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쉴수가 없다” 절규에도… 백인경찰은 목 짓눌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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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 흑인, 경찰 가혹행위로 사망

사망 부른 문제의 장면과 분노한 시위대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백인 경찰(왼쪽 사진 위)이 25일
 비무장 상태인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씨의 목을 무릎으로 거세게 짓누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호흡 곤란을 호소한 플로이드 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 26일 미네소타 곳곳에서는 ‘정의 없이 평화 없다’ ‘흑인의 목숨은 중요하다’는 구호를 외치며
 경찰의 과잉 진압 및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미니애폴리스=AP 뉴시스
사망 부른 문제의 장면과 분노한 시위대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백인 경찰(왼쪽 사진 위)이 25일 비무장 상태인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씨의 목을 무릎으로 거세게 짓누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호흡 곤란을 호소한 플로이드 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 26일 미네소타 곳곳에서는 ‘정의 없이 평화 없다’ ‘흑인의 목숨은 중요하다’는 구호를 외치며 경찰의 과잉 진압 및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미니애폴리스=AP 뉴시스
비무장 상태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미국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씨(46) 사건에 전 미국이 들끓는 이유는 최근 몇 년간 유사한 사고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특히 과잉 진압에 가담한 경찰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징계를 받는 사례가 적지 않아 흑인 사회의 분노에 기름을 붓고 있다. 유색인종에게 불리한 사법체계 전반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식당 보안요원으로 일하던 플로이드 씨는 25일 오후 8시경 길거리에서 위조 범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경찰에게 제압을 당했다. 한 목격자가 촬영한 영상에 따르면 백인 경찰은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 제발 날 죽이지 말라”는 플로이드 씨의 호소에도 그의 목을 무릎으로 거세게 짓눌렀다.

시민들이 “사람을 죽일 셈이냐. 코피를 흘린다” “무릎을 치우라”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다른 경찰은 플로이드 씨가 말을 한다며 “말을 할 수 있으니 숨도 쉰다”고 주장했다. 플로이드 씨는 어머니를 부르면서 “전신이 아프다”고 절규했지만 경찰은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땅바닥에 얼굴이 짓눌린 채 의식을 잃은 플로이드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날 오후 9시 25분경 숨졌다. 미니애폴리스 경찰은 사망 원인이 의료 사고 때문이라고 주장해 더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2014년 불법으로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역시 백인 경찰관에게 목이 졸려 숨진 뉴욕의 흑인 남성 에릭 가너 씨(당시 44세) 사건과 판박이다. 당시 가너 씨도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했지만 경찰관이 목조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해당 경찰은 5년 후 파면됐다.

2월 남부 조지아주에서는 조깅 중이던 흑인 청년 아머드 아버리 씨(25)가 무장한 백인 부자(父子)로부터 도둑으로 오인 받아 총격을 입고 숨졌다. 아버리 씨 역시 이달 초에야 비무장 상태에서 무고한 죽음을 당한 정황이 동영상을 통해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16일 “일부 미국인은 조깅을 하러 나온 흑인이 자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그를 총으로 쏠 수 있다고 느낀다”고 비판했다.

이에 26일 미니애폴리스 등 미네소타 전역에서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일부 시위대는 플로이드 씨의 마지막 말 “숨을 쉴 수 없다”는 문장을 구호처럼 외쳤다. 경찰을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에 빗대거나 ‘살인자 경찰을 감옥에’란 팻말도 등장했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서 유리창을 깨고 경찰차를 파손했다. 경찰 역시 최루탄을 쏘며 맞섰다.

야당인 민주당은 유색인종에 적대적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집권한 후 유사 사고가 늘었다며 11월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삼을 태세다. 자메이카계 흑인 후손이자 민주당의 유력한 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캘리포니아)은 “흑인에 대한 편견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며 “구조적인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의를 요구해야 한다”고 외쳤다. 민주당 소속의 제이컵 프라이 미니애폴리스 시장 역시 “경찰은 최소한의 인간성을 상실했다. 흑인이라는 게 더 이상 사형선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탄했다.

최근 뉴욕에서는 규정대로 반려견의 목줄을 채우라는 흑인 남성의 요구를 받은 백인 여성 에이미 쿠퍼 씨가 911에 “흑인이 위협한다”고 되레 신고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쿠퍼 씨가 다니던 월가 금융사 프랭클린템플턴은 26일 “인종차별주의자에게 관용은 없다”며 그를 해고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미국#백인 경찰#과잉 진압#흑인#인종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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