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만명 숨진 내전 끝내자”… 미완의 평화협정, 노벨상 받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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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노벨평화상에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

 지난달 26일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65)과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지도자 로드리고 론도뇨(57)가 52년간 지속된 콜롬비아 내전을 끝내는 평화협정안에 서명했을 때 세계 언론은 “올해 노벨 평화상은 결정됐다”고 평가했다.

 내전에서 사용된 총알 탄피를 녹여 만든 펜으로 평화협정안에 서명하는 장면은 의미를 극대화했다. 그러나 이달 2일 국민투표에서 예상을 깨고 평화협정안이 부결(찬성 49.7%, 반대 50.2%)되자 국제사회 여론은 급속히 회의론으로 돌아섰다. 노벨 평화상은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산토스 대통령에게 큰 상처를 안겨준 국민투표 닷새 뒤인 7일(현지 시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꺼져가던 평화협정안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역대 최다인 376명(개인 228명, 단체 148곳)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올해 노벨 평화상에서 산토스 대통령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노벨위원회는 “콜롬비아 국민 22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600만 명의 피란민을 만든 내전을 끝내기 위한 산토스 대통령의 확고한 노력에 평화상을 드린다”고 밝혔다. 특히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평화협정안에 평화상을 준 이유와 관련해 “국민투표는 평화에 대한 찬반을 묻는 투표가 아니었다. 반대 진영이 거부한 것은 평화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세부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산토스 대통령이 어려운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노벨 평화상이 힘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산토스 대통령은 이날 수상자 발표 이후 노벨상 페이스북 계정에 공개된 인터뷰에서 “나는 내전으로 고통받은 콜롬비아 국민과 피해자 수백만 명의 이름으로 상을 받는다”며 “우리는 현재 평화에 매우 가까이 다가갔으며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산토스 대통령의 협상 파트너였던 FARC 지도자 론도뇨를 공동 수상자로 선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에 대해 “아직 완전히 종결되지 않은 분쟁의 게릴라 지도자에게 상을 주기는 정치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론도뇨는 이날 노벨 평화상 발표 이후 트위터 계정을 통해 “우리가 열망하는 유일한 상은 극우파 민병대, 보복, 거짓이 없는 콜롬비아를 위한 사회적 정의가 있는 평화의 상”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1951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태어난 산토스 대통령은 다수 정치인을 배출하고 1913년부터 2007년까지 유력 신문 ‘엘 티엠포’를 소유했던 명문가 출신이다. 엘 티엠포를 20세기 초반 인수한 큰할아버지 에두아르도 산토스 몬테호는 1938년부터 1942년까지 콜롬비아 대통령을 지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엘 티엠포의 편집장 출신이다. 산토스 대통령은 1990년대 정치에 뛰어들어 1991∼1994년 대외무역장관, 2000∼2002년 재무장관을 지냈다.

 친미 보수 성향의 알바로 우리베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맡은 그는 2008년 7월 FARC에 6년간 억류됐던 잉그리드 베탕쿠르 전 대통령 후보와 미국인 등 인질 10여 명을 피를 흘리지 않고 구출해 내면서 유명해졌다. 또 같은 해 에콰도르 국경을 넘어가 반군(叛軍) 고위 지도자를 체포해 외교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 외신은 “전쟁의 참상을 직접 체험해 봤기 때문에 평화의 소중함을 더 잘 아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반군 토벌에 앞장섰던 산토스는 2010년 대선에서 평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 평화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2012년부터는 평화협정 타결에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FARC와 4년간 협상을 벌였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한기재 기자
#콜롬비아#대통령#노벨평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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