럼프대학 사기 사건’에 대해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당선되자 태도를 180도 바꿔 2500만 달러(약 292억5000만 원)의 거액을 주고 피해 학생들과 전격 합의한 것이다. 그로부터 딱 9분 뒤인 오전 8시 48분. 그의 트위터엔 성격이 전혀 다른 뉴스거리가 올라왔다.

 “우리 훌륭한 미래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어젯밤 (뮤지컬) ‘해밀턴’의 배우들로부터 공격을 당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공연이 끝난 뒤 한 배우가 무대에서 객석에 있던 펜스 부통령 당선인을 향해 “다양성과 인권을 존중하는 정부가 돼 달라”고 호소한 일을 논란거리로 부각시킨 셈이다.

 미 언론들은 “스스로 ‘140자(트위터)의 헤밍웨이’로 칭하는 트럼프가 이 도구(트위터)를 얼마나 자신에게 유리하고 능수능란하게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분석한다.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불리한 이슈(트럼프대학 사기 사건)를 다른 논쟁적 이슈(부통령 대 ‘해밀턴’ 배우의 갈등)로 덮어 버린 셈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여러 차례 “트위터 활동을 자제하겠다”고 다짐하곤 했지만 당선 이후에도 핵 확산, 하나의 중국 원칙 같은 민감한 외교 이슈부터 배우 메릴 스트립 등 자신을 공격한 사람들에 대한 감정적 험담 등을 여과 없이 트위터에 올렸다.

 18일 NBC뉴스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공동조사 결과 미국 국민 10명 중 7명(69%)은 “면밀한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올리는 트위터가 의도치 않은 파장을 낳을 수 있다”며 트럼프의 ‘트위터 정치’에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응답자 중 26%만 ‘직접적인 트위터 소통이 유익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같은 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나는 트위터를 좋아하지 않지만 (현재로서는) 부정직한 미디어에 맞설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트위터만 2000만 명,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까지 합치면 5000만 명이 넘는 팔로어의 위력과 파급효과를 트럼프 당선인이 20일 취임 이후에도 포기할 것 같지 않다고 폭스뉴스는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트럼프의 현란한 ‘트위터 기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의 문제만 남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CNN은 최근 트럼프의 주요 트위터 내용을 상세히 해설하는 기사를 내보냈고, NYT도 ‘트럼프의 트위터 표현 이해하기’란 기획기사까지 썼다. 중국 신화통신은 “트위터가 외교 정책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외교는 아이들 장난이 아니다”며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언론학자들은 “‘트럼프의 트위터에 과민 반응하는 게 결국 트럼프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힘센 정치인인 미국 대통령이란 점 때문에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트럼프 전기 작가인 데이비드 존스턴 씨는 “미국 등 전 세계 미디어가 트럼프의 도발적인 트위터 발언을 중계하듯 보도하는 동안 정작 트럼프가 무슨 행동을 하고, 어떤 심각한 결정을 내리는지는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의 ‘관심 돌리기’ 전략에 번번이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트럼프#트위터#통치#미국#트위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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