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묵인한 조부, 침략 반성한 부친… 나루히토는 ‘우경화’속 즉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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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출생인 나루히토(德仁) 일왕은 새로운 일본 통합의 상징으로 아버지 ‘헤이세이(平成) 시대’와는 구분되는 과제를 갖고 있다. 레이와(令和) 시대는 거세지는 우경화의 기류 속에서 출범했다.

현재 일본에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자민당의 독주로 급격한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9월 3선 연임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전후 일본 평화헌법의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에서 ‘보통 국가’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평화를 첫 메시지로 내보낸 나루히토 일왕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나루히토 일왕은 소탈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영국 유학 시절에 대해 “기숙사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신용카드로 쇼핑을 하고 펍에서 맥주를 마시는 등 일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이런 행보 때문인지 그의 즉위로 보수적인 사회의 다양성이 확보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여성 왕위 승계의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나루히토 일왕이 아들 없이 딸인 아이코 공주 한 명만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헌법상 여성은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당분간 이를 둘러싼 논란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1926년부터 1989년까지 재위한 쇼와(昭和) 히로히토(裕仁) 일왕은 그 자체가 침략전쟁의 상징이기도 했다. 메이지 시대 군국주의를 배경으로 성장한 그는 만주사변을 묵인했으며 태평양전쟁 개전을 직접 선언했다. 히로히토 일왕은 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을 지고 전범으로 기소될 뻔했다. 그러나 그를 전범으로 기소하면 일본 사회에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더글러스 맥아더 당시 연합군 사령관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았다.

쇼와 일왕의 아들이자 헤이세이 시대를 이끈 아키히토(明仁·재위 기간 1989∼2019년) 상왕은 평화를 강조했다. 1975년 오키나와 방문 당시 오키나와 독립론자로부터 화염병 테러를 당했음에도 “오키나와는 지난 전쟁에서 전장이 돼 일반 시민을 포함해 무수한 피해를 입었다. 전후에도 오랜 기간 고생을 강요당해 온 깊은 슬픔과 아픔을 기억한다”며 오키나와 주민들을 위로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재임 중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전후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전쟁에서의 많은 희생과 국민의 노력으로 구축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마지막까지 평화헌법 수호 의지를 드러냈다.

아키히토 상왕은 재위 때 일본의 식민 지배를 당했던 국가에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1990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방일 때 그는 “귀국의 국민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면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올해 전몰식 추도사에서 “깊은 반성 위에 서서 다시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고 말했다. 평화에 대한 염원만큼은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레이와 시대는 ‘헤이세이 불황’을 겪었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레이와 시대를 맞아 일본인들은 쇼와 시대에 경험한 전후 고속 성장기를 그리워하고 있다. 로이터는 최근 일본은 정보통신기술에서 한국, 중국 등의 경쟁국에 뒤떨어진다는 것을 지적하며 레이와 시대의 일본은 5세대(5G) 기술을 포함해 정보기술(IT)의 확대를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나루히토 일왕#레이와 시대#아베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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