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바이오 투톱으로… 삼성 ‘선택과 집중’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삼성-한화 ‘1조9000억 빅딜’]‘이재용의 구조조정’ 본격화
경쟁력 떨어지는 업종 과감히 정리… 이재용, 화학-방산 매각 직접 결정
“실력 부족한 계열사 M&A 불가피”… 수익 극대화-비용 절감 거듭 강조

“우리(삼성)의 실력이 부족해서 일부 계열사가 인수합병(M&A)당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중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진 이후 열린 삼성그룹 수뇌부 회의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당시 그룹 경영진은 이 발언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며 “단순한 사업구조 개편이 아닌 구조조정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삼성은 이번 매각을 기점으로 그룹의 핵심 주력사업을 △전자·소재 △의료기기·바이오 두 가지로 압축할 방침이다. 과거 외환위기 때처럼 사후 약방문식 땜질을 하기보다는 필요 없는 사업은 임자가 있을 때 팔아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취지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 내부적으로 현재 상황을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며 “이번 매각 대금을 활용해 핵심 주력사업 분야에서 새로 M&A할 회사를 찾을 것”이라고 전했다.

○ 안 되는 건 버리고

삼성은 이번 빅딜을 올여름부터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쓰러진 뒤에 본격적인 매각 협상이 진행됐기 때문에 사실상 이 부회장이 의사결정을 했다는 시각이 많다.

삼성은 지난해 9월 삼성SDS와 삼성SNS를 합병한 것을 시작으로 △제일모직 패션사업부 양도 △삼성웰스토리 분사 △제일모직-삼성SDI 합병 △삼성종합화학-삼성석유화학 합병 △삼성SDS 상장 △제일모직 상장(예정) 등 사업을 정리하고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사업 재편작업을 벌여 왔다. 대부분 이미 2년 전부터 이 회장의 재가를 받고 차근차근 준비해온 작업들이었다. 따라서 이 부회장이 백지 상태에서 직접 결정을 내린 사안으로는 이번 빅딜이 사실상 처음인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에서도 삼성의 이번 화학 및 방산 부문 계열사 매각을 삼성이 그동안 이어온 사업구조 재편작업에 이은 본격적인 사업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버지와는 다른 ‘이재용 식’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삼성 내부에서도 이 부회장은 아버지와 상당히 다른 경영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실적 악화가 이어진 탓에 회의 때마다 수익 극대화 및 비용 절감 방안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평소 고위 임원들을 나무랄 때 ‘애초에 좋은 수도꼭지를 써서 물 새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발언을 자주 했지만 이 부회장은 물이 새는 일은 당연히 없어야 하고 수도꼭지 비용도 최소화할 것을 주문하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 되는 건 키워야

삼성은 이번 매각에 대해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 환경과 반복되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이 절실한 시기”라며 “자발적 빅딜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 정부 주도의 빅딜이 위기 극복의 촉매가 됐듯이 이번에는 기업 간 자발적 빅딜을 현재 한국 경제와 기업이 직면한 저성장을 극복하는 돌파구로 삼겠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일본 파나소닉은 반도체나 헬스케어 같은 유망 사업이라도 경쟁력이 약하면 과감하게 포기하고 자동차 전장 분야 등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삼성도 이번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전자 관련과 의료기기 등 핵심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빅딜에서 삼성정밀화학과 삼성BP가 빠진 것도 삼성의 ‘선택적 집중’ 비전을 짐작하게 해준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삼성정밀화학은 지난해부터 4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있어 임직원도 20%가량 구조조정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이번 빅딜에서 삼성정밀화학을 남겨둔 것은 추진하는 사업 방향이 삼성종합화학 등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삼성종합화학이 범용화된 제품을 대량생산해 가격경쟁력 등으로 승부를 한다면 삼성정밀화학은 일부 진입장벽이 있는 고부가가치의 화학제품 생산을 목표로 한다. 이 부회장이 화학 산업에서 원천기술 확보 등을 언급하며 기업 간 거래(B2B) 쪽을 키울 생각을 비쳤던 것과 맥이 통한다.

삼성정밀화학이 올해 8월 2차전지 소재 중 양극재 개발에 성공해 삼성SDI에 공급 중인 점도 이번 빅딜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2차전지는 명실공히 이 부회장의 성과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정세진 기자
#삼성#한화#빅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