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고궁만 보여줄건가”…한수 앞 내다본 신격호 회장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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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1월 19일 16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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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남들과는 다른, 남들보다는 한수 앞선 경영으로 회사를 키웠다. 경영 어록만 보더라도 그의 철학을 알 수 있다.

◇한국에 오면서 가진 ‘기업보국’의 꿈

19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은 한국에 투자할 때부터 ‘기업보국’(企業報國)을 강조했다. 회사의 역할이 수익을 내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봤다.

“새롭게 한국 롯데 사장직을 맡게 되었사오나 조국을 장시일 떠나 있었던 관계로 서투른 점도 허다할 줄 생각되지만 소생은 성심성의, 가진 역량을 경주하겠습니다. 소생의 기업 이념은 품질본위와 노사협조로 기업을 통하여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가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면서 한 말이다. 신 명예회장은 이어 유통과 호텔업 등에 투자하면서 한국 관광업의 미래를 내다봤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부터 그들이 우리나라를 다시 찾도록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관광산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에 1973년 변변한 국제 수준의 호텔도 없고, 관광 상품도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마천루’라 불리는 롯데호텔을 열었다.

“한국의 장래를 깊이 생각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다”

이를 통해 신 명예회장은 1988년에 소공동 신관과 잠실 롯데호텔을 개관하고 ‘88 서울올림픽’이라는 국제적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루는 데에 일조하게 된다.

◇롯데월드 건설 “한국 관광산업, 볼거리 만들자”

1984년에는 롯데월드 건설을 지시한다. 임직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지만, 신 명예회장의 뜻은 확고했다.

“롯데월드를 통해 한국의 관광산업은 문화유산 등 있는 것을 보여주는 단계에서 볼거리를 만들어서 제공하는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의 소신 덕에 1989년 문을 연 롯데월드는 현재 세계 최대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특히 그는 간부들이 확신을 갖지 못하자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오픈을 하고 1년만 지나면 교통 체증이 생길 정도로 상권이 발달할거야”라며 직원을 독려했다.

‘상권은 창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밑바탕이 됐다. 실제 잠실 사거리는 교통체증을 유발할 정도로 상권이 발달했다.

◇“평창면옥에 답이 있다”

잠실 백화점을 기획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신세계나 미도파 매장의 3배 크기인 넓은 매장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고민이 있었다.

이에 대해 신 명예회장은 “무엇으로 채우느냐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고객이 원할 때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이 관건이다. 평창면옥에 해답이 있다.”고 말했다.

평창면옥은 당시 5000~6000원 가격에 사람들이 꽉 찼다. 점심시간에는 자가용을 타고 와서 한참 기다리다 밥을 먹는 사람들로 붐볐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왜 평창면옥에 와서 밥을 먹을까. 신 명예회장은 상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고객에서 꼭 필요하고 훌륭한 상품을 만들면 모든 게 해결된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고객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고객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사업이 있는 것이다. 고객이 즐겨 찾게 할 수 있는 사업을 해야 한다”

사업의 영역에 대해서도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쪽이었다. 주위에서 명실상부한 그룹이 되려면 중공업이나 자동차 같은 제조업체를 하나쯤 갖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건의하자 신 명예회장은 “무슨 소리냐, 우리의 전공분야를 가야지”라며 일축했다.

“잘하지도 못하는 분야에 빚을 얻어 사업을 방만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미래 사업 계획을 강구해 신규사업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

롯데가 취약한 부분을 집중 보완하거나 롯데가 가장 잘하는 분야에 힘을 집중하자는 판단이었다.

◇“롯데와 거래하면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한다”

신 명예회장은 협력업체와의 상생도 신경썼다. “적어도 롯데와 거래하면 손해를 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기업인은 회사가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합니다. 정부와 국민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됩니다.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신중해지고 보수적이 되지요. 사업에 책임을 지다보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일본 기업인이 신중하게 경영합니다. 나도 그렇게 하다보니까 빚을 많이 쓰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한국 기업인은 반대로 과감하긴 한데 무모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몸에서 열이 나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집니다. 기업에 있어서 차임금은 우리 몸의 열과 같습니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입니다”

“잘 모르는 사업을 확장위주로 경영하면 결국 국민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고객이든 협력업체든, 적어도 롯데와 거래하면 손해를 보지 않아야 합니다”

이처럼 신 명예회장은 사업에 대해 신중했으며, 협력사와의 관계를 중시했다.

◇“외국 관광객에게 언제까지 고궁만 보여줄 수 없다”

그의 관광업에 대한 꿈은 제2롯데월드타워가 정점이었다. 주변 반대와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외국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세계 최고의 그 무엇이 있어야 외국 사람들이 즐기러 올 것 아닙니까. 세계 최고의 건물이란 것 자체가 자동적으로 좋은 광고가 되지요. 무역센터도 될 수 있고 위락시설도 될 수 있는 그런 건물을 지어야 합니다. 서울에서 그럴 수 있는 자리로서 적합한 곳은 잠실이라고 봅니다”

“지금 세계 각국은 관광레저를 21세기 전략산업으로 꼽으며 육성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추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상품수출을 통한 외화획득 못지않게 관광레저 산업도 외화획득의 중요한 재원이 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계획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관광산업의 외화가득률은 90%가 넘습니다. 제조업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조업만 좋은 것이고 호텔이나 음식점을 하면 안 좋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관광업이나 유통업도 농사짓는 것이나 수출하는 것에 못지않게 필요한 사업입니다. 잘못된 편견은 버려야 합니다”

이처럼 뚝심 있는 신 회장의 결단과 추진력이 현재 한국의 대표 랜드마크를 만들었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명예회장은 재계 마지막 거인이었다”며 “유통 식품 업계의 개척자”라고 평가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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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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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명예회장은 롯데호텔 추진 회의를 열고 있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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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명예회장이 롯데월드 개관식에 참석한 모습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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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명예회장이 롯데쇼핑 개점식을 찾은 모습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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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명예회장이 롯데월드타워에 올라 창밖을 보고 있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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