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일왕 승계의식, 국비 지원 논란…과거 왕실 예산으로 충당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일 21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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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10시30분, 일본 도쿄(東京) 내 일왕의 거처인 고쿄(皇居)의 영빈관 문이 열렸다.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연미복 상의에 일본 최고위 훈장을 달고 입장했다.

나루히토 일왕이 연단 위에 서자 맞은편 문이 열리더니 왕실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세가지 보물인 ‘3종 신기(거울·칼·굽은 구슬)’를 든 시종이 들어왔다. 국새와 어새를 든 시종도 뒤따랐다. 일왕이 퇴장할 때까지 행사에 걸린 시간은 약 5분이었다. 보물 계승 행사를 치르면서 나루히토 일왕은 공식적으로 일왕이 됐다.

왕실 내부 행사 성격을 가진 이 행사는 종교적 색체가 매우 강하다. 행사 참석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 약 30명에 불과했다. 과거 왕실은 3종 신기 계승식을 자체 예산으로 충당했지만 이번에는 국비로 치러졌다. 이를 두고 도쿄신문은 1일 “3종 신기 계승식은 왕실의 사적인 행사인데도 국고가 지원돼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헌법은 정교분리 원칙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 행사에 국가 예산을 투입할 수 없다. 하지만 나루히토 일왕 즉위 관련 행사 약 30개 중에 23개가 일본 전통종교인 신도(神道) 색채가 짙어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도쿄신문은 지적했다.

특히 새 일왕이 즉위한 뒤 처음으로 거행하는 추수 감사 의식인 신상제(新嘗祭·11월 14, 15일)에도 막대한 국가 예산이 들어간다. 아베 정부는 ‘헌법에 왕위 세습제가 정해져 있는 만큼 왕위 계승 행사는 공적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번 행사를 모두 국비로 충당하기로 했다. 도쿄신문은 왕실 행사에 들어가는 국비 예산이 38억5000만 엔(약 403억6260만 원)이라고 계산했다.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하면서 왕세제로 신분이 바뀐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왕자는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국비를 들인 화려한 왕실 행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종교 관계자와 일반 시민 등 300여명이 왕위 계승 행사에 국비를 지출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정부를 상대로 도쿄지법에 지출중지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기각 당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왕실 행사에 국비 투입을 결정한 것은 왕위계승 행사로 분위기를 띄워 7월 참의원 선거에 이용하려는 아베 정권의 의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 내에서 아키히토 상왕의 생전 퇴위에 따른 ‘이중 권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키히토 상왕이 일체의 공무에서 손을 뗀다고 밝혔지만 두 명의 ‘왕’으로 인해 권위가 분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사코 왕비의 적응장애에 대한 걱정도 나온다. 평민 출신인 마사코 왕비는 결혼과 동시에 왕족에 합류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 때문에 공식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드물었다. 아사히신문은 “새 일왕 부부는 전 일왕 부부가 했던 모든 공적 활동을 이어받지만 마사코 왕비는 적응장애로 요양 중이어서 모든 행사를 소화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보도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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