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충당부채에 관한 오해와 진실… 세금으로 갚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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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채무와 달라… 공무원-정부 부담금으로 조달

지난해 국가부채가 1743조6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사상 최대 규모다. 국민 1인당 3370만 원의 부채가 있는 셈이다. 늘어나는 나랏빚만큼 재정건정성에 대한 우려와 걱정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국가부채에는 당장 갚아야 하는 빚이라고 보기 어려운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 944조2000억 원이 포함돼 있다. 전체 부채의 절반이 넘는다. 부채 증가에 대한 경각심은 가져야 하지만 막연한 불안감을 갖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의 재정 운영을 정확하게 지켜보고 감시하려면 그만큼 부채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 당장 갚아야 하는 빚이 아닌 연금충당부채

회계에 문외한이라면 낯설게 느껴질 충당부채는 일반적으로 빚이라고 보는 채무(debt)와는 다른 개념이다. 계약 등에 따라 나중에 지급할 돈이 어느 정도 필요할 것이라고 현재 기준에서 추정한 금액이다. 연금충당부채는 연금 지급을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필요한 재정 규모를 추산한 것이다.

한국은 2011년 국가회계법을 개정해 연금충당부채를 산정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수입과 지출, 채무 등만 반영한 가계부 같은 ‘현금주의’ 회계를 사용했지만 이 당시부터 ‘발생주의’ 회계로 바꿨다. 발생주의 회계에선 당장 지출이 생기지 않아도 언젠가 반드시 발생할 지출은 부채로 보고 미리 반영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5개 국가가 현재 발생주의 회계를 채택하고 있다. 발생주의 회계로 산정한 지난해 기준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는 994조2000억 원이다. 이 빚을 언제까지 갚아야 할까.

우선 당장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연금충당부채가 자녀 양육비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자녀를 출산한 뒤 대학 졸업까지 들어가는 양육비가 4억 원이라고 추산했을 때 당장 4억 원이 필요한 게 아닌 것과 같다. 나중에 벌 돈을 나눠서 부담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무원·군인연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무원과 함께 부담하는 ‘기여제’ 방식으로 운영된다. 공무원은 월급의 9%, 군인은 월급의 7%를 기여금으로 내고 이들을 고용한 정부가 같은 비율의 부담금을 내 연금 재원을 마련한다. 다만 파산을 염두에 두고 퇴직급여 등을 조성해야 하는 기업과는 달리 국가는 파산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나중에 생길 부채는 다음 세대의 기여금으로 충당될 수 있다. 물론 공무원 등 연금 가입자들이 기금에 내는 돈에 비해 연금 지급액이 급속도로 늘어나면 부족분은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 할인율, 물가·임금 상승률에 따라 달라져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는 2015년 659조9000억 원이었는데, 2016년 752조6000억 원, 2017년 845조8000억 원, 2018년 939조9000억 원 등 매년 100조 원 가깝게 늘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만큼 부채가 증가한 것일까.

연금충당부채를 계산하는 데는 국채금리와 연동된 할인율과 물가·임금상승률 가정 등을 반영하는데 이에 따른 변동 폭이 크다. 할인율은 매년 달라지는데 2015회계연도에는 4.33%를 적용했지만 2018회계연도에는 3.35%, 2019회계연도에는 2.99%로 추산했다. 또 정부는 2015회계연도부터 2018회계연도까지는 2015년도 물가·임금상승률 전망을 썼으나, 2019회계연도부터 2020년도 물가·임금상승률 전망을 적용했다. 매년 100조 원 가깝게 늘던 연금충당부채는 지난해 4조3000억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국가들의 부채 규모를 비교할 때 연금충당부채 등을 뺀 ‘국가채무’를 사용한다. 발생주의 회계를 적용한 OECD 25개국 중 12개국만 연금충당부채를 재무제표에 포함한다. 3개국은 주석으로 기록하고 7개국은 산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공무원·군인연금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공무원·군인연금을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사실상 정부 부담으로 봐야 한다”며 “공무원·군인연금에 대한 개혁 논의도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국가부채#연금충당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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