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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은 패션이다”… 유통 신세계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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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은 패션이다”… 유통 신세계 개척

염희진 기자 입력 2020-01-03 03:00수정 2020-01-0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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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
<14> 40개 계열사로 성장 신세계그룹
“첫 출근 때 아버지는 ‘서류에 사인하지 말라’ ‘어린이 말이라도 경청하라’ ‘사람을 나무 기르듯 길러라’라는 지침을 주셨는데 그것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2005년 5월 발간된 신세계그룹 사보에 남긴 글이다.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의 막내딸인 이 회장은 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본부 이사로 입사하며 아버지로부터 세 가지를 지키라는 당부를 받았다. 이 가운데 ‘서류에 사인하지 말라’는 경영에 참여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지금도 대주주인 이 회장은 큰 그림을 제시하고 계열사별 경영은 전문경영인들이 맡고 있다. 그룹 내에서 아들인 정용진 부회장이 마트와 복합쇼핑몰, 딸인 정유경 총괄사장이 백화점과 면세점을 맡고 있지만, 여전히 그룹 전체의 사업에 대한 최종 결정은 이 회장이 내리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고수하는 것 말고도 이 회장이 또 하나의 경영철학으로 삼는 게 있다. 바로 ‘백화점은 패션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패션의 속성은 구태의연해서는 안 되며 탁월하고 앞서가야 한다”고 강조해온 그는 남다른 안목과 세련된 감각으로 국내 유통업계에서 앞선 시도들을 해왔다. 그 결과, 1991년 삼성그룹으로부터 공식분리 선언 당시 백화점 2개 점포(본점, 영등포점)와 조선호텔에서 출발했던 신세계는 이제 백화점뿐만 아니라 총 40개 계열사를 이끄는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이 회장은 백화점에 입사한 이후 자체 브랜드 개발에 관심을 가졌다. 해외여행을 다니거나 국제 행사에 참석할 때도 잘 팔릴 만한 상품이나 배워야 할 디자인을 보면 백화점 바이어에게 전달하곤 했다. 그가 수집한 패션 상품이나 자료들은 당시 상품개발팀의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였다.


국내 최초의 대형마트인 이마트도 그가 미국에 체류하며 프라이스클럽이나 월마트 등에서 얻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사업이다. 1993년 서울 도봉구 창동점으로 첫선을 보인 이마트는 개점일 하루에만 2만7000명이 몰리며 하루 매출 1억 원 이상을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외환위기가 찾아왔지만 이마트는 오히려 부지를 매입하며 공격적으로 점포를 확장했다. 그 결과, 신세계는 월마트의 국내 점포 16개를 2006년 모두 인수하며 100호까지 점포를 확장했다. 토종 대형마트가 세계적인 ‘유통 공룡’인 월마트를 국내 시장에서 철수시킨 하나의 사건이었다. 단순히 싼 가격이 아닌, 품질과 서비스, 디자인 등을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 차별화한 것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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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브랜드 매장을 갖춘 교외형 프리미엄 아웃렛도 신세계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유통 형태였다. 2007년 사이먼그룹과 손잡고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을 열었을 때만 해도 이런 시도는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서만 통한다는 게 업계 통념이었다. 하지만 여주점이 성공하며 현재는 파주점, 부산점, 시흥점까지 4개점을 운영 중이다. 2009년 3월 부산에 선보인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은 백화점이라는 유통시설에 찜질방, 골프레인지, 아이스링크 등 체험시설을 도입하는 파격을 시도하며 기네스협회로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백화점으로 인증받았다.

‘유통시설은 물건만 파는 게 아니다’라는, 틀을 깬 생각은 스타필드에서 꽃을 피웠다. 2016년 9월 경기 하남시에 문을 연 스타필드는 국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쇼핑 테마파크였다. 스타필드는 쇼핑은 물론이고 먹거리, 엔터테인먼트, 휴식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복합쇼핑몰을 지향하며 그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스타필드 하남 개점식 현장에서 정용진 부회장은 “나보다 더 유통 전문가인 이 회장이 ‘지친 도시인들이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며 “스타필드 하남 사업의 아이디어 원천은 어머니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세계는 유통시설 매장에 예술 작품을 대대적으로 내세우는 예술 경영에도 앞장섰다. 대표적인 예가 숙원사업이던 신세계백화점 본관을 리뉴얼한 후 2005년 처음 선보였을 때다. 당시 신세계는 미술을 백화점 경영의 전면에 내세우며 다른 백화점과 차별화를 선언했다. 건물 각층의 주요 매장 통로와 벽 곳곳에 국내외 거장, 중견 작가들의 진품 사진과 그림들을 내걸었고 엘리베이터 벽이나 대기 공간도 화랑처럼 디자인하는 전례 없는 시도를 했다. 이어 신세계는 2011년에는 ‘살아 있는 피카소’로 불리는 제프 쿤스의 조각 작품을 신세계본점 공원에 설치하며 또 한 번의 파격을 감행했다. 300억 원이 넘는 작품을 백화점 휴식 공간에 놓는 시도 자체가 유통업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통업의 세련된 혁신을 추구해온 신세계는 온라인 쇼핑 환경에 걸맞게 사업을 재편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신세계는 지난해 3월 신설 법인 SSG닷컴을 출범시키며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4년 경기 용인시 보정에 첫선을 보인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네오’는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신세계는 보정에 이어 2016년 1월 김포시에 두 번째 네오를 선보였고, 지난해 12월 세 번째 네오를 공개했다. 이 같은 신세계그룹의 노력은 외자 유치로 이어져 어피니티(Affinity), 비알브이(BRV) 등 2곳으로부터 외부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신세계그룹#신세계백화점#이명희 회장#이마트#스타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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