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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 첫 올림픽 진출권 따낸 ‘푸른 눈의 청년’ 안드레…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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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 첫 올림픽 진출권 따낸 ‘푸른 눈의 청년’ 안드레…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강홍구 기자 입력 2019-11-28 17:08수정 2019-11-2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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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96cm의 건장한 청년은 커다란 백 팩에서 흰색, 파란색 유니폼 두 벌을 꺼냈다. 카메라 앞에 서서 어떤 옷을 입을지 한참 고민했다. 그 모습이 마치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을 고르는 어린아이 같았다. 해맑으면서도 신중했다.

“(럭비가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아무래도 인터뷰 촬영을 할 일이 없다. 럭비를 알릴 기회가 온 만큼 최대한 사진도 멋지게 나왔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촬영이 시작되자 그는 럭비공을 손에 들고는 실제 경기에서처럼 파이팅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사상 첫 올림픽 티켓을 따낸 한국 럭비팀의 안드레 진 코퀴야드는 “도쿄에 관광가는 것이 아니다”란 말로 다가올 올림픽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인터뷰 내내 미소 짓던 안드레는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럭비는 경기 도중 웃지 않는다”며 파이팅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donga.com

푸른 눈의 이 청년은 한국 럭비 귀화 1호 선수인 안드레 진 코퀴야드(28).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안드레는 2017년 특별귀화로 럭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유창한 한국어로 “선수 생활을 하며 입어본 많은 유니폼 중에서 국가대표 유니폼이 가장 좋다”고 말한 안드레에게 이 유니폼은 더욱 각별한 의미가 될 전망이다. 24일 인천에서 마무리된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우승하면서 한국 럭비 사상 첫 올림픽 진출권을 따냈기 때문이다.



1924년 파리 대회를 끝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사라졌던 럭비는 92년 만인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복귀했다. 올림픽 종목은 15인제가 아닌 7인제다.
24일 인천 남동아시아드 럭비경기장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우승해 본선행 티켓을 차지한 뒤 기뻐하고 있는 한국 선수단. 대한럭비협회 제공

●“한국 럭비, 아시아 럭비의 힘을 세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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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안드레는 여전히 올림픽 출전권 획득이 실감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럭비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정식 종목이 아니다 보니 올림픽에서 뛸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럭비를 알릴 기회가 생겨서 기쁘다”고 말했다.

리우 대회 예선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던 한국 럭비는 도쿄 올림픽 출전을 위해 아시아 예선을 안방에 유치하는 등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예선을 앞두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일본 유통경제대학 감독인 찰스 로우를 기술코치로 선임하기도 했다.

서천오 대표팀 감독이 팀 운영 등 큰 그림을 맡았다면 로우 코치는 전술, 작전 등 세부사항을 책임졌다. 플레이 상황에 맞는 발의 위치 하나하나를 정하는 등 디테일하게 접근했다. 팀 합류 후 17일간의 짧은 시간 동안 일일이 선수와의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면담 당시 코치의 통역을 맡았던 안드레는 “2002년 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이 그랬듯 로우 코치가 우리 선수들의 잠재력을 일깨웠다. 그만큼 선수들의 준비도 잘 돼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은 중국과의 준결승, 홍콩과의 결승에서 모두 연장 승부 끝에 극적인 승리를 따냈다.

실업팀이 3개(국군체육부대 포함 4개)밖에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뛰어난 팀워크도 빛났다. 지난달 21일 대표팀 소집에 앞서 아시아세븐스시리즈에 참여하는 등 꾸준히 손발을 맞춰왔다.

안드레는 “지금까지 대표팀이 ‘누군가 한 번 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개인의 실력에만 기대했다면 지금은 각자 역할만 잘하면 누구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전쟁터에서 서로 총알도 대신 맞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팀워크가 좋다”고 말했다.

올림픽 티켓은 따냈지만 여전히 고민은 많다. 안드레는 “뉴질랜드, 호주 경기를 보면 유니폼에 국내 대기업의 로고가 들어가 있는 걸 볼 수 있다. 럭비는 분명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귀화 전 중국의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스포츠 의류 브랜드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몇 만 명이 넘는데 국내 협회의 팔로워는 아직 2000명이 안 된다. 럭비를 알릴 수만 있다면 공짜 CF도 찍을 수 있다는 각오”라고 힘주어 말했다.

물론 선수의 본분은 좋은 경기력임을 잊지 않았다. 안드레는 “결승전에서 끝내기 트라이(득점)를 성공한 순간 우리의 목표는 올림픽 티켓이 아니라 그 이상이 됐다. 우리는 도쿄에 관광 가는 것이 아니다. 한국 럭비, 더 나아가 아시아 럭비의 힘을 올림픽에서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홍콩 귀화 제안에 직접 협회 문 두드려

서울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던 안드레는 식품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후 미국, 캐나다에서 살았다. 럭비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캐나다 고등학교에서였다. 어릴 때 차범근 축구교실에서 축구를 배웠던 그는 “사실 내 첫사랑은 축구다. 그러나 럭비를 해본 뒤로는 럭비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축구의 움직임과 농구의 패스기술이 럭비에 다 들어가 있었다”고 말했다.

럭비에서 두각을 드러낸 안드레는 미국 17세 이하(U17) 대표팀에서 뛰기도 했다. 미국 버클리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면서도 럭비공을 놓지 않았다. 취업하면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안드레가 한국 국가대표를 꿈꾸게 된 건 공교롭게도 홍콩에서 귀화 제안을 받으면서다.

안드레는 “홍콩에서 국가대표를 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한국에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시 협회에 연락해 문을 두드렸다”고 말했다. 2015년 한국으로 들어온 안드레는 2017년 특별 귀화했다. 안드레는 “한국 여권을 갖게 됐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이번 대회 결승에서 애국가를 듣는데 눈물이 나더라. 나도 모르게 유니폼의 무궁화를 꽉 움켜쥐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응원도 안드레에게 힘이 됐다. 안드레의 어머니는 1980년대 세계적인 모델로 활동했던 김동수 한국모델콘텐츠학회장(동덕여대 모델과 교수)이다.

안드레는 “당시 어머니가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듯 나도 한국 럭비를 위해 뛰고 싶다. 올림픽 티켓을 따낸 게 너무 기쁘고 행복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그다음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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