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생리의학상 中 투유유, ‘칭하오쑤’ 만들기까지 과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7일 15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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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의과학원 여성 약학자 투유유(屠呦呦·85) 교수가 항말라리아제인 ‘칭하오쑤(靑蒿素·아르테미시닌)’을 개발한 공로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으면서 이 약의 개발 과정과 집념 등이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의 칭하오쑤 개발은 1960년대 미국과 전쟁을 하고 있던 베트남의 호지민 총서기가 직접 베이징(北京)까지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을 찾아와 부탁하면서 시작된 ‘항미원월(抗美援越·미국에 대항하고 베트남을 돕는다)’의 군사 프로젝트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또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투 교수는 1600년 전의 의학서적에서 신약 개발의 단서를 발견했다.

베트남 전 당시 동남아에서는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려 베트남 전에서도 적에 의해서 사살되는 병사보다 말라리아에 감염돼 죽는 베트남 병사들이 더 많았다. 1967년부터 1970년까지 베트남에 파견된 미군 중 감염자도 80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호지민의 긴급 요청을 받은 마오가 항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에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은 중국에서도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던 것도 한 이유였다. 1971년 칭하오쑤가 개발될 당시 중국의 말라리아 감염자는 약 4000만 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마오는 1967년 5월 23일 베이징에서 인민해방군총후근부와 국가과학위원회 연석으로 ‘학질(말라리아) 예방과 치료 전국 협력 회의’를 개최하고 학질 치료제 개발 등을 지시했다. 이 프로젝트의 명칭이 ‘523 임무’로 붙여진 것은 이 회의 날짜에서 따 온 것이다.

중국 정부는 7개 성시(省市)와 60여개 과학연구기관 500여명의 연구원을 ‘523 임무’에 동원했다. 당시는 문화대혁명(1966~76)의 불길이 타오르던 시기여서 대부분의 기초 과학연구는 중단됐다. 하지만 학질 치료제 개발은 마오의 특별 지시에 따라 베트남 전투를 돕기 위한 ‘군사 임무’로 진행된데다 다른 과학 연구가 중단돼 많은 연구 인력을 모을 수 있었던 것도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

이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군사의학과학원이 처음 만든 ‘학질 1호약’은 효과가 한 회 복용에 7일 가량 감염을 막아주었고, 이어 2호와 3호 약물은 1개월 가량 효과가 있었다. 중국은 약효가 제한적이지만 현지 상황이 급박해 개발된 치료약을 베트남 전쟁 기간 중 100여t 가량을 공급했다.

1951년 베이징의학원 약학과에 들어가 서양 약학을 전공하던 투유유는 졸업 후 중의연구원 중약연구소에 배정돼 동서양 의학을 동시에 경험하게 됐다.

투유유가 중약연구소에서 ‘523 임무’에 가담하게 된 것은 이 프로젝트가 출범한 지 3년 가량 지난 1969년 그의 나이 39세때였다. 그는 처음에는 ‘보조 연구원’이었지만 곧 능력을 인정받아 4명의 연구원을 이끄는 소조조장이 됐다.

그는 먼저 전통 의학 서적을 뒤져 학질에 효과가 있는 약초를 찾았으며 640여종의 약초에 대한 연구집을 펴냈다. 처음에는 ‘칭하오(개똥쑥)’는 학질 억제 효과가 68%로 후추(84%)보다도 낮아 투유유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개똥쑥과 학질의 관계는 서기 전 200여년 선진(先秦)의 ‘오십이병방(五十二病方)’에 언급됐다. 이어 서기 340년에 나온 동진(東晋)의 갈홍(葛洪)이 쓴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에 처음 개똥쑥의 항학질 기능이 언급됐고,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에도 기록됐다.

투 교수는 1971년 후반기 어느 날 ’주후비급방‘에서 ’개똥쑥 한 웅큼을 2승(升·L)의 물에 넣고 끊여 즙을 내어 마시라‘는 구절을 보고 영감을 얻어 기존의 방법과 달리 53도의 약한 물에 데워 즙을 짜내면서 더욱 효과가 높은 신약을 개발했다.

투 교수는 1972년 3월 8일 난징(南京)에서 열린 ’523 임무‘ 연구 보고회인 ’전국 항학질약물연구회‘에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당시 보고 제목은 ’마오쩌둥 사상 지도가 발굴해 낸 항학질 중약 공작‘.

베이징일보는 “투 교수의 칭하오쑤 개발은 중국 전국 과학자들 연구 결과의 산물”이라며 “523 임무에 참가한 전국 연구팀은 전통 의학서 등에 언급된 4만 여종의 약초 등에 대해 효능을 검증했다”고 전했다. 학질과 관련해서도 10여종의 풀이 선정됐으며 그 중에 개똥쑥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랜 기간 많은 과학자들이 성분을 검증하면서 마치 이어달리기 하듯 연구 성과를 전수하고 전파하는 과정에서 칭하오쑤도 개발됐다는 것이다.

중국은 원자탄과 수소폭탄, 인공위성 개발 프로젝트인 ’양탄일성(兩彈一星)‘ 개발도 마찬가지로 많은 과학자가 참여해 집단적으로 연구 개발하는 전통이 있으며 ’523 임무‘도 그런 프로젝트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이같은 개발 과정 때문에 중국 내 일각에서는 투 교수의 연구 성과가 온전히 개인의 것이냐를 두고서 논란도 제기된다. 이런 논란은 투 교수가 2011년 9월 미국의 ’래스커상‘을 수상했을 때부터 불거졌다.

그의 주요 연구 성과는 국가 단위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완성된 것이고 그 과정에 참여했던 많은 연구자들의 피와 땀이 응축된 것이기 때문에 투 교수 혼자 그 영광을 차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투 교수는 래스커상과 이번에 노벨상을 수상한 뒤 “이 영예는 나 개인에게 속할 뿐 아니라 중국과학계 전체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투 교수의 개인적 노력과 집념을 간과할 수는 없다고 중 언론은 전한다. 그는 말라리아 환자들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 남부 하이난(海南)섬에서 10년간 지냈다. 그 기간 투 교수의 남편은 문혁으로 숙청된 적이 있고 4살 난 딸은 탁아소로 보내지기도 했다.

투 교수 연구팀은 1971년 항말라리아 효과가 있는 100%의 ’칭하오(靑蒿·개똥쑥) 추출물‘을 발견하기까지 2000 개가 넘는 약초 제조법을 연구 대상에 올렸고 190개의 약초 표본을 실험하는 집념을 보였다. 칭하오는 191번째 약초였다. 투 교수는 이후 동료 두 명과 함께 임상 실험 대상에 자원하기도 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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