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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3차 퇴출 파장]새벽부터 달려온 불안 행렬… 낮 12시도 안돼 대기표 100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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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3차 퇴출 파장]새벽부터 달려온 불안 행렬… 낮 12시도 안돼 대기표 1000번

동아일보입력 2012-05-05 03:00수정 2012-05-05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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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출 거론 저축銀 대혼란… 일부 인터넷뱅킹 마비도
저축銀 5곳 ‘뱅크런’ 현실화…어제 4600억 한밤까지 인출 사태 ‘3차 저축은행 구조조정’ 발표를 앞둔 4일 영업정지 대상으로 거론된 저축은행들은 예금인출을 요구하는 고객들로 하루 종일 북새통이었다. 이날 관련 저축은행 5곳에서 약 4600억 원의 예금액이 빠져나가는 등 대량 예금인출(뱅크런) 사태가 현실화됐다. 서울 강북구 솔로몬저축은행 수유지점에서 예금을 인출하지 못한 고객들이 밤늦게까지 객장에 남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번호표를 뽑지 않고 돈을 가져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금융당국을 믿지 맙시다. 우리가 스스로 적발해 내야 합니다.”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솔로몬저축은행 본점. 40대 남성이 창구 앞으로 나오더니 이날 몰려든 고객 수백 명에게 외쳤다. 지난해 영업 정지된 부산저축은행의 VIP 고객과 임원진에 대한 특혜 인출 사건을 떠올리며 한 발언이었다.

금융당국의 3차 저축은행 영업정지 발표가 임박한 이날 퇴출 대상으로 지목된 저축은행 지점에 몰려든 고객들은 격앙된 표정이었다.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도 벌어졌다. 일부 지점에서는 이날 낮 12시가 되기도 전에 번호표가 1000번을 훌쩍 넘어섰다. 은행 문을 열지도 않은 새벽부터 긴 줄이 늘어섰고, 예금자들의 요구로 밤늦게까지 영업을 한 지점도 여러 곳이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까지 영업정지 대상으로 거론된 저축은행 5곳에서 빠져나간 예금액만 총 4596억 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저축은행에선 3일에도 1618억 원이 인출돼 이틀 동안 인출액은 6214억 원에 이르렀다. 영업정지 발표가 있기도 전에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뱅크런)가 현실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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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곳곳에서 한숨과 고성, 몸싸움

이날 솔로몬저축은행 수유지점에는 오후 8시가 넘도록 예금자 200여 명이 객장을 점거한 채 예금 인출 업무를 계속하라고 요구했다. 일부 고객은 신문지 등으로 자리를 깔고 눕기까지 했다. 이번 주말 영업정지 조치를 발표하면 예금 인출 기회를 놓친다고 판단한 고객들이 늦게까지 객장에 남아 예금 인출을 강하게 요청한 것.

이 저축은행의 을지로지점은 고객이 밀려들자 정문 출입구의 철제문을 내리고 번호표를 받은 사람들만 비상구로 드나들게 했다. 고객들은 “안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 “맡긴 돈은 어떻게 되는 거냐”며 항의했다. 이모 씨(60·여)는 “노후자금으로 6000만 원 넘게 예금했는데 불안해 죽겠다. 오늘 인출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직원들은 “아직 (퇴출 은행이) 발표된 게 아니다. 5000만 원 이하의 예금액은 모두 보장된다”며 고객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솔로몬저축은행은 최근 임석 회장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영업정지 심사 대상임을 공개적으로 시사하면서 다른 저축은행들보다 훨씬 많은 고객이 영업점을 찾았다. 이 은행 관계자는 “영업시간인 오후 4시 이전까지 지점에 들어온 고객들에 대해선 예금 인출 요구에 응해준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영업정지 대상으로 거론된 다른 저축은행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서울 중구의 H저축은행 본점에서는 대기인 수가 400여 명을 넘어서자 7일자 번호표를 나눠줬다. 주부 김모 씨(51)는 “어차피 7일자 번호표여서 오늘 예금을 찾을 수는 없지만 불안한 마음에 떠나질 못하고 있다”고 했다.

○ 더 절박한 초과 예금자들


내 차례는 언제쯤… 4일 오전 영업정지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솔로몬저축은행의 서울 대치동 본점 앞에서 고객들이 번호표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오전 9시 저축은행 영업이 시작된 지 30분이 채 안 돼 번호표는 500번까지 동이 났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지난해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인지 이날 각 지점 현장에서는 5000만 원 초과 예금자가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고액 예금자는 ‘오늘이 아니면 돈을 떼일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절박한 모습이었다. 솔로몬저축은행의 한 시내 지점에서 만난 이모 씨(35)는 “1억 원을 예금했는데 조금 전 400번대 표를 받은 아가씨가 자기는 더 못 기다리겠다면서 내게 번호표를 주고 갔다”며 “기다리다 지쳐 점심 먹으러 집에 들렀는데, 아내가 ‘순번 넘어가면 안 되니까 얼른 먹고 다시 가라’고 해 서둘러 왔다”고 말했다.

1100만 원을 후순위채에 투자했다는 한 50대 여성은 “3년 전엔 수익률이 좋을 것이란 권유를 받고 샀는데 이런 상황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지점 주변에선 보험사와 증권사 직원들이 “저축은행은 불안하니 우리한테 투자해 보라”며 영업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서울 을지로의 H저축은행 지점에선 오전 11시경 번호표 발급기가 작동을 멈췄다. 대기인원이 300명에 육박하면서 종이가 떨어진 것이다. 한 60대 남성은 기자에게 “지난번에도 프라임저축은행에 돈을 맡겼더니 만기 2주 전에 사태가 터졌다”며 “저축은행 직원들을 못 믿겠다. 자기자본비율도 다 속이는 것 아니냐. 난 직업도 없고 연금이나 받아먹고 사는데…”라며 허탈해했다.

M저축은행의 서대문지점에선 고객이 몰려들자 직원들이 창고에서 간이의자를 내놨다. 불안해진 고객들은 초면인데도 삼삼오오 모여 예금자보호제도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 인터넷뱅킹도 마비, 주가는 폭락

솔로몬저축은행은 객장뿐 아니라 온라인에도 사람들이 몰리면서 인터넷뱅킹이 한동안 마비됐다. 이 저축은행에 2000여만 원을 넣은 이모 씨(32·여)는 “지점에 갈 시간이 없어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지만 계속 ‘에러 메시지’만 떴다”며 “비록 5000만 원이 안 되지만 보험금을 받기까지 절차가 워낙 복잡해 미리 찾아놓아야 하는데 답답하다”고 했다.

이날 증시에서도 관련 저축은행들의 주가가 줄줄이 폭락했다. 솔로몬저축은행은 전날보다 14.98% 하락한 1135원에 거래를 마치며 이틀 연속 가격 제한폭까지 떨어졌다. H저축은행과 이 은행의 계열사인 J저축은행도 각각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저축은행 퇴출#저축銀 대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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