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는 건 없고 반복되는 ‘핑계 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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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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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감기관 “지적만 말고 국회가 법 고쳐야… 밥줄이 걸려 있어서…”
국회의원 “시정 안해도 제재 방법이 없어… 보좌진이 부족해서…”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오른쪽)과 김용환 수석부원장이 민주당 조영택 의원으로부터 금감원 간부의 금융사 재취업 문제를 지적받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오른쪽)과 김용환 수석부원장이 민주당 조영택 의원으로부터 금감원 간부의 금융사 재취업 문제를 지적받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여의도 국회의 10월은 ‘호통의 계절’이다. 국정감사장마다 날선 지적들이 넘친다. 하지만 호통 치는 사람만 바뀔 뿐 피감기관장의 답변은 매년 한결같다. “검토 후 조치하겠습니다.”

금융감독원(금감원) 퇴직자들이 금융기관 감사로 가는 낙하산 관행은 최근 5년간 국정감사에서 매번 지적됐다. 그때마다 금감원장은 “시정하겠다”고 답했지만, 간부들의 금융기관 재취업은 해마다 늘었다.

국감 질의와 답변이 재탕 삼탕되는 사례는 금감원뿐이 아니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 임직원 특혜 등도 해마다 등장하는 단골 소재. 이처럼 해마다 똑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는 ‘데자뷔 국감’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뭘까. 국회와 피감기관의 핑계는 이렇다.

○ 피감기관의 핑계

▽“지적만 말고 국회가 법을 바꿔라”=금감원은 간부들의 금융기관 재취업을 방치해 감독당국과 금융기업의 유착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금감원 간부들의 재취업에 대해 금감원은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퇴직 전 3년 이내에 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관련된 기업에는 퇴직 후 2년간 취업을 금지한다’는 공직자윤리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금감원 간부들은 퇴직 전 총무팀 등 비감사 부서로 자리를 옮겨 ‘신분 세탁’을 한 뒤 금융사로 가는 경우가 많다. 민주당 조영택 의원실 김덕수 보좌관은 “보험에 관여하던 사람들은 은행으로 가고, 은행 쪽에 관여하던 사람들은 보험사로 간다. 공직자 윤리위원회의 심의를 피해 가는 편법적인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금감원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법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그건 하지도 않는다”며 ‘차라리 국회가 법을 고치라’고 항변한다. 실제 국회에는 공직자의 재취업 요건을 강화하는 개정안이 2008년 7월부터 10건이나 발의됐지만 2년 넘게 계류 중이다. 담당 입법조사관은 “계류 중인 법안만 1000건이 넘고 매달 50∼60건씩 새로 올라와 처리할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선진국선 문제 안 된다”=2008년 국감에서 김종창 금감원장은 “금융기관에서 요청하는 경우에 보내는, 전문가로서 데려가는 그런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기업의 러브콜에 금감원이 화답하는 관행을 시인한 셈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이사철 의원으로부터 “금감원이 직업소개소냐”는 얘기까지 들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미국 등 선진국은 퇴직자들의 취업을 제한하지 않고 유착 사실이 나올 때만 처벌하는데 우린 규제가 심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간부들은 퇴직 전 1년 동안 두 달 이상 담당했던 회사에 대해 퇴직 후 1년 동안 입사할 수 없다.

▽“노조때문에…”=농수산물유통공사는 2008년 국감 때 직원들에게 1∼2.5%의 파격적 금리로 돈을 빌려줘 지적을 받았다. 시중 금리는 6∼8% 선. 이달 18일 국감에서 한나라당 정해걸 의원이 “바꾸겠다고 해놓고 왜 아직 그대로냐”고 질타하자 윤장배 사장은 2년 전처럼 “시정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공사 측은 “성과급을 적게 받아 대출 이자까지 올리는 건 곤란하다”고 했다. “노조가 ‘급여 깎인 거 내놓고 얘기하라’면서 논의 자체를 거부하니까…”라는 설명. 농수산물공사 직원들의 평균 임금은 5200여만 원. 직장인 평균 연봉인 3800여만 원보다 37%가 많다.

▽“밥줄이 걸려 있어서…”=국무총리나 외국 정상들의 국내 이동을 위해 만든 한국철도공사 귀빈열차. 5년간 이용률이 32차례에 불과했고, 그마저 공사 간부들이 절반 이상 사용했다. 열차 3량 개조비용만 20억 원이 들었지만 최근 3년간 코레일 사장만 3차례 이용해 사실상 사장 전용열차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국감에서 여러 번 제기됐다. 귀빈열차가 주차돼 있는 서울역 보관소에서 만난 한 직원은 취재를 막으며 하소연했다. “예전에 3000명 가까이 있던 직원을 100명이라도 놔두려는 건데 보도가 나가면 여기도 없어져요. 제발 좀 놔두세요.”

○ 국회의원의 핑계

▽“시정 안 해도 제재 방법이…”=피감기관은 국감 전 전년도 지적에 대한 사후조치를 보고하지만 형식적 답변이 대부분이다. 국회의원 보좌진들은 “피감기관이 시정조치를 하지 않아도 국회가 제재할 수단은 마땅치 않다”고 말한다.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할 수는 있지만 실제 청구가 이뤄진 사례는 거의 없다. 피감기관장(건설교통부 장관)에서 국회의원으로 처지가 바뀐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오늘 하루만 잘 버티면 끝난다는 게 피감기관장의 속마음이다. 현장에서 의원들하고 부딪히는 것보다는 대체로 수용해주는 답변을 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상임위 옮겨서” “보좌진 부족해서”=‘오늘 하루만 넘기자’는 생각은 국회의원도 다르지 않다. 본보 기자가 만난 국회의원 11명 중 자신의 지적사항을 추적 확인한 경우는 한 명뿐이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2년마다 담당 상임위가 바뀌고, 지적사항이 수십 가지라 한정된 인력으로 모니터링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일단 호통 쳐야 주목받아”=10분 남짓한 질의시간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국민 정서를 자극할 만한 소재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피감기관의 사후보고 내용도 확인하지 않거나 피감기관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이 목소리만 높이는 경우가 다반사. 한 피감기관 관계자는 “사전에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똑같은 지적이 나오니 답변도 똑같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 내에서도 국감 사후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용섭 의원은 2008년 10월 국감 사후관리 부서를 만들자는 국정감사법 개정안을 동료의원 18명과 함께 발의했다. 국감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기관장 징계나 해임 등 구체적 조치를 하자는 내용. 그러나 이 법안마저 2년이 지나도록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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